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사 모으기만 하는 맥시멀리스트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2020. 10. 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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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단호한 관계클리닉
Q1 심한 학업 스트레스로 끼니 거르는 친구
어려운 마음 어떻게 다독여줘야 할까
A1 힘들다는 걸 알아줄 상대가 필요한 친구
조언보단 "같이 힘내보자" 묵묵히 있어 주자
Q2 집 안을 물건으로 꽉 채운 맥시멀리스트 동생
허한 마음 채우려는 걸까 지켜보기 괴로워
A2 집 안 대부분의 물건 양 ½로 줄여보고
동생과 함께 지친 마음 돌보는 시간 가져볼 것
게티이미지뱅크

Q1 안녕하세요, 저는 18살이고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았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요. 저는 집안 분위기가 자유롭고 공부 압박도 없는 집에서 커서 큰 고민 없이 적당히 잘 사는 편이에요. 그런데 제 친구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친구가 언젠가부터 밥을 안 먹게 되었어요. 하루에 한 끼 정도 먹는 것 같아요. 요새 많이 못 보지만, 볼 때마다 “이번 주에는 밥을 몇 번 먹었다” 같은 얘기를 하거든요. 제가 걱정하면서 밥을 좀 먹고 다니라고 얘기하면 괜찮다고 웃으며 넘겨요. 상식적으로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근데 친구가 괜찮다니까 그냥 넘길까 싶기도 한데, 만나면 또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 상태에 쉽게 몰입하고 걱정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서 친구가 그렇게 말하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밥을 안 먹는다는 사실에 대한 걱정과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속상함, 그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심적으로 부담스러워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신과를 다니거나 상담을 받아봤으면 좋겠고, 끼니도 잘 챙겼으면 좋겠고, 만약 정말 괜찮다면 계속 밥을 안 먹었다고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안 그래도 불안정한 친구에게 어떻게 스트레스를 더 주지 않으면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저는 상대적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스트레스도 안 받고 나름 잘 지내고 있으니까 제가 너무 쉽게 말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고,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서 그 친구가 건강하게 저와 오래 친구로 지내줬으면 좋겠거든요.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친구의 끼니 문제가 걱정인 친구

A1 친구는 자기가 지금 많이 힘들다는 걸 알아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한 사람을 필요로하잖아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친구에겐 당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문제는 그런 호소를 할 때마다 당신이 걱정을 하고 조언을 해주어도, 상대방은 전혀 그 걱정이나 조언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요. 반복적으로 어떤 증상을 호소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전문 상담자와 의사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을 아직 자기 문제를 보기에도 버거운 10대가 하고 있으니, 당연히 진이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지요. 성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만날 때마다 자기 힘든 이야기만 몇 시간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무 지쳐서 제가 거리를 두게 되었던 기억이 있어요.

일단 밥을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것이 괴롭다면, 다정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세요.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결국 관계도 잃게 되거든요.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고 잘되길 바라. 그렇지만 밥을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까 들을 때 나도 속상하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얘긴데, 혹시 이렇게 들어주는 것 말고 내가 다르게 도울 방법은 없을까? 너를 정말 돕고 싶은데, 이렇게 들어주는 거 말고 다른 방법으로 돕고 싶어’라고 이야기해보세요. 더불어 만남의 횟수를 줄인다거나, 대학 입학할 때까지는 좀 거리를 둬본다거나, 만날 때마다 뭔가 아주 조금이라도 먹으러 가거나 하는 현실적인 방법도 있겠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우리는 다만 자신의 선택만을 조절할 수 있을 뿐,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어요. 누구나 환경이 다르고 사정도 다르죠. 개인 상담을 받거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당신이 내면의 어려움을 겪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일지 모르지만, 당신과 상황이 다른 친구에게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옵션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젠 듣기 싫다 말해도 다음번에 또 그럴 수도 있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간다 해도 내 앞에서조차 먹지 않아 당신이 더 화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친구를 위해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시고, 친구의 반응은 친구의 것이니 그냥 내버려두세요.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몰입하고, 자꾸 반복해 걱정하고 있는 것 역시 그저 당신의 선택입니다. 또한 내가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을 판단하고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요. 많은 부모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 자식의 삶을 손에 쥐고 흔들려 합니다. 친구가 내 말을 들었으면 좋겠고, 친구가 나에게 스트레스도 안 줬으면 좋겠고, 나와 오랜 친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바람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신 위주의 생각이었을지 몰라요. 내가 해줄 수 있을 만큼 노력하되, 그다음은 친구의 선택으로 남겨 두세요. ‘밥을 좀 먹어라. 상담을 받아라’ 등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보다, ‘힘들겠다, 우리 같이 힘내보자’라고 그저 곁에서 묵묵히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친구가 당신에게 바란 유일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작가

