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게 총애받던 박형철, 그가 입 열수록 조국은 다친다

박태인 입력 2020. 10. 26. 05:01 수정 2020. 10. 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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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했던 조국 전 민정수석(오른쪽)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오른쪽). [연합뉴스]

"박형철 비서관의 진술과 다르네요"

지난해 12월 26일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재판장은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조 전 장관과 그의 변호인의 해명이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검찰 진술과 다르다는 말이었다.

다음날 새벽 법원은 조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도 "사건의 범죄혐의가 소명됨에도 피의자는 범죄사실을 부인한다"며 "피의자가 직권을 남용해 우리사회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저해한 사정이 있다"고 조 전 장관을 질타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조 전 장관에겐 이 순간이 가장 힘든 때였다.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은 자신의 직속 상사였던 조 전 장관을 구속 직전의 위기까지 몰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서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기소, 박형철 진술이 결정적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재판에서도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건 본인도 조 전 장관의 공범으로 기소된 피고인 신분이란 점 뿐. 박 전 비서관은 기소 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에서 밝혔던 진술을 유불리와 상관없이 모두 인정했다.

조 전 장관이 2018년 12월 국회에서 "유재수의 비위 첩보가 약했다"고 한 것은 자신이 초안을 작성한 허위 답변이라 했고, 유재수에 대한 감찰은 비정상적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지난 재판에선 전 청와대 특감반원이 "결국 끝에 가면 다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사실대로 말해야지 어떻게 하냐"고 했던 박 전 비서관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었다.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은 조 전 장관 기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박형철의 진술은 함께 기소된 조국, 백원우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사실 불리하다"며 "검사 동료였던 입장에선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현직 검사는 "박형철 그 사람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성품이 못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반부패비서관을 역임한 박 전 비서관은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선 '배신자'란 낙인이 찍힌 상태다.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지난해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 관련 재판에 출석하던 모습. [뉴스1]



친문에 배신자 낙인 찍힌 박형철
박 전 비서관의 진술이 현 정부 인사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이 사건뿐이 아니다. 청와대 울산시장 개입의혹 사건도 '박형철의 입'이 검찰 수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울산시장 사건 공소장엔 "피고인 박형철은 범죄첩보서의 내용을 직접 읽어 보고는, 해당 범죄첩보서의 생산 내지 (그 내용을) 수사기관에 하달하는 것은 대통령비서실 내 어느 부서의 권한이나 업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심각한 위법임을 충분히 인식하였다"고 적혀있다. 박 전 비서관의 자백성 진술이 없었다면 공소장엔 담기기 어려운 내용이다.

박 전 비서관은 현 정부가 출범한지 4일째였던 2017년 5월 12일 청와대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는 박 전 비서관을 "검찰 재직시 '면도날 수사'로 정평이 났으며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와 함께 권력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다. 윤 총장도 이후 일주일 뒤 대전고검 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2013년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최종 수사결과 발표장에 참석했던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과 박형철 부장검사의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조국 모두에게 총애받은 박형철
당시 청와대의 소개처럼 박 전 비서관은 윤석열 검찰총장과 뜻이 맞았다. 윤 총장을 사석에선 "석열이 형"이라 부를만큼 가깝게 지냈다. 국정원 댓글조작 수사 뒤엔 윤 총장과 동시에 좌천성 인사를 당했고 2016년에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뒤 윤 총장과 함께 화려하게 복귀했다. 지난해 7월 검찰총장 임명식으로 청와대를 찾은 윤 총장은 당시 박 전 비서관의 등을 두드리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런 두 사람의 인연을 두고 친문 지지자들은 "박형철이 윤석열의 편으로 돌아섰다""검찰 출신은 어쩔 수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유재수 사건과 울산시장 사건에서 박 전 비서관은 윤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로부터 기소당했다.

박 전 비서관은 조 전 장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도 가깝게 지냈다. 백 전 비서관과는 형님, 동생 할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조 전 장관도 박 전 비서관을 총애했다. 조 전 장관은 23일 재판에 출석하며 박 전 비서관을 '동료'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정에선 그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박형철도 결국엔 잘못된 걸 알면서도 청와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 그의 책임도 없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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