"이건 보건 독재".. '코로나 160만' 프랑스의 이유 있는 반란

목수정 2020. 11. 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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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프랑스 제2 봉쇄령과 함께 부는 불복종의 바람

[목수정 기자]

"'책 속에 빛이 있다. 그 빛이 만방에 퍼지게 하라.'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에겐 이 빛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서점의 영업 재개를 호소하며 지난 2일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은 이렇게 시작된다.

10월 31일부터 새롭게 시작된 프랑스의 이동통제령은 모든 면에서 3월의 그것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우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가 정상 등교다. 생필품 이외의 품목을 파는 상가들은 문을 닫는다는 면에서는 3월의 통제령과 같으나, 이번에는 '필수품'의 정의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며 정부의 방침을 향한 불복종에 나섰다.
 
▲ 봉쇄령 내려진 파리 시내 모습 3월에 이어 10월 31일부터 다시 한달간 봉쇄령이 내려진 파리 시내 모습. 봉쇄령이란 말이 무색하게, 유치원, 초중고교 모두 정상 수업, 재택근무 불가능한 직장 출근, 대중교통도 모두 정상 가동 중이다. 일할 의무는 있지만, 놀러다닐 권리는 없는 마크롱식 봉쇄령의 실체다.
ⓒ 목수정
 
불복종의 최전방, 지자체장들 

코로나 유행 초기였던 3월엔 미지의 역병으로부터 최대한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사람들 사이에 작동하면서 자유가 차단되는 초유의 고통이 저항 없이 수용됐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지금, 같은 카드를 정부가 꺼내들자 사람들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정부가 이행해야 했던 의무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그리고 있다.

그 '불복종'의 최전선엔 지자체장들이 있다. 100개가 넘는 지자체의 단체장들이 이동통제 기간 중 소규모 자영업자들에 대한 영업 규제에 반기를 들었다. 정부가 선정한 '필수' 품목은 음식, 술, 의약품, 소형가전, 문방구류, IT, 원예, 농사관련 품목, 공구 등이다. 이에 따라 식품, 가전제품, 원예품, 공구 등을 파는 대형 매장과 온라인 매장이 집중적으로 기회를 누리게 된 반면, 이외의 품목을 판매하는 소규모 자영업들은 또다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내린 결정은 공정한 경쟁 논리의 왜곡을 가져온다. 소형 동네 상점들이 희생하는 동안 대형매장과 온라인 매장들이 영업을 지속한다. 몽토반에서는 모든 동네 상점들을 '필수'로 간주하며 영업을 허하겠다."

몽토반(Montauban) 시장 브리지트 바레즈는 정부의 통제령이 내려진 바로 그날 불복종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는 자영업자들의 운명을 시가 직접 보살피겠다며, 정부가 그들에게 벌금을 물게 하면 시가 대신 그 비용을 감당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몽토반(Montauban) 시장 브리지트 바레즈. 정부의 봉쇄령에도 불구하고, 몽토반 시내의 중소 자영업자들에게 영업을 허용할 것을 가장 먼저 결단하고, 정부가 부과할지 모를 벌금까지 시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 france bleu 화면캡처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은 특히 서점이 문 여는 상점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성토했다. 2명의 작가, 방송인과 함께 서명해 대통령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그는 서점 영업재개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책은 국가의 보물입니다. 모든 가정에 지식을 나누는 도구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해방되고, 꿈꾸고, 이해하고, 분석하며,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정치 또한 상징의 예술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식의 장소를 폐쇄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정부의 이번 조치가 대기업 중심의 초대형 유통업계 온라인 매장을 키우고 소형 자영업자들을 약화시킨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달고 시장은 이런 가능성에 맞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파리 시민들께 진심으로 청합니다. 아마존에선 물건을 사지 마십시오. 아마존은 서점의 죽음, 우리의 지역생활의 죽음을 뜻합니다."

이달고 시장은 동네 상권이 파괴되고 플랫폼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을 시민의 힘으로 막자고 호소했다. 프랑스 책 판매에서 인터넷 서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21%(2018)다. 그중 절반이 아마존을 통해 판매되며, 온라인 서점의 판매비중은 매년 증가 추세다.
 
▲ 봉쇄령 중 문 활짝 열고 손님 맞고 있는 와인숍  책과 달리 정부는 술을 '필수품'의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손님을 맞이하여 여유롭게 와인을 팔고 있는 한 와인숍의 모습
ⓒ 목수정
 
11월 첫 주로 예정돼 있던 공쿠르 상 수상작 발표도 서점들이 처한 가혹한 운명에 동참하며 무기한 연기됐다. "서점이 없다면 공쿠르 상도 없다"는 게 공쿠르 상 위원회의 연기 사유다.

