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팩트체크] 韓 노동시장 경쟁력은 '후진국' 수준일까
WEF 국가경쟁력평가 '노동시장' 부문 51위 '중위권'
평가순위 낮은 지표만 인용.. 후진국 단정 어려워
다만 "고용·해고관행과 노사관계 개선은 필요"
[파이낸셜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노동법 개정을 제안하며 “우리나라 노동법과 노사관계법, 임금결정과정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발언한 근거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다. 김 위원장은 해고 관행, 노사관계 등 주로 우리나라가 노동부문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항목만 선택적으로 인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고서 하나 만으로는 노동시장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참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급여와 생산성, 노동정책 등 비교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항목들과 혼재해 있는데다 노동계는 "철저히 재계 위주의 통계"라며 WEF 보고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해고·고용 관행과 노사관계 개선은 이뤄져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발표에 의하면 141개 국가 중 우리나라의 고용·해고 문제는 102번째고, 노사관계는 130번째에 달하고, 임금의 유연성은 84번째 위치를 차지한 매우 후진적인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인용한 것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다.
김 위원장은 △고용 및 해고 관행(102위) △노사 관계에서의 협력(130위) △임금 결정의 유연성(84위) 등 한국이 낮은 평가를 받은 항목만 주로 거론했다.
WEF 세부항목을 보면 한국이 비교적 높은 평가를 얻은 항목들도 있다. '급여와 생산성'은 141개국 중 14위를 기록했고, '적극적 노동정책'은 20위, ‘노동시장’은 51위, '전문경영에 대한 신뢰도'는 54위에 이름을 올렸다.
WEF의 국가경쟁력 보고서가 국내 노동시장 경쟁력을 제대로 진단할 타당성 있는 평가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시장을 분석하는 기준이 다양해 하나의 보고서만으로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점에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동계에서는 WEF 국가경쟁력 평가가 기업 설문조사 위주로 진행된, 편향적 연구라고 본다”며 “하지만 이 평가가 해외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 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노동시장 평가에 대해서는 노동계와 노동법 학계, 경제학계 등의 의견이 다양하고 논쟁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노동시장 지표를 두고도 노사는 극명히 엇갈린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민주노총은 “ILO(국제노동기구)와 OECD의 여러 지표가 증명하는 대한민국의 노동지표는 최악 가운데 최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이상호 고용정책팀장은 "캐나다 프레이저 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유연성이 162개국 중 144위”라며 “국제적으로 노동유연성 순위가 거의 꼴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노동유연성 제고·노사갈등 해소 필요"
다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지적한 해고·고용 관행과 노사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크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실제 한국의 고용유연성은 서구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5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입사하자마자 해고보호 제도가 적용된다.
반면 미국의 경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은 2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에게만 해고보호 제도가 적용돼 우리에 비해 규제 강도가 낮다.
노사교섭 과정에서 잦은 충돌로 노사간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박지순 원장은 “과거 사례를 통해 형성된 노사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해외에서도 하나의 기정사실”이라며 "노사관계를 개혁해야 할 주체가 외려 ‘개혁의 대상’이 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호봉제 위주의 현행 임금구조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에게 전가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박 원장은 “직원들의 생산성에는 정점이 있는데 호봉제에서 임금은 우상향 곡선”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 근로자의 연봉을 올리는 게 부담스러워 빨리 내보내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실사구시'로 노동규제 개혁해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찾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원장은 "미국은 파견이 자유롭고, 영국과 프랑스 등도 산업분야에 따라 파견 제한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조업 분야에서 파견이 금지돼 있다"면서 "변화하는 산업구조와 근로자들의 인식수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및 일자리 창출의 관점에서 지금과 같은 규제방식이 안 된다는 것에는 부정하기 어렵다. 필요한 개혁을 ‘실사구시’적으로 찾아, 규제로 인한 경직화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법 개정에 앞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경주 원장은 “플랫폼 노동 등 고용형태가 다양해졌지만 상당수 취업자가 노동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있다”며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도 있지만 사회안전망 확보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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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name@fnnews.com 김나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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