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예비군 275만명에 '쥐꼬리 예산'
안녕하세요, 오늘은 군 수뇌부가 항상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실제 예산배정 등 우선 순위에선 가장 뒤처지는 국방분야 중의 하나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바로 예비(동원) 전력 문제입니다.
아직 예비군 훈련 대상인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예비전력 현황은 열악함과 창피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현재 우리 예비군은 275만명입니다. 그런데 예비군 등 예비전력 예산은 2067억원에 불과합니다. 2000억원이면 F-15K 전투기 2대, K-2 ‘흑표’ 전차 25대, 이지스함(척당 1조원) 0.2척 값입니다.
◇예비전력 예산 국방비의 0.4%에 불과
전체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로 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는 게 이 정도 수준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국방비에서 예비전력 예산이 차지한 비중은 0.3%에 불과했습니다. 2018년엔 1325억, 지난해엔 1703억원이었지요. 275만명에 달하는 예비군 운용 총예산이 2000억원도 안됐던 것입니다.
정부와 군 당국은 공식적으로 ‘국방개혁 2.0’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예비전력 강화를 공언해왔습니다. 국방부가 매년 발간하는 국방백서는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고 전쟁 지속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예비군을 상비군 수준으로 정예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예비군 창설 50주년 기념 축전에서 “예비역 한 사람이 평화를 지키고 만드는 일당백의 전력”이라고도 했습니다. 국방부도 지난 2018년 4월 동원전력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본격적인 예비전력 강화에 나서는 듯했습니다.
◇“예비전력 강화가 대규모 병력감축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
이 같은 예비전력 강화 계획엔 인구절벽에 따른 대규모 병력감축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와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8년 이후 5년간 총 11만8000명의 병력이 줄어 오는 2022년 우리 군 총병력은 50만명이 됩니다. 현재 56만명 수준까지 줄어든 상태입니다.
감축되는 병력은 모두 육군입니다. 48만3000명에서 36만5000명으로 줍니다. 5년간 매년 2만3600명이 감축되는 셈입니다. 매년 2.3개 사단이 없어진다는 얘기지요. 군단도 8개에서 6개로 줄어듭니다. 지난해 말까지 최정예 기계화부대인 육군 20사단 등 일부 사단이 통폐합돼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일각에서 전력공백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병력 감축 외에 복무기간 단축(3개월), 대체복무제 도입까지 보태지면서 육군은 이른바 ‘3중(重) 쓰나미’에 휩쓸려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 같은 우려는 북한이 128만명의 정규군 외에 650만명에 달하는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고 복무기간(10년)도 우리보다 훨씬 길어 증폭되고 있는데요, 결코 과장된 기우가 아닙니다.
국방부는 부사관·군무원 등 직업군인 확충과 예비전력 강화로 전력 공백을 메우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직업군인 확충은 부사관 모집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군무원은 야전 전투력 강화와는 거리가 있어 한계가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예비전력 강화가 병력 감축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합니다.
◇2차대전 때 만들어진 곡사포로 훈련하는 경우도
하지만 현실은 이런 ‘당위론’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예산이 쥐꼬리만하니 좋은 신형 장비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특히 포병, 기갑 분야가 어려움이 많다는데요, 현재 현역 포병들은 상당수가 K-55, K-9 등 자주포를 운용합니다.
반면 예비군에는 자주포가 없어 끌고 다니는 구형 105㎜ 또는 155㎜ 견인포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현역 시절 최신형 K-9 자주포를 운용했던 예비군이 한 번도 다뤄보지 않은 구형 견인포를 실전에서 얼마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차도 현재 동원사단 전차는 20~30년 이상 된 M48 계열입니다. 현역 시절 K-1, K-2 전차를 운용했던 예비군들로선 M계열 전차를 제대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육군이 국회 국방위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동원(예비군) 부대가 운용하는 전차, 장갑차, 견인화포, 박격포, 통신 등 대부분의 장비가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155mm 견인포 등 70년 이상 경과된 장비도 일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우리 동원훈련 기간 10배가 넘는 이스라엘 예비군
반면 예비군 선진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 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습니다. 우리보다 적은 87만명의 예비군을 운용하는 미국은 국방비의 9%(520억 달러, 2018년 기준)를 예비군 예산으로 할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말 그대로 ‘예비 전력’인 우리 예비군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릅니다. 정규군과 다름없고 실전 경험 면에선 정규군보다 앞서는 존재라고 합니다. 아랍권에 비해 절대적인 인구 열세에 있었던 이스라엘은 예비군을 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1973년 4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군 병력은 현역과 예비군을 모두 합쳐 41만명이었는데요, 아랍 연합군(100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습니다. 그 뒤 이스라엘은 예비전력 강화에 주력한 결과 현역(17만)의 두 배가 넘는 46만명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는데요, 연간 동원훈련 기간도 우리 동원훈련 기간(2박3일)의 10배가 넘는 38일에 달합니다.
◇예비전력 강화 특단의 대책 없으면 안보공백 ‘발등의 불’
우리와 같은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없는 싱가포르도 상비군(7만명)의 4.5배에 달하는 예비군(31만명)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예비군 복무 기간은 상비군의 5배(10년)에 달합니다. 연간 40일 동안 강도 높은 동원훈련을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금전적 보상과 복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예비전력 강화에 대한 획기적 전환이 없다면 대규모 병력 감축 등에 따른 안보 공백은 ‘발등의 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비전력에 대한 정부와 군 수뇌부의 각성과 특단의 대책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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