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만 좋은 일"인데..트럼프, 재집권 시 주한미군 빼갈까

박용한 입력 2020. 11. 1. 06:00 수정 2020. 11. 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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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지난달 14일 제52차 한ㆍ미안보협의회의(SCM) 발표문에서 매년 포함했던 ‘주한미군 병력 유지’ 언급이 빠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병력을 줄이거나 철수하려는 신호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회의 모두발언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방위비 인상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예정됐던 양국 국방장관의 공동 기자회견이 돌연 취소되는 등 한·미가 삐걱거리는 조짐도 나타나며 우려를 키웠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달 26일 국정감사에서 “미국 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 병력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해외 주둔 미군을 붙박이로 한 나라에 두는 대신 전략적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월 미국 신속대응부대(IRF)가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 습격 사태 대응을 위해 제82 공정사단 소속 보병대대 등 병력 750명을 급파했다. [AFP]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도 지난달 28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최대한 현명하게 해외 주둔 미군을 배치하는 방법에 대해 국방부가 광범위하게 평가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면서도 당장 미군을 감축하겠다는 뜻은 아니란 취지로 설명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군 병력을 감축할 가능성은 열어 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독일에서 만명이 넘는 병력을 빼냈다. 주둔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이유도 들었는데, 심지어 “독일만 그런 것이 아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둔 75년, 규모 놓고 논란 이어져
미군은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에 상륙한 이후 올해로 75년째 주둔하고 있다. 병력 규모도 계속 변해왔다. 철군과 병력 감축을 두고 한·미 정상 간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병력 규모에 대한 논란은 주둔 이후 계속 이어졌다.

1950년 9월 15일 한국군과 미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 2주 만에 서울 수복에 성공했다. [중앙포토]

해방 당시 ‘38도선’ 이남에서 군정을 실시하며 주둔하던 미군 병력은 7만 7500명 수준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최대 32만 5000명까지 늘어난 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단계적으로 감축됐다.

1960년대 6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병력은 1971년 미 육군 7사단이 철수하면서 4만 3000명으로 줄었다.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당선돼 1977년 취임했고, 2년 뒤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병력 감축을 주장했다.

카터 대통령은 ‘북한은 GDP 대비 20% 예산을 군사비에 투자하는데 한국은 5%를 쓰고 있다’며 설전을 벌였지만 결국 철군 계획은 거둬들였다. 이후 병력이 감축된 건 냉전이 종식된 1992년이었다. 주한미군은 15% 줄인 3만 6500명으로 조정됐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후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미국은 주한미군 병력과 장비 중 일부를 빼갔다. 이후 2006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은 2만 85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 빼 이라크 전쟁 투입
미군 감축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4년 내놓은 ‘전 세계적 방어태세 재검토 계획’(GDPR) 개념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냉전 이후 특정 지역에 주둔하던 ‘붙박이’ 미군을 신속하게 전 세계 어디라도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한다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세웠다.

GDPR의 ‘전략적 유연성’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역동적인 전력전개(DFE)’ 개념으로 정책 기조가 이어진다. ‘전략적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순환 배치와 신속 배치를 강조하면서 이번 SCM에서 주한미군 병력 언급이 빠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개념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를 필요하면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하길 원한다. 이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주둔하는 모든 미군에게 적용된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미군 전차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26일 국감에서 서욱 국방장관도 “미국 정부가 융통성 있는 기조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미 국방부에)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진행하는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언급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지상군 전투 부대인 주한미군을 한반도 방위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소방수로 활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7월 17일 미 육군전쟁대학(AWC) 부설 전략문제연구소(SSI)가 펴낸 보고서에서도 병력 재배치 필요성이 지적된 적이 있다.

보고서는 “하와이를 제외한 지역의 미군은 중국의 재래식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의 사정권 안에 있다”며 “소수 기지에 미군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비용 측면에선 효율적이겠지만 전략적으론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에서 “더 넓게 분산된 배치가 더 지속적이고 탄력적이며 해외작전 수행 능력에서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일부 국가엔 중국의 위협 때문에 새롭게 미군 주둔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RAND)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군 재배치에 대해 “올해 또는 내년에는 일어나진 않겠지만, 분명히 5~10년 내 언젠가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견제 나선 미 의회
병력 감축 가능성이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을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연계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은 지난 4월 이후 멈춰있다.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미 의회다. 미 상원과 하원은 지난 7월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주한미군 병력을 현 수준(2만8000명) 이하로 감축하기 어려운 조건을 걸어놨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도중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서부전선 최전방 미군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야외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병력을 줄이려면 국방부 장관은 해당 조치가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동맹국들의 안보를 저해하지 않을 것’이며 ‘동맹국들과 협의한 경우’라는 조건을 충족한다는 점을 의회에 증명해야 한다. 미 대통령은 이와 같은 의회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에 예산을 쓸 수 없다.

이는 주한미군 규모와 관련해 미국 내 여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체로 당장은 주한미군 철수나 병력 감축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미 의회 등 정치권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한범 국방대학교 교수는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병력이 줄어들면 중국만 좋은 일’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공세 예상"
한국은 독일과 달리 중국을 맞대고 있어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은 “중국과 경쟁 구도라는 측면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주둔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한국 역시 북한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 차원에서 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열린 장병 격려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독일 주둔 미군 병력 1만 2000명을 감축하면서도 5600명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했다. 실제 감축 규모는 크게 줄었고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효과를 그대로 이어갔다. 무턱대고 병력을 빼진 않는다는 의미다.

게다가 한국에선 이미 2004년 한·미 합의 이후 한반도에 흩어져 있던 주한미군 병력을 평택 미군 기지로 통합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험프리스 평택 기지엔 주한미군 병력 70%가 주둔하며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도 서울 용산에서 옮겨왔다. 한·미연합사령부도 조만간 이전할 계획이다.

험프리스는 해외 주둔 미군 기지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평가된다. 전체 면적은 430만 평으로, 여의도 5.5배ㆍ판교 신도시 1.6배 수준으로 최대 4만 5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정부는 기지 조성과 이전 비용의 94%(18조 원)를 부담했다.

향후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류제승 부원장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병력 감축을 비롯한 정책이 미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판단하고 보다 '거래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선거 결과에 따른 미국 내 동향을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신범철 센터장은 “국방수권법이 있더라도 다른 국방 예산에서 비용을 끌어오는 ‘전용’이 가능해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고 했다. 또한, 수권법은 매년 갱신해야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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