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진짜로 구독하는 시대가 왔다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27. 1만원으로 100개의 게임을
차세대 게임기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X)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화려한 차세대 그래픽과 로딩 시간이 없는 게임플레이 등을 내세우며 선전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 ‘전쟁’의 전망을 두고 다양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두 회사가 취한 상반되는 전략이다.
플레이스테이션5의 접근은 기존의 게이밍 콘솔이 취했던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로지 플레이스테이션5에서만 할 수 있는 대작 게임들과 게이밍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소비자들을 모으겠다는 ‘독점’ 전략이다. 반면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의 전략은 확장이다. 콘솔뿐만 아니라 피시와 모바일까지 포함된 거대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꼭 차세대 엑스박스를 사야만 엑스박스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 전략의 핵심에는 ‘엑스박스 게임 패스’와 ‘엑스 클라우드’가 있다.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게임 구독 서비스다. 한달에 1만6700원(얼티밋 기준)을 내면 100개 이상의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구글에서 야심차게 시작했던 스테디아가 이런저런 난항을 겪으며 좌초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그것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게임 패스로 제공되는 게임들은 트리플에이(A) 대작들부터 인디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거 엑스박스의 독점 타이틀로 인기를 끌었던 기어스 오브 워 시리즈와 헤일로 시리즈는 물론이고, 최근 발매된 전략게임인 크루세이더킹즈3 같은 게임들도 선보이고 있다. 트리플에이급 게임들의 경우 타이틀 하나를 구매하는 데 정가 기준으로 59.99달러가 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달에 게임 하나만 즐겨도 남는 장사다. 특히 차세대 기종을 기점으로 대형 게임사들이 게임 가격을 10달러 정도씩 일괄적으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엑스 클라우드는 게임스트리밍 서비스로, 현재는 안드로이드 기반 모바일에서만 시범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이 서비스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실제 게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체에서 구동되고, 내 휴대폰에는 그 영상만을 전송해주는 것이다. 영상을 보며 키를 입력하면 이번에는 내가 입력한 키들의 신호가 전송되어 본체에 전달된다. 이 반복적인 통신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통신 속도만 충분히 빠르다면 지연을 느끼지 못하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장점은 고사양의 게임을 하기 위해 게임기를 구매할 필요도, 또 그걸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것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최근 구독경제라는 이름으로 유행 중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콘솔과 게임의 비싼 가격이라는 진입장벽을 월 단위의 구독료로 분할해서 소비자층 자체를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게임은 한번 개발한 이후에는 추가적인 생산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상품이다 보니, 이런 모델에 잘 맞는다.
이런 모델이 소비자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통상적으로 피시 버전 패키지 게임을 구매하면 이용 가능한 유저 배포 모드들을 사용할 수 없고, 게임과 관련해서 생성되는 데이터들을 서비스 제공자에게 보내는 것을 거부하면 아예 게임을 이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게임 패스는 새로운 게임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빠져나가기도 한다. 어떤 게임이 들어올지는 순전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의 영역이니, 내가 애정을 갖고 플레이한 게임을 다시 하지 못하거나 추가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1만원 돈으로 100개의 게임을 하는 것의 대가는 게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것이다.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몇개월간 써본 결과는 넷플릭스를 써본 소감과 비슷했다. 요컨대 비용 대비 효용이 불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무슨 게임을 할지를 고민하며 이것저것을 둘러보는 시간이 실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더 길었다. 아쉽지만 게임불감증 치료에는 큰 도움이 안 될 듯하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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