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대 국시' 강공 전환..의료계마저 "국민 협박하나"
파업 등 집단행동 가능성 낮지만 "여론 협박"
의료계 내부서도 "국민 거부감 키운다" 비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생 국가시험(국시)을 추가로 실시하라며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3일 시한’을 통보하고, 파업을 암시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의협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협은 29일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지만 파업 등 강경한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동의 선행" 기존 입장에 "파업 등 가능성 열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28일 “보건복지부가 (국시 추가 시험이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상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의협은 29일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후의 수단인 파업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난 25일 열린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정부가 28일까지 국시 문제에 대해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방적으로 3일의 시한을 통보한 것이다.
의협은 27일 복지부와 의정협의체 운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실무회의에서도 의정 협의 전에 국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복지부가 “의정 협의체 구성의 전제조건으로 국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의협은 입장문을 내 “28일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해결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로 인해 벌어질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다시 한번 압박했다.
하지만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의협이 통보한 ‘시한’의 마지막 날인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국시 추가시험 실시를 위해선) 국민적인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명분 없어 파업 가능성 낮아"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의협이 파업 등의 집단 행동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은 전공의에게 다시 파업을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파업을 할 여력도 없다”며 “할 수 있는 행동 자체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8,9월 의료계 집단행동이 마무리된 지도 얼마 안 된데다, 국시 문제가 파업의 명분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집단행동을 하려면 회원들 의견수렴이 필요하지만, 의협은 별도 회의를 소집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과 범의료계투쟁위원회(범투위) 공동위원장들이 국시 문제에 대한 향후 계획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이 이처럼 강공 모드로 정부를 압박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은 의대 국시 문제를 푸는 데 아무 효과도 없다”며 “오히려 국민의 거부감만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올해 안에 2,700여명의 의대생이 실기시험을 모두 치를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한을 제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의대 교수와 병원장들은 정부와 학생들 사이에서 중재에 나서거나, 여론을 돌리는 데 힘을 썼다. 의대 학장들은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의 국시 실기시험 응시 의사를 취합해 복지부에 전달하며 추가 시험 실시를 요청했다. 또 의대 교수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해 권익위의 중재를 요청했고, 서울대병원장 등 주요 병원장들은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원의 중심 의사단체인 의협은 중재나 사과가 아닌, 정부 압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협은 ‘국시 기회 안 주면 또 파업할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파업 이후 여론이 더 차갑게 돌아섰는데 이제는 (의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정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은 국민이 생각하는 공정의 문제, 의사들의 특권 의식, 국민을 협박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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