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코로나·전기차에 떠오르는 勞-勞 갈등

조귀동 기자 2020. 10. 2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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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노동조합에서 회사 내 또는 회사 간 노-노(勞-勞) 갈등 양상이 차츰 불거지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 인상과 향후 일감 확보를 위해 강경 투쟁에 나서야 할 지 아니면 회사와 타협해야 할 지 노선 갈등이 심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자동차 산업에 짙게 깔린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두 번째는 전기차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완성차 공장의 중요도가 감소하고 고용 인원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완성차 노조가 배터리 ·모터·감속기 등 전기차 구동계를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미래의 일감을 두고 개별 기업 노조 간 대립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GM 노조, 파업권 갖고도 한 달째 미적미적

한국GM 노동조합은 지난 22일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전면적인 파업 대신 잔업과 특근 거부를 하기로 했다. 또 전반조와 후반조 근무자가 각각 4시간가량 일을 하지 않고 대신 임단협 보고 대회에 참석케 하기로 했다. 노조의 조합원 교육 시간을 활용해 총 8시간 동안 조업을 하지 않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한국GM 노조 관계자는 "당장 전면적인 파업은 하지 않지만 사측의 태도 변화가 없을 시 투쟁 수위를 점차 올릴 것"이라고 했다. 2020년 임금단체협상에 돌입한 7월 22일부터 19차례 교섭을 진행했는데,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한국GM 노조는 이미 지난달 4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신청을 내면서 사실상 협상 결렬과 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같은 달 24일 중노위는 조정 중지 결정을 공식적으로 내렸다. 쟁의조정신청은 노사 단체협상에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앞서 중노위에 조정을 신청하는 의무 절차다.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그 때부터 노조는 파업 등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다. 지난 22일 한국GM 노조가 발표한 ‘투쟁지침’은 쟁의권을 확보한 지 한 달만에 무언가 행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한국GM 노조가 파업 돌입 여부를 놓고 한 달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막상 파업에 나설 경우 얻을 수 있는 게 적기 때문이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2019년 9월 3일에 걸쳐 전면 파업을 했었다. 지난 2002년 GM이 회사를 인수한 뒤 처음 있었던 전면파업이었다. 하지만 경영난이 계속되는 상황에 노조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한국GM 노조는 12월 비주류에 속한 김성갑 노조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지도부가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4월 해를 넘겨 타결된 2019년 임단협 결과는 임금 동결과 성과급 미지급이었다. 올해 파업에 또다시 나설 경우, 코로나19 등으로 경영 여건이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업계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GM 노조가 다시 파업 카드를 꺼내 든 것이 노조 내부의 갈등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19로 미국 수출이 한동안 차질을 빚는 등의 문제로 한국GM 경영 실적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고 구조조정이나 일감 배정 등의 이슈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강경론에 떠밀린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GM 노조 내부에서 김 위원장 온건론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이를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지난해까진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노사관계가 대립적·적대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올해는 상호 간 합의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힘을 모아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평공장 초입에 가득 붙어 있던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등 임원 퇴진 요구 플랭카드 등이 김 위원장 취임 이후 모두 철거되기도 했다. 4월 임단협 합의안에 대한 노조 투표 결과 찬성률은 53.4%에 불과했다.

한편 올해 한국GM 노조는 일감 배정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GM은 다마스·라보 등 상용차를 주로 생산하는 창원공장에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해 새 글로벌 전략 모델인 신형 CUV(크로스오버스포츠유틸리티차)를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는 데, 그 물량 중 상당수를 부평공장으로 돌리라는 얘기다. 한국GM은 원래 부평 2공장 가동 중단 의사까지 내비쳤는 데, 현재 신형 CUV의 변형 모델을 부평에서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원래 한국GM의 창원 공장 투자 계획은 군산공장 폐쇄 등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온 것이다.

◇현대차 노조, 임금 동결 합의한 뒤 "현장 조직 마타도어 말라"

현대자동차(005380)노조는 지난 9월 말 2009년 이후 11년 만에 기본급(임금)을 동결키로 합의한 뒤 상당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상수 노조위원장은 "올해 같은 위기에 예년처럼 임금교섭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임금 동결에 합의한 이유를 말했다.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성과급 150%, 코로나 위기 극복 격려금 120만원, 우리사주(주식) 10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을 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금교섭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앞두고 소식지에서 "현장 제 조직들의 마타도어와 거짓 선전이 도를 넘었다"며 일종의 ‘야당’인 노조 내 정파들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현대차 노조가 다른 내부 정파에 대해 이 정도 ‘수위’로 공개 비판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잘못된 거짓 선전으로 조합원을 기만해서는 안된다"는 표현까지 썼다. 현대차 노조는 "자신들이 집행할 때는 명백히 호봉승급분을 기본급 인상분으로 표시했으면서 이번 합의안을 놓고 동결이라 우긴다"며 "작년 주식은 통상임금 정리용이고 올해 주식은 품질격려금으로 지급된 임금"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협상안 승인 이후에도 노조는 "상대에 대한 일방적 폄훼는 서로에 대한 감정과 갈등의 골을 깊게 한다"며 "노노 분열은 사측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집행부에 대한 비판에 대응했다.

◇현대모비스 비정규직 "완성차 노조는 일감 빼앗아 가지 마라"

내년부터 현대차와 기아차(000270)가 전용 플랫폼 ‘E-GMP’ 기반의 전기차를 양산에 나서면서, 일감을 둘러싼 완성차와 부품업체 노조들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적고, 조립 과정에서 자동화가 용이하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완성차 공장에 엔진 공장이 함께 있었고, 변속기나 구동계가 복잡해 조립 공정이 중요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엔진’ 역할을 하는 배터리팩(배터리셀과 배터리관리시스템 등이 결합된 부품)과 모터, 변속기 역할을 하는 감속기 등 파워트레인(구동계)이 하나의 부품 모듈로 묶여서 납품된다. 또 이들은 상대적으로 부품 구성이 단순하고, 조립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전기차 파워트레인도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기아차 노조는 아예 현대모비스(012330)의 친환경차 부품 공장 신설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모비스는 경기도 평택시에 친환경차 전용 부품 공장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데 대해 임단협에서 이를 문제삼은 것이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전기·수소차 모듈 부품공장을 (기아차) 사내에 전개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노조원의 고용안정과 직결되는 제1 고용안정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노조 요구에 아랑곳없이 현대모비스로 일감 몰아주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기아차 노조의 입장이다. 현대차 노조도 올해부터 전기차 주요 부품을 울산 공장에서 만들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완성차 노조의 주장에 대해 가장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곳은 현대모비스 비정규직 노조다. 비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울산지부 울산현대모비스지회는 지난 7월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전기차 부품 생산라인을 방문해 실사를 진행한 데 대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내연기관 차량의 일거리 감소로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먹잇감 찾기에 나선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울산현대모비스지회는 "고용안정, 공정분배를 외치는 현대차지부가 지금 행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 일감을 빼앗아가려는 행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현대모비스 비정규직이 완성차 노조의 행태를 문제삼은 데에는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의 일감 배분 요구가 직접적인 계기이지만, 완성차 노조에 대한 불신도 주요한 배경이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지난 2000년 울산 공장에 16.9%까지 비정규직 생산직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합의하면서, 자동차 공장 내 비정규직 확산을 용인했다. 이후 울산 공장 내 비정규직 비율은 30%에 육박할 정도로 올라갔지만 현대차 노조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고용 인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비정규직이 자신들의 안정적인 지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완성차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가 하도급 업체인 현대모비스 근로자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 현대모비스 비정규직들의 날 선 반응이 나온 이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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