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범 '박한상 사건' 이후 26년 흘렀지만..존속살해 매년 수십건
가족 간 잦은 접촉·축적된 갈등 상황이 반인륜적 범죄로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박기범 기자 = 1994년 5월 서울 삼성동 한 고급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지상 2층·지하 1층 건물이었다. 건물주는 100억원대 자산가이자 한약상인 박모씨. 경찰관과 소방관이 출동했을 때 박씨와 그의 아내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화재 신고를 한 것은 아들 박한상(당시 23세)이었다. 그는 "자다가 불이 난 것을 알고 황급히 빠져나왔지만 부모님을 미처 구출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박씨 부부를 살해한 것은 바로 박한상이었다.
그는 흉기로 찔러 부모를 살해한 뒤 범행을 숨기고자 집에 불을 질렀다. 미국 유학생이었던 박한상은 소비와 사치를 즐기는 일명 '오렌지족'이었다. 노름에 빠져 지낸다며 자신을 나무란 부친에게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들은 '패륜아'라며 경악했다. 직계가족을 숨지게 하는 존속살해 사건이 박한상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지 26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진행형'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말이다.
5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존속살해 사건은 2015년 25건→ 2016년 32건→ 2017년 24건→ 2018년 42건→2019년 35건으로 매년 수십 건씩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노원구 한 모텔에서 40대 남성이 긴급 체포됐다. 그는 성북구 소재 아파트에서 80대 부친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던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월에는 40대 남성 허모씨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허씨는 지난 1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자택에서 70대 모친과 10대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장롱에 은닉한 혐의로 체포됐다.
허씨는 법원 영장심사가 끝난 뒤 '피해자들을 왜 살해했느냐'고 묻는 취재진의 말에 "죄송합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존속살해 최하 법정형은 징역 7년형이다. 보통살인죄 최하 형량 5년보다 높다. 특히 국내에서 도드라지게 발생하는 범죄다. 국내 존속살해 비중은 전제 살인 범죄의 약 8% 수준으로,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보다 수배 높다.
전문가들은 존속 살해에 대해 인륜을 저버리는 끔찍한 범죄라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생하는 배경으로 '가족 간 접촉 빈도와 갈등'을 꼽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 간 같이 살아 접촉빈도가 높다"며 "다른 나라의 경우 성인이 되면 부모-자식이 각자 책임으로 살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 보양·부양하며 같은 공간에 거주한다"고 했다.
가족 간 접촉이 많고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 역설적으로 존속살해라는 반인륜적 범죄의 배경이 된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가족 중심의 보양·부양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존속살해 근절은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존속살해는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 자주 발생하는 범죄로 일찍이 가족이 떨어져 사고 의료복지제도를 통해 질병 문제를 해결하는 서구문화권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나 배우자 등 직계가족에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해 비극을 초래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배우자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노년에 상대를 숨지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40여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남편을 살해한 60대 주부는 지난달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웅혁 교수는 "존속살해는 겉으로 보기엔 폐륜 범죄처럼 비춰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가족 간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며 "양육을 공평하게 하지 않거나, 면박을 주는 식의 가족 갈등이 상당 기간 축적돼 있다가 범죄로 진화·발전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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