작가들이 나서서 서점 문 열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정치인들이 이에 동참하는 등 우호적 여론 속에서 전국 독립서점들은 일제히 'Click and Collect' 방식으로 이번 주부터 문을 열었다. 즉,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고, 직접 가서 책을 찾아오는 방식이다. 서점 입구에서 책을 받아갈 수 있다. 소위 테이크아웃 방식의 영업이 허용되는 식당업계와 같은 방식을 취한 것이다.

2500여 개의 독립서점이 참여하는 서점조합은 이미 5년 전 공통 판매 사이트를 구축한 바 있다. 커져가는 아마존의 힘에 맞서기 위해서다. 온라인 매장이나 대형 서점은 도서정가제에 의해 일체의 할인을 할 수 없지만, 소규모 독립서점은 고정 독자들 대상으로 5%의 할인혜택을 적용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서점조합의 힘이다. 정부의 허가 없이도 서점 영업 재개에 선뜻 나설 수 있을 만큼의 여론을 만든 것도 강력한 조합을 둔 덕이라고 파리4구의 서점 'La Belle Lurette'의 주인은 말한다.
 
▲ 파리 4구에 있는 서점 '라 벨 뤼헤트' 봉쇄령에서도 문을 열 수 있는 필수 품목에 책이 제외되면서, 문을 닫게 된 서점들. 지자체장들과 작가들, 수천개 독립 서점들이 가입된 강력한 서점 조합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 목수정
 
책은 프랑스에서 첫 번째 선물 품목으로 꼽힌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둔 11~12월은 연간 가장 큰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전면적인 서점 오픈을 요구한다. 책을 직접 만날 수 없는 현재의 판매방식은 결코 서점이 온전히 열려있을 때의 매출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교생들 "재봉쇄령은 한편의 코미디"

화요일인 3일엔 10개의 파리 고등학교가 동시에 교문을 봉쇄하고 정부를 향한 문제제기에 나섰다.

"다시 봉쇄령을 시행할 만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30명이 한 교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갇혀 있어도 되는가? 수백 명이 앉아 같이 식사해야 하는 급식 식당에서 우린 마스크 없이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되는가? 온 나라를 멈춰 세우면서 학생과 교사들에겐 그 어떤 안전 조치도 없이 정상 등교를 요구하는 정부 정책에는 어떤 설득력도 없다."

이들은 수년째 제대로 인상되지 않아 점점 낮아지고 있는 교원의 임금 문제를 거론하며 교사에 대한 합당한 처우를 요구했고, 학생들이 단체급식을 먹는 게 문제없다면 왜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요구했다. 집회에 나선 한 고교생은 취재진의 질문에 "이번 재봉쇄령은 한편의 소극(farce)"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고교생들의 정부에 대한 성토는 하루짜리 반란으로 그쳤지만, 이 목소리는 다음날 국회로 옮겨졌다.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과 달리 하원에서는 45%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집권여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중도 성향의 정당이 기꺼이 위성 정당 역할을 해오면서, 정부의 의도는 하원에서 벽에 부딪힌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야당인 공화당이 4일 밤 발의한 "11월 30일까지 현 이동통제령 기간 제한(정부는 최대 12주까지 연장 계획)", "보건위기 상황 12월 14일 종료(정부는 2021년 2월 14일까지 희망)" 안이 하원에서 전격 통과됐다. 뒤늦게 참석한 보건부 장관은 정부안을 거부한 하원의원들을 향해 "현실을 외면하겠다면 모두 여기를 나가라"라며 국회의원들에게 퇴장을 명령했고, 이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다음날 베랑 장관은 일종의 긴급조항을 적용, 전날 의회가 통과시킨 안을 재투표 시켜 다시 한 번 결과를 뒤집었고, 토요일 상원을 통한 최종 의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 2차 유행  코로나 2차 유행에 대한 불신과 함께 등장한 만평. "2차 유행" "2차 유행이 없으면, 만들어야 해" "예스" 아마존, 길리아드(다국적 제약회사), 우버EAT
ⓒ AMAD(@Amad_dessins)
 
