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떠나다

구교형 기자 입력 2020. 10. 25. 10:00 수정 2020. 10. 2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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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심근경색으로 6년5개월 투병 끝에 별세..장례는 가족장
반도체·스포츠 분야 등 큰 족적..이재용 부회장, 경영 전면에

[경향신문]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11년 7월29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참관한 후 임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사업장을 떠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간의 투병 끝에 사망했다. 고인의 별세로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명실상부한 삼성그룹의 총수로 본격적인 경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고인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수학했다. 1970년대 중반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선택된 고인은 이병철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닦았다. 당시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근본적인 혁신을 촉구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TV, 반도체, 스마트폰 사업 등에서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그 결과 고인이 취임한 1987년 9000억원이던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2014년 318조7000억원으로 348배 늘어났다.

고인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6년 한국인 가운데 김운용 전 대한체육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임됐다. 한국 스포츠와 IOC를 위해 꾸준히 활동했던 고인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공을 세웠다.

그러나 경영권 편법 승계와 불법 비자금 조성 등의 문제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2000년 법학 교수 43명은 그룹 경영권 상속을 위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했다며 고인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인의 자녀들이 계열사의 도움으로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며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또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으로 ‘삼성특검’ 조사를 받고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돼 2008년 경영일선에서 퇴진하고 그룹 전략기획실 해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특별사면된 고인은 2010년 경영에 복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고인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고인이 입원해 있던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다. 삼성그룹은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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