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검찰 비공개 내규 48개 목록 보니..다 감춰야 하나

윤지원·허진무 기자 2020. 11. 6.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48개 예규, '비공개 적절성'을 묻다

[경향신문]

검찰이 비공개로 둔 내규(예규·훈령)는 모두 48개다. 이 중에는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이란 헌법상 기본권과 국민 권익과 관련 있는 지침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비공개 내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아 외부에서는 특정 내규의 공개를 요구할 수도, 비공개가 적절한지 판단할 수도 없었다.

경향신문은 5일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검찰의 전체 내규 목록에서 지난달 대검찰청이 공개로 전환한 29개를 제외한 나머지 비공개 내규를 분석했다. 여전히 비공개로 돼 있는 48개 내규는 ‘부패범죄수사 절차 등에 관한 지침’과 같은 수사 관련 내규 26개와 ‘검사 전결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 등 검찰 운영에 대한 내규 22개로 나뉜다. 검찰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범죄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 보안처분 등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 대통령령 보안업무규정에서 ‘비밀’로 취급하는 전시 관련 규정도 비공개가 가능하다. 그 외 모든 사항은 ‘적극적 공개’가 원칙이지만 검찰의 비공개 내규 중엔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남는 지침이 포함됐다.

■‘피해자 보호 지침’ 비공개의 위험성

절차 지켜 수사하는지 알 길 없어
성범죄 경우 ‘가치관 작용’ 소지
검찰 “민원 많아져 업무에 지장”

검찰은 수사·공판 절차에서 성폭력·아동학대·가정폭력 관련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하는지에 대해 내부 지침을 두고 있다. ‘성폭력 사건 처리 및 피해자 보호 지원에 관한 지침’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 대질조사 등을 최소화한다는 내용 을 포함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수사 원칙을 제시하는 지침인데 모두 비공개다. 이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절차를 준수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한샘 성폭력 피해자 법률대리인 김상균 변호사는 “가치관이 작용하기 쉬운 성범죄 사건 수사에서는 수사 주체에 따라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며 “여러 성폭력 피해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대질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기관이 권할 때 현실적으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검은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지침이 비공개로 돼 있는 이유를 묻는 질의에 “업무수행에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수사 상황에 따라 지침과 다른 운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때마다 민원이 발생하면 실무상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검찰은 우려할 수 있다. 검사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지침이 공개되면 민원이 많아질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지원을 받는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공개가 맞다”고 말했다. 류하경 변호사는 “민원은 공직자가 감당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국민 정서에 맞지 않게 운영을 한 것으로 비판을 받는 것에서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구형·상소 기준도 철통 봉쇄…방어권은?

특정 요소 개입 여지 없게 하려면
구형 기준 투명하게 공개해야
수사절차도 시대 맞게 조정 필요

‘구형 및 상소, 구속 수사, 석방지휘 신속 처리 등에 대한 처리 지침’은 피의자 및 피고인의 방어권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지만 비공개로 돼 있다. ‘검사 구형 및 상소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은 구형에 따른 법원 선고형의 상소 기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 구체적인 구형량, 상소·구속 수사 여부 등의 기준은 지침이 비공개라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검찰은 2008년 구형에 필요한 사건 처리기준을 마련해 시행해왔다. 판결의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하는 양형 기준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구형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 지난해 4월 대검 검찰미래위원회는 검찰에 구형, 구속 등 사건 처리기준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그 후 검찰은 음주운전 등 교통범죄, 성착취 영상물 사범 등 일부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서만 구형 기준을 공개했다. 류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무죄이거나 선고형이 구형량의 절반에 못 미치면 검사가 상소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러한 기준이 실제로 검찰 내에 존재하는지, 그게 사건에 맞게 운용되는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의 구형이나 상소에 친분 관계 등 특정 요소가 개입하지 않게 하려면 기준이 먼저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 절차와 관련한 부분은 시대에 맞게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만들어진 지 오래인 수사 절차와 관련된 지침은 그 자체가 매우 구식일 수 있다.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을 수 있는데 외부에서는 비공개됐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있을 때 다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법률 자문을 거쳐 이미 전문을 공개한 ‘사건배당지침’ 등 이외에 비공개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 지침도 공개 전환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한 검사는 “원론적 이야기가 적힌 지침들로 습관적 비공개가 많다”고 말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대검·법무부 국감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공공기관 운영을 위해서라도 비공개 훈령·규정이 비공개 기준에 합당한지에 대해 엄격하게 심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개·비공개 어떤 절차로 결정되나

예규 만든 소관부서가 입장 내면
총장 승인받아 비공개 결정
국회·언론이 공개 땐 바꾸기도

검찰은 예규를 만든 대검 소관 부서가 1차로 입장을 내면 대검 기획조정부를 거쳐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아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공개·비공개에 대한 뚜렷한 기준은 없다. 대검 관계자는 “기준 자체가 정량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법제처와 공개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과정에서 공개 전환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명령사건 처리 지침’은 공개이지만 ‘성폭력 사건 처리 및 피해자 보호 지원에 관한 지침’은 비공개하는 등 기준에 의문이 가는 경우도 있다. 국회나 언론을 통해 내규가 공개되면 그제서야 공개로 전환되기도 했다. 지난 6월과 7월 각각 공개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협의체 등 운영에 관한 지침’과 ‘검사의 이의제기 절차 등에 관한 지침’이 대표적이다. 올 초까지 비공개였던 ‘대검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 규정’은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감찰 개시권을 놓고 검찰총장과 감찰부장 간 갈등이 생기는 등 논란이 커지자 공개로 전환됐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지난 9월 부득이 비공개로 유지되어야 하는 경우, 해당 내부 규정의 제명(題名)을 법무부 및 대검 홈페이지에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개혁위는 비공개 내규 목록을 공개하려 했으나 검찰의 반대로 무산됐다. 양 변호사는 “비공개 내규 목록과 함께 지침의 요지도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은 추가 공개 전환 가능성을 묻자 “비공개 훈령·예규에 대한 공개 여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급적 공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법제처는 최근 부처별 비공개 내규의 공개 여부를 재개정 발령때마다 법제처장의 재판단을 받는 안을 추진 중이다.

윤지원·허진무 기자 yjw@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