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대법 판결 후 2년.."제 양심은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요?"

이혜리 기자 2020. 11. 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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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 11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오늘로 딱 2년이다. 법원에선 여호와의증인 신도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이 이어졌다. 지난달 26일엔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이 대체복무요원으로 대전교도소 내 교육센터에 처음 입소했다. 형사처벌이 아니라 대체복무제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이상씨는 제주지방법원에서 또다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씨는 종교가 아니라 비폭력·평화주의 등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예비군훈련을 거부한 지 4년. 이씨는 변치 않는 신념을 지켜왔지만 법원은 그에게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했다. 이른바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알려진 사례는 2년간 단 1건이다. 이들에게 대체복무제 시대는 남의 이야기다.

지난달 26일 대체복무제 첫 시행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전교도소 내 교육센터로 입소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씨는 2012년 군복무를 마친 뒤 2016년부터 “전쟁을 거부한다”는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을 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예비군법은 병역법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처벌의 예외를 인정한다. 대법원은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2018년 입장을 바꿨다. ‘진정한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양심은 무엇일까. 대법원은 헌법 19조가 보호하는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은 그 사람의 인생을 뒤틀리게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범죄로 처벌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게 된다는 취지다. 다수의 사람과 다른 양심을 가졌다거나, 국방의 의무나 안보현실이 그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입장이었다.

예비군훈련 거부는 군복무를 마친 뒤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병역거부와는 조금 다르다. 또 예비군훈련은 여러 차례 부과되기 때문에 건건마다 수사와 재판, 처벌을 받게 된다. 이씨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2014년부터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문화에 대항하고자 꾸준히 창작활동과 인권운동을 했다.

판결문을 보면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평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평화는 전쟁과 폭력이 없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권리가 짓밟히지 않고, 인간을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까지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인간을 착취하는 불평등한 구조와 문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까지 평화라고 생각한다.” 이씨는 군대가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문화를 강화·유지·재생산하는 조직이라는 생각을 계속해 갖게됐고, 이는 예비군훈련 거부로 이어졌다.

2018년 11월1일 대법관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건 선고 직전 서울 서초동 대법정에 앉아있다. 김창길 기자


1심 재판부였던 제주지법 최석문 판사는 지난해 12월 이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이씨의 병역거부는 진정한 양심에 근거한 게 아니라고 했다. 이씨가 이미 군복무를 마친 뒤 전역했고 예비군훈련도 3년차까지 받았던 점, 이씨가 활동한 단체들이 군사훈련을 반대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최 판사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아닌 근거로 댔다.

양심이 삶 속에서 언제든 형성될 수 있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은 판단이었다. 또 양심이 반드시 군복무 이전에 이미 형성돼있어야 한다면 군복무 이후에 이뤄지는 예비군훈련 거부는 애초에 인정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된다.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판결을 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 전부터 병역거부를 했는지,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는데도 계속 병역거부의 신념을 유지하는지를 주요한 무죄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전에 병역거부를 해 4년 째인 이씨 사건에서는 감안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을 오가면서 받는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정도 진정한 양심을 인정할 수 있는 요소이지만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서는 각종 단체 등 활동 내역을 통해 진정한 양심인지 여부를 입증하게 되는데, 법원이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사실상 ‘스펙 놀음’의 양상을 띠고 있다. 병역거부라는 양심을 가졌다고 반드시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고 공개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법원은 병역거부자의 활동 내역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양심 입증의 자료를 골라낸다. ‘평화주의를 표방할지언정 (집총 등의) 군사훈련은 반대하지 않는 활동이다’라며 활동의 내용을 문제삼는다든지, ‘병역거부를 결심한 이후에 활동에 참여했다’라며 양심의 형성과 활동 시기를 결부시켜 배척하는 식이다. 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법원이 양심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양심을 증명하는 스펙만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진정한 양심을 갖추려는 노력이 아니라 가짜 스펙쌓기에 몰두할 수도 있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11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선고한 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인 오승헌씨가 취재진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오씨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다. 김창길 기자


정작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 중 유일하게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A씨에 대한 1·2심 판결문에는 특별히 A씨의 활동 내역에 대한 판단이 등장하지 않는다. A씨의 삶 전반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양심인지 여부를 판단했을 뿐이다.

A씨의 2심 판결문엔 오히려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양심의 본질상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기 전까지는 외부에 드러날 가능성이 적고, 특히 비종교적 양심의 경우 종교활동 등과 같이 자연스럽게 외부로 표명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할 때, 사회활동 등을 통해 양심을 표명할 것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요구할 경우 비종교인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결론에 이를 우려가 있다.”

이씨도, 검사도 항소했다. 검사는 벌금 300만원이 너무 가볍다고 했다. 2심에서 검사는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2심 재판부인 제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노현미)는 이씨와 검사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니라는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했다. 이씨 측은 동일한 예비군훈련을 반복적으로 부과하고 불응 시 반복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어떤 범죄에 대해 판결이 내려지면 다시 재판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의 원칙이다. 2심 재판부는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수차례 훈련소집 통지에 불응한 이상, 이는 모두 별개의 죄를 구성하는 행위”라며 “이를 중복해 처벌하더라도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내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2018년 11월1일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선고한 직후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씨는 2심의 마지막 재판에서 낭독한 최후진술문을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전문 보기)

최후진술문의 한 대목이다.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완벽히 귀결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스스로 온전한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자가 되어가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진실로, 전쟁에 동원되는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병역거부는 이 마음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 예비군훈련을 거부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47건의 훈련이 부과되었습니다. 10번의 경찰조사와 1번의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지난 1심 재판에 총 10번 출석했고, 3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되었습니다. 현재도 13건의 훈련불참에 대한 6개의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쉬다 오면 된다’ ‘꿀이다’라고 이야기되어지는 예비군훈련에 참석하지 않으면 겪게 될 이와 같은 불이익들을 제가 알면서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 제가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제 신념의 근거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대법원엔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건이 여러 건 올라가 있다. 이씨 사건도 곧 대법원에 올라간다. 법원은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언제 무죄를 선언할까. 양심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는가.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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