불복종의 근거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3~4월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망자 그래프다. 정부가 제2 유행을 말하고 그에 따라 봉쇄령을 내린 주된 근거는 1일 수만 명 대로 확대된 확진자 수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확진자 검사에 사용하는 PCR 테스트기(추출된 점액을 40배로 증폭해 얻어낼 결과)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며, 확진자로 판명된 사람들의 90~99%는 환자도 전염력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의료진들에 의해 속속 폭로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 대한 또 다른 근거로 정부가 제시하는 것은 중환자실이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다수의 의료진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것은 코로나가 촉발시킨 상황이 아니라 "적어도 지난 5년 동안 동절기에 이르면 늘 겪어온 일"이라고. 실제로 매년 이맘때면 프랑스 국민들은 똑같은(중환자실 및 응급실 포화상태) 뉴스를 들어왔고, 병원을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의료진들의 거리집회를 보아왔다.

지난 5월, 파업에 나선 의료노조는 정부가 15년간 매년 줄여온 병상수 확대, 의료인력 충원, 그리고 임금인상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 약속 가운데 실천된 것은 오로지 임금 인상 뿐이다. 정부가 중환자실 포화상태를 막고 싶었다면 국민들을 집안에 가둘 게 아니라 공공병원에 시급히 인력과 장비, 병상을 투입했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정부는 오직 "테스트 숫자의 확대"를 위한 인력과 장비, 시설을 보강해 왔을 뿐이다.

암환자조차 코로나 보유자면 코로나 환자로 집계하는 정부의 코로나 피해자 부풀리기 집계방식도 여러 의사들에 의해 폭로되면서 이 또한 신뢰를 의심받고 있다. 불신을 피해간 유일한 숫자는 1일 전체 사망자 수다. 통계청(INSEE)이 제공한 올해 1일 사망자수는 코로나 대유행기인 3~4월에 높이 치솟았을 뿐, 5월 이후는 예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 3월초부터 10월말까지 2018, 2019, 2020년 1일 사망자수  코로나19를 둘러싼 각종 통계들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통계청(INSEE)이 발표하는 전체 사망원인을 종합한 1일 사망자 통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르면, 1차 유행기로 분류되는 3-4월의 사망자는 치솟은 반면, 2차 유행기라고 하는 9.10월에는 예년과 다름없는 사망자수가 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정부의 2차 유행 주장을 불신하는 네티즌들이 3-4월은 전염병(Epidemie)이 맞지만, 8-10월은 전염병이 아니라는 설명을 달아놓았다. "초보자를 위한 전염병 강연"(초록색) 이라는 제목과 함께.
ⓒ INSEE
 
지자체장들이 불복종에 앞장 선 데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참패했다. 인구 3만 이상 도시 273개 중 집권당이 시장으로 당선된 도시는 3개뿐이다. 97개 도의회에서 집권당이 다수 의석과 의장을 차지한 지역은 단 1곳이다. 풀뿌리 조직도 갖지 않은 신생정당인 까닭에 집권당 LREM의 지역에서의 존재감은 제로에 가깝다. 지자체장들은 정부의 거듭된 보건위기 관리 실패를 비판하고, 지자체장끼리 연대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시민을 위한 정치적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총 348개 의석에서 16개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에서는 물론이고, 하원에서도 반란이 일어난 것은 577석 중 310석을 차지하던 집권여당 LREM에서 3년간 50명의 의원들이 당을 떠나며 과반을 잃게 된 상황에 근거한다. 집권 초기부터 의회와 고루 힘을 나누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대부분의 주요한 결정들을 처리하면서 '독재자' 이미지를 키워온 것도, 독단적 정치로 자당의 의원들을 하나둘 잃어간 것도, 오늘날 의회의 강력한 성토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자초했다.

"삶을 보호한다는 것은, 삶이 가지는 다양한 측면,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보건위생인 면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의 봉쇄령 결정은 시민들의 삶을 생물학적 삶 한가지로 축소해 버리고 있다."

11월 4일, 언론(Le Journal du Dimanche)을 통해 봉쇄령 철회 요구 성명을 발표한 200명 법률가들의 주장은 프랑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난의 목소리를 잘 요약한다.

사회적 삶을 질식당한 인간이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을까? 경제의 핵심이 돈의 순환이듯, 건강한 사회의 핵심도 다양한 사회적 요소의 순환에 있다. '보건 독재'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프랑스 정부와 인민은 소통 불능 상태에 봉착했다. '책'이 시민 불복종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이 시기, 프랑스인들이 호소하는 고통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상징해준다. 바이러스만이 인간을 쓰러뜨리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마지막 프랑스인이 마크롱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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