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등 11차례 복권방, 새벽 6시부터 찍는 '마지막 희망'
올 복권 판매액 작년比 11% 늘어 "1등 당첨 땐 대출금부터 갚을 것"
27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 5가. 킥보드 한 대가 가게 앞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 근처에 멈췄다. 20대로 보이는 회색 후드티 차림의 한 청년이 킥보드에서 내려 줄 끄트머리에 섰다. 가게 앞에 놓인 입간판엔 흰색과 노란색 글씨로 ‘로또 1등 11번, 2등 82번 당첨 판매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일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이었지만 로또나 복권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6평이 채 되지 않는 가게 안을 다 채우고 넘쳐 열댓 명은 가게 바깥 도로까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직장인부터 등산 가방을 멘 중장년 남성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동생과 18년째 복권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석만(54) 사장은 “어휴, 원래 월·화는 쉬엄쉬엄 쉬어가는 날인데 요즘 아주 피곤해 죽겠어. 은행 갈 시간도 없다”며 쉴 새 없이 ‘자동’ 버튼을 누르고 기계에 종이를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돈을 내면 기계에서 로또 종이를 뽑아 건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초 남짓. 하지만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모(33)씨는 6개월 전부터 매주 비번인 날 인천 부평구에서 이곳을 찾아와 복권을 산다. 당첨자가 여럿 나온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다고 한다. 김씨는 “당첨되면 아파트 대출금부터 갚을 것”이라고 했다. 한 달에 두어 번쯤 온다는 성북구 석관동 주민 정석순(72)씨는 “대박의 꿈을 노리기 위해 왔다”며 “내 나이에 할 게 없잖아”라고 했다.
난세에는 대박을 좇는 복권이 보통 활황이다. 코로나로 인한 장기 침체가 이어지자 불황 상품인 복권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6월까지 복권(로또·연금복권) 판매액은 2조620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11.1% 증가한 수치로, 2005년 기재부가 사업 실적을 공개한 이래 사상 최대치다.
현실에서 위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기댈 곳을 찾아 헤맨다. 강북구 미아동에 사는 형남송(58)씨는 이날 로또 한 장을 사면서 “일주일이 행복해져. 이걸로 버티는 거지”라고 말했다. 종로 3가 학원에 왔다가 쉬는 시간에 로또를 사러 온 김모(28)씨는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가 많이 없어졌잖아요. 허황한 꿈이라도 꿔보려는 거죠. 당장에 기댈 곳이 없잖아요”라고 했다.
복권방 사장 장씨가 손님에게 건네주는 로또 종이에 ‘770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 주 들어 지금까지 복권 판매 장수”라고 했다. 하루 반나절 만에 몰린 숫자다. 다음 날인 28일 오후 비슷한 시각엔 ’14003′이 찍혀 있었다. 로또 판매가 마감되는 토요일 저녁 8시가 되면 4만을 훌쩍 넘긴다고 한다. 로또 한 장이 5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가게에서만 일주일에 약 2억원어치 매상을 올리는 셈이다. 그는 “작년 대비 주당 매출이 1000만~2000만원가량 늘었다”며 “수요일부터 차츰 손님이 늘어 금·토요일에 고점을 찍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은 주 초부터 손님이 몰린다”고 했다.
장씨는 “야심한 시각에 결사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4~5일 전에도 새벽 6시에 가게 문을 열자마자 2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산다’고 중얼거리더니 로또 10만원어치를 사갔다고 한다. 장씨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느낌이 딱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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