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악재'에 휘청이는 '사무용 가구의 전설' 퍼시스그룹

이석 기자 2020. 10. 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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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 1위 퍼시스의 실적 하락 왜?
국세청, 말 많았던 2세 승계 의혹 핀셋 조사하나

(시사저널=이석 기자)

국내 사무용 가구 1위 업체인 퍼시스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다. 퍼시스는 1983년 설립된 한샘공업이 모태다. 한샘의 생산과장으로 근무하던 손동창 퍼시스그룹 명예회장이 퇴사 후 설립한 회사다.

손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사무용 가구 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철제 책상과 서랍이 일체형이던 시절, '시스템'과 '사무환경'이란 개념을 도입해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다. 1996년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했고, 2006년 2000억원대, 2018년 3000억원대를 넘어섰다. 사무용 가구에서 성공한 손 명예회장은 가정용 가구(일룸)와 의자(시디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두 사업 역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오면서 퍼시스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8000억원대를 돌파했다.

ⓒ시사저널 포토

일룸·시디즈 뛰는데, 퍼시스는 제자리

특히 일룸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2017년 125억원에서 지난해 1929억원으로 2년 만에 매출이 1443.2%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억원 적자에서 86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가정용 가구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수혜 업종 중 하나인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성장률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룹의 모태 회사인 퍼시스는 반대였다. 2018년 3157억원으로 매출이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3048억원, 영업이익은 25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3.5%, 9.4% 하락한 수치다. 올해 상황은 더 안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국내 증권사의 매출 컨센서스를 종합한 결과, 퍼시스의 올해 매출은 2694억원, 영업이익은 21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6%와 13.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가 역시 맥을 못추고 있다. 2019년 5월 4만원에 육박하던 주가는 1년 반 만에 2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올해에만 두 번이나 퍼시스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정홍석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기업들의 사무용 가구 구매가 저조해지면서 본업인 사무용 가구 부문이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계열사 일룸이나, 실적 증가로 1년여 만에 주가가 60% 가까이 증가한 시디즈와 대조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퍼시스그룹 계열사 간 실적 괴리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지난 2015년까지만 해도 퍼시스그룹은 손 명예회장이 지배하고 있었다. 손 명예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시디즈(현 퍼시스홀딩스)를 통해 일룸과 퍼시스, 팀스(현 시디즈)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2세 밀어주기 의혹

2016년부터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시디즈는 돌연 일룸의 지분 45.84%를 이익 소각한다. 일룸은 2007년 시디즈에서 인적분할한 가정용 가구회사다. 2013년 635억원, 2014년 995억원, 2015년 1315억원 등으로 매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런 알짜 계열사의 지분을 시디즈가 소각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일었다. 2017년 4월 시디즈는 팀스의 지분 전량(40.58%)을 계열사인 일룸에 매각한다. 이듬해 시디즈는 주력 사업인 의자 제조 및 유통부문마저 325억원에 팀스에 넘기게 된다.

일련의 지배구조 변화를 통해 그룹의 주축은 손동창→시디즈→일룸·팀스·퍼시스에서 2세인 손태희 사장→일룸→시디즈로 바뀌게 된다. 이후 껍데기만 남은 시디즈는 퍼시스홀딩스로 사명을 교체한 후 지주회사로 전환한다. 손 명예회장의 경우 이 퍼시스홀딩스를 통해 퍼시스만을 지배하면서 위상이 대폭 축소됐다.

퍼시스그룹 측은 "시디즈와 팀스의 영업 양수도 계약은 상장회사 팀스의 사업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함이었다"면서 "325억원의 계약금액 역시 회계법인의 외부 평가를 통해 투명하게 결정한 만큼 문제는 없다"고 시사저널에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지배구조 변화를 통한 편법적 2세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그동안 적지 않게 제기됐다. 오너 2세가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그룹 경영의 한 축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창업주가 지주회사나 핵심 계열사 지분을 2세에게 넘기고, 그 금액만큼 세금을 내는 게 정상적인 승계 수순"이라면서 "퍼시스그룹의 경우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세금 없이 경영권을 승계한 정황이 있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손 명예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이 사실상 마무리된 2018년 초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경영권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것이다. 장남인 손태희 사장은 2017년 말 부사장으로, 2019년 말에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9년 만에 속전속결로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지은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버지 회사의 실적은 하락하고, 아들 회사가 성장한 이유를 단순히 코로나19 영향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알짜 사업부문을 모두 내주면서 경쟁력이 약화된 것도 계열사 간 실적 괴리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퍼시스 측 '묵묵부답' 일관

국세청이 최근 퍼시스그룹을 상대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5월 일룸이 위치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사옥에 조사인력을 투입해 회계자료를 확보했다. 당시 퍼시스그룹 측은 "정기 세무조사의 일환"이라고 언론에 해명했다. 하지만 9월 세무조사의 칼날이 퍼시스로 확대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손 명예회장과 퍼시스그룹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했지만 회사 측은 "문의 주신 사항에 대해 현재 답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만 짧게 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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