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형제'사망에 대책 만든다"는 여야.."실현성 높여야"
여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 한목소리
전문가 "대책은 이미 많아..문제는 실현성"
"국가 책임 방기" 지적도
지난달 14일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발생한 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인천 초등학생 형제 중 8살 동생이 21일 사망했다. 사고 발생 37일 만이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계에서는 여야할 것 없이 애도를 표하며,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늘어나는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닌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까지 담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돌봄 사각지대' 대책 많은데…여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한목소리
인천 '라면 화재 사건' 형제의 8살 동생이 안타깝게 숨지면서, 정치권에서 돌봄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겠다고 연이어 발언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 형제 중 끝내 숨진 동생 빈소에 어젯밤 조용히 조문을 다녀왔다"며 "이런 문제의 기본에는 빈곤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연구원내 두기로 한 신(新)복지체계 연구기구가 빨리 출범하길 바란다"며 " 정책위원회가 꼼꼼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황규환 국민의힘 부대변인 또한 논평을 통해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계에서의 이 같은 목소리는 ‘라면 화재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속되고 있다. 이미 일부 대책들은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난 14일 학대 아동을 관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법원에 일종의 강제력을 부여하는 취지의 방안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우선 방임·정서 학대에 대해 가정법원이 적극적인 보호 조처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학대 아동 가정에 개입할 때는 바로 돌봄 서비스 기관에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
방임 학대로 판단된 아동이 초등돌봄교실을 우선 이용하도록 했고, 이를 부모가 거부할 경우 과태료도 부과할 수 있도록 법규를 개정하기로 했다. 이어 내년까지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함으로써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자체 공무원이 학대 조사 업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대책들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천안에서 거주 중인 9살 남아가 계모에 의해 가방에 갇혔다가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지난 6월 아동학대 대응에 대한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교육부는 아동학대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 예방접종이나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아동, 장기 결석하는 아동의 정보를 활용해 방임이 의심되는 사례를 선별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경찰,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도 나서서 최근 3년간 학대 신고된 아동의 안전을 다시 한번 점검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에도 우리 사회의 돌봄 사각지대는 계속됐다. A군 형제는 지난달 14일 보호자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려다가 불길에 갇혔고, 결국 동생은 지난 21일 끝내 숨을 거뒀다. 이들 형제를 대상으로 방임 학대를 의심한 이웃 신고는 2018년 9월부터 2020년 5월까지 3차례에 달했다. 연이은 대책으로도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않았던 ‘돌봄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증거다.
전문가 "대책은 이미 많아, 문제는 실현성"…"국가 책임 방기" 지적도
전문가들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정책을 쏟아내지 말고, 각각의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24일 "천안 아동학대치사 사건 때도 장관 회의를 열어 기관 간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했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느냐"며 "강제로 돌봄할 수 있도록 한 건 좋지만 개인권 침해 없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공혜정 대표는 "법과 시스템이 없어서 아이들이 다치고 죽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군 형제가 단순한 ‘돌봄’ 사각지대가 아닌, ‘돌봄 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그는 "온 동네가 이 아이들이 방임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각 서비스 기관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손을 놨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민원 등을 우려해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면 건강가정지원센터에 다시 연계해주거나 하다못해 자원봉사센터를 연결해 도시락이라도 배달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가정 내 문제가 아닌 정부의 책임 방기에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에 대한 문제를 가정이 1차로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며 "그런 여건도 없이 아이를 방임했으니 책임지라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진수 교수는 "국가가 가정에 개입하는 전제는 무엇보다 재정 책임"이라며 "'당신이 애를 키울 때 이 정도 재정은 책임져줄 테니 확실하게 돌보라'는 메커니즘인데 이게 우리나라에선 아직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위스에서는 자존심 등 개인적인 이유로 공적 구조 대상자 신청을 하지 않는 걸 고려해 최대한 신청 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복지 혜택을 볼 수 있게 유도한다"며 "국가가 재판관처럼 징벌적으로 나서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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