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성공체험이 혁신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2020. 10. 2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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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
(10) 어떻게 조직을 혁신할 것인가
리더의 희생, 위기의식의 공유
조직 혁신을 위한 기본 조건
자신 이후의 회사를 고민하는
경영자에게 구성원 진정성 느껴
겸허함은 굴욕 참아내는 행동
그 끝에서 얻어지는 것 아닐까
생존만이 조직의 목적일 수는 없다.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질문에 경영진은 늘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도 그런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Q. 회사가 또 혁신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도 조직개편 중심인 혁신안을 실행한다고 하지만 이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혁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제대로 혁신해서 회사가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적극 동참하고도 싶습니다.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예, 이젠 ‘혁신’이란 말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지요. 혁신(革新)이란 몸의 가죽과 피부를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니 사실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손발에 2도 화상만 입어도 새살이 돋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근래엔 개선 정도의 일에도 혁신이란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어떤 조직이 혁신을 한다고 할 때는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조직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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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위기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런데 혁신 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고경영자의 확고한 내적 확신과 더불어 그 리더십의 진정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리더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조직의 미래와 후배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 구성원들은 극단적인 신뢰를 보냅니다. 즉 진정성은 리더의 자기희생을 먹고 자랍니다. 다음으로는 조직 내부에서 위기의식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최상부에서만 논의되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소외된 채로 시행되는 조치들은 억지로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발적 참여와 실행 단계에서의 창의력이 확보되지 못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유야무야되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면 경영혁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조직개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편 뒤 조직이 기대한 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 자발성과 창의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결코 기대한 효과를 보기가 어렵지요. 또한 적지 않은 경우 조직개편이 재무적 관점에서 추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경비절감 그 자체를 위한 조직개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업의 본질을 훼손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생존이 우선이지만 단지 생존만이 조직의 존재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영진은 늘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조직개편도 ‘비용 얼마를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접근보다는 ‘무슨 산출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즉 재무적 관점을 넘어 전략적 관점에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혁신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고경영자가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을 가슴으로까지 연결하여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는 참으로 멀 수도 있습니다. 또는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시니어 임원들의 과거의 성공 체험이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설혹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의 성공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저항하고 거부함으로써 시간이 가면서 결국은 혁신 전략이 실행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체험이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진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는 최고경영자가, 임원진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성공 체험이 전부가 아니고 변화와 위기는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올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최고경영자는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고 길을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자신의 재임 기간에만 성과를 내려는 사람은 결코 처절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 이후의 회사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최고경영자에 대해 조직 구성원들은 진정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진정성에 대한 극단적인 신뢰는 실질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혁신과 관련하여 리더가 하기 쉬운 실수가 한 가지 더 생각납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리더는 똑똑하면서 오만한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일을 잘하며 특히 윗사람에게는 아주 잘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 곁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이지를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만하고 똑똑한 그는 무능함을 죄악으로 여기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최고경영자는 장점을 가진 다양한 사람을 품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 때문에 필요한 인재를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성공 체험과 똑똑함은 미래를 위한 아주 긴요한 자산일 수도 있지만 또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동안 경영계에서 유행했던 얘기 중에 소위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라는 게 있지요. 냄비에 상온의 물을 넣고 그 속에 개구리 한 마리를 넣어서 아주 서서히 끓이기 시작하면 개구리가 물이 급격히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니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유유히 놀다가 결국은 삶아진다는 것이지요. 기업도 조직도 똑같다는 겁니다. 경영위기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그냥 그대로 있다가 결국 망한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는 소위 ‘불타는 시추선’(burning platform)이라는 비유인데, 어느 북해 해양 가스 시추선에 화재가 났습니다. 폭발로 부근이 이미 불바다인데,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지만 그냥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업이 위기 상황에서 과감한 결단,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혁신은 물이 내 발목 정도까지 왔을 때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무릎까지 차올라오면 이미 그냥 걷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더군다나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라오고 난 뒤에야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배를 버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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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길

짐 콜린스는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위대한 기업을 만든 경영자들은 대개 리더십의 가장 높은 수준인 제5단계 리더십에 도달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의 리더는 인간적 겸허함(personal humility)과 프로다운 의지(professional will)를 역설적으로 융합하여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회사가 지속적으로 위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영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겸허함, 휴밀리티(humility)의 어원은 휴머스(humus)인데 유기질이 풍부한 짙은 색깔의 흙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편, 굴욕이라는 의미의 휴밀리에이션(humiliation) 역시 땅, 흙, 아래, 낮음 등의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겸허함이라는 것은 굴욕을 참아내는 행동, 그 끝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겸허함을 얻으려면 굴욕이라는 단련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조직을 위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크며 높은 능력을 인정받고 또 성과를 내는 중간 관리자가 간혹 회사 안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또 굴욕적인 대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부당하다, 옳지 않다,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면서 분노하고 또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이것이 굴욕이라는 단련 과정을 통해서 겸허함의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머리가 가슴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가장 먼 거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갈 수는 없는 길이라서 머리의 생각이 땅으로 떨어져 흙 속에서 뒹굴고 나서야 드디어 가슴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는, 즉 리더십의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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