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함께한 기억의 부활, 죽은 자들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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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서 부고가 부쩍 늘었다.
뼈에 콕콕 박히는 냉랭한 기운이 싫어 게으른 고양이처럼 따끈한 햇볕을 따라 걷는 계절로 바뀔 때, 더는 매서운 겨울을 버틸 자신이 없다는 듯 노인들에게 불쑥 죽음이 찾아온다.
살아 있는 자들이 망자들을 더는 기억하지 않을 때 영원히 사라진다고 믿기에, 죽음보다는 자신을 기억해 줄 추억이 없다는 게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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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서 부고가 부쩍 늘었다. 뼈에 콕콕 박히는 냉랭한 기운이 싫어 게으른 고양이처럼 따끈한 햇볕을 따라 걷는 계절로 바뀔 때, 더는 매서운 겨울을 버틸 자신이 없다는 듯 노인들에게 불쑥 죽음이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느껴지는 슬픔의 파장이 있다면 그 동심원의 넓이도 조금씩 좁혀오는 듯하다. 늙음의 대명사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조부모의 죽음이 넓고 먼 슬픔이라면 이제는 나의 중심을 깊게 흔들 아버지 세대의 차례다. 하지만 친구 부모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도, 내 부모는 아직 젊다며 자꾸 뻗어나가는 생각을 애써 접는다. 우리에게 죽음이란 마지막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금기의 언어인 탓이다.
시월의 끝을 맞이하는 멕시코에서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곧 축제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이라는 멕시코 최대의 명절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다. 무시무시한 해골 모양이 사방팔방 인형과 조형물로 나타나고,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은 테킬라나 장난감을 바리바리 싸 들고는 가족과 친구의 묘지를 찾아간다. 노란 마리골드로 꽃길을 꾸며 죽은 이의 영혼을 집으로 이끌고, 제단에는 한가득 촛불을 켜서 돌아온 망자를 환영한다. 일 년에 한 번 세상을 떠난 이들이 다시 찾아와 축복을 전하는 기쁜 날인 셈이다.

덕분에 다른 문화권에서 터부시되는 죽음이 멕시코에서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자주 말하는 주제가 된다. 멕시코의 대표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죽음을 부정하는 문명은 인생을 부정함으로써 끝난다”라고 말했듯,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진리를 거부하면 결국 삶을 피상적으로 살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상징하는 해골 모양의 빵과 사탕을 나누며 그들이 바라는 건 ‘기억의 부활’이다. 무덤 곁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밤을 보내며 떠난 이가 즐겼던 음식을 먹고 좋아했던 음악을 함께 듣는다. 살아 있는 자들이 망자들을 더는 기억하지 않을 때 영원히 사라진다고 믿기에, 죽음보다는 자신을 기억해 줄 추억이 없다는 게 더 두렵다. 멕시코 사람들이 지금 바로 이곳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몇 달에 한 번씩 들를 때마다 우리 아빠의 영혼은 한 줌씩 덜어지는 것만 같다. 어디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처럼 눈에 띄게 줄어드는 말수. 대답도 느려지고 반응도 굼떠지고 웃음조차 희미해진다. 수십 년간 다니던 조직에서 은퇴한 사람의 일상은 한없이 조용하고 무료하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단팥빵 몇 봉지를 사 들고 간 덕에, 아빠가 중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찐빵가게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 하나라도 사 먹으면 한 입만 달라고 주르르 매달려 졸랐다는 추억을 들으며 잠시 같이 웃었다. 이제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힘겹다고 삐걱거리지만, 한때는 내가 놀이기구처럼 올라타고는 방방 뛰었던 그 무릎을 기억해 둔다. 첫 배낭여행을 떠날 때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며 걱정으로 꾹 다물던 입술, 등굣길을 지켜주고는 묵묵히 먼 길을 돌아가던 차창에서 보았던 옆 얼굴을 새겨 본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니 오늘 만든 이 기억이 더 귀해졌다.

전혜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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