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은 우릴 낮춰보지 않는다.. 이동국부터 그랬으니까"

2009년 1월. 프로축구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가 술렁였다. 당시 전북 선수들은 제주로 동계전지훈련을 떠나 있었는데, 소문만 돌던 톱 스타의 입단 소식이 전해지자 직원들은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북엔 최진철(49), 조재진(39)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아이돌급 인기의 스타 선수는 처음이었다. “그가 정말 오는구나!”
이 때만 해도 전북 선수들은 국내 최고 시설을 갖춘 데다 웅장하기까지 한 현재의 클럽하우스가 아닌, 현대자동차 직원 숙소 한 층을 빌려 생활했다. 3년 전에야 빨래를 전담해주는 직원을 구했고, 그 이전까진 선수들이 직접 자신의 옷을 빨아 입던, 프로라기엔 초라한 상황이었다. 우승을 바라보긴커녕 중하위권을 벗어나는 일도 드물었고, 현대자동차 직원들과 같은 헬스장을 쓰며 체력을 단련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 들려 온 ‘라이온 킹’ 이동국(41) 입단 소식은 직원들에게 크나 큰 뉴스였다. 2006년부터 전북 숙소에서 세탁과 미화를 담당해 온 직원 임진욱(56)씨는 그 때의 감흥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한동안 어딜 가든 어깨가 으쓱했어요. 어릴 적부터 이동국 선수를 좋아했던 딸도 뛸 듯이 기뻐했고요. 그렇게 큰 선수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게 우리 직원들에게도 큰 자부심이었죠.”

이동국은 전북 입단 첫해, 팀의 창단 첫 우승을 확실히 이끌었다. 32경기에 출전해 22득점을 올리며 득점왕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데뷔 후 그가 20골을 넘게 넣은 건 그 해가 처음이었다. 이 때까지 2002 한일월드컵 엔트리 탈락, 2006 독일월드컵 직전 십자인대 파열 부상,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혹평만 받다 국내로 돌아오는 등 굴곡진 축구인생을 살아 온 이동국에게도 2009년은 축구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셈이다.
나이로는 15살 위였던 임씨는 이동국의 부활이 마치 자기 가족 일처럼 반가웠다. ‘인간 이동국’의 부활을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게 일터에서의 큰 행복이자, 자부심이었단다. 다른 직원들도 이동국을 우직한 소나무 같은 존재로 여긴다. 임씨는 “이동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존경심이 더 커지는 선수였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인성,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임씨는 “이동국은 선수단 뒷바라지를 하는 클럽하우스 스태프들을 한 번도 낮춰보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 더 솔직한 마음을 터 놓은 그녀는 “선수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하찮게 여기기 쉽지만, 전북에 그런 선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동국을 포함한 고참선수들이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함께 생활하는 어린 선수들도 자연히 따라온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얘기다.

자기관리는 이동국이 41세까지 현역 생활을 유지한 비결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두 대회를 거르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 어렵게 섰으나 1-2로 뒤지던 우루과이와 16강전 후반 42분, 지금은 ‘전설의 물회오리 슛’으로 회자되는 실책성 슈팅으로 온 국민의 비판 대상이 돼 돌아 온 이동국을 그녀는 기억한다. 선수 본인의 속은 한동안 펄펄 끓었을 게 뻔한데, 소속팀에 와서는 내색 한 번 않던 그의 우직한 모습을 보며 ‘정말 큰 선수’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이동국이 그라운드를 떠난 1일, 임씨도 전주월드컵경기장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통산 845번째 경기이자 현역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한 이동국은 “끝까지 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던 바람처럼, 마지막까지 전성기 못지 않은 기량을 펼치며 전북에 8번째 별을 새겨주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경기장을 돌며 1만여 관중들에게 인사하던 이동국을 지켜 본 임씨는 눈물과 콧물, 빗물이 범벅 된 얼굴로 ‘선수 이동국’과 작별했다. “언젠가는 떠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이 되니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함께 한 12년 영광이었어요.”

전주=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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