게티이미지뱅크

Q2 저는 30대 초반 여성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애가 좋은 편이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동생은 맥시멀리스트입니다. 사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심각한 호더(강박적으로 물건을 모은다는 뜻)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집이 막 쓰레기장 같거나 그런 건 아니란 뜻이죠. 겉보기에 집은 깔끔한 편이에요. 하지만 옷장을 열면 늘 빼곡해요. 옷 하나를 걸려면 가득 걸린 옷을 한쪽으로 힘껏 민 다음 걸어야 할 정도예요. 다용도실? 약 1년치 생필품으로 가득 차 있어요. 냉장고? 테트리스의 정수죠. 코로나19 초반, 사람들이 사재기할 때 저는 평온했습니다. 일상이 사재기인 동생이 쌓아둔 물건으로 충분하니까요.

저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좋은 걸 하나 사서 오래 쓰자는 주의입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물건 중 제 물건의 비중이 적은 편이에요. 동생은 그런 기준 없이 무조건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둘이 사는 작은 집에 물건이 넘쳐 나니 저는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여러 번 얘기를 해도, 물건마다 의미가 있고 추억이 있어 버리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 큰 맘 먹고 버리고 나면 그게 다시 필요한 일이 생긴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마음이 풍성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자꾸 허한 마음을 채우려 한다고요. 동생에겐 그게 물건인 걸까요? 동생 짐에 제가 얹혀사는 기분이에요. 왜 자꾸만 사고, 쌓아두는 일을 끊지 못하는 걸까요? 제 눈엔 버릴 것이 한가득한데, 그걸 보고 있자면 동생까지 미워집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맥시멀리스트와 살기 숨 막히는 미니멀리스트

A2 가장 큰 문제는 단지 물건을 많이 사들이고 쌓아둔다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이 샀어도, 딱 자기 방에만 쌓아놨다면 우애 좋은 자매인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명백한 공용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혼자 독점하다시피 쓰고 있으니 숨이 막히고 동생 짐에 얹혀사는 기분이 드는 것이지요. 중요하고 시급한 일부터 합의하고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방이 몇 개인지, 각자의 공간이 얼마나 따로 확보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개인 공간과 공용공간에 대한 선 긋기가 무조건 필요해요. 그리고 함께 지내는 공용공간, 함께 쓰는 가전이나 가구에 대해서는 지금 쌓아둔 부분의 ½ 수준으로 짐을 줄이는 것에 두 사람 모두 합의해야 해요. 혹시 하나의 옷장을 함께 쓰고 있다면 옷장도 마찬가지입니다. ½ 수준으로 줄이고, 지금 당장 입지 않는 옷과 유효기간이 없는 제품들은 유료 창고보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야 할 것 같네요. 공간은 조금 더 확보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보관하는 것이니 이 정도 합의는 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혀 타협이 되지 않는다면 좀 무리를 해서 각자 집이 좁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따로 떨어져 사는 수밖에 없네요.

사실, 모든 인생의 순간은 다 의미가 있고 추억이 아니던가요. 또한 추억은 물건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까지도 소중히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던가요. 동생은 어쩌면 우애가 좋은 언니에게조차도 꺼내기 어려운 어떤 일로부터 극복하려고 혼자서 애쓰는 중인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지금은 이기적으로 보이고 밉기까지 한 동생이지만, 동생도 어떤 식으로든 자기와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면 그 미움이 조금 누그러들지 않을까요? 물건을 강박적으로 쌓아두는 ‘저장강박’이란 진단을 받든 그렇지 않든, 두 분이 함께 심리상담센터에 가서 여러 가지로 지친 마음을 함께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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