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길동 골목-힘겹고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이 깃들다 [골목 내시경]

2020. 10. 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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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서울 1호선 전철 신길역을 나오면 북으로 샛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신길동이 펼쳐진다. 신길동은 그 범위가 몹시 넓은 동네다. 신길동에 자리 잡은 전철역만 해도 신길역과 대방역이 있고 영등포역이 지척이다. 지하철 7호선 신풍역과 보라매역도 관내를 지난다.

신길동 골목에서는 가을 반찬을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신길동이란 이름은 새터를 뜻하는 신기(新基) 또는 ‘새롭게 길하다’는 신길(新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신초등학교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신길역 인근에 방학곳지부군당이라는 부군 할아버지·할머니를 모신 신당과 도당(禱堂)이라는 마을 사당도 남아 있다. 신당 중 부군당(府君堂)은 서울에서 당산동·보광동 등 한강을 끼고 도는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신당이다. 옛 신길동 일대는 한강을 오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주요 포구였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신길동은 거대한 주택가다. 골목과 골목이 그물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1940년대 조성했다는 노동자 주택단지인 영단주택의 적산가옥이 몇 채 남아 신길동의 어제와 오늘을 대비해 보여주고 있다. 이 일대는 서울의 주택가 중에서 개발이 가장 늦은 곳이다. 재개발의 기대가 가장 큰 지역이다. 개발 속도가 늦은 데에는 신길동 곳곳에 군사시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 헐리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신풍시장과 사러가 쇼핑센터가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됐다.


요즘 남아 있는 신길동 주택가는 비교적 잘 손질된 모습이다. 집들은 오래된 흔적을 감출 수 없지만 새로 칠을 하고 여기저기 수리해서 집주인들의 애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소쿠리에 고구마를 쪄서 말랭이를 만들고 있고, 풋고추 배를 갈라 말리는 가을 무렵 살림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도시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신길동엔 남아 있다.

골목에 큰 대야를 내놓고 굵은 총각무를 씻어내는 모습도 보인다. 곁에 서서 훈수를 두는 동네 영감에게 “꼴 뵈기 싫어 죽겠는데, 그래도 먹고 싶다니까 어쩌겠나. 차라리 먹고 죽으라고 담는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영감은 “그래 잘했다. 잘했어”라고 다독거렸다. 요즘 알 굵은 총각무가 싸게 나올 때인데 아직 비싸다는 이야기 끝에 “서방이 웬수”라는 하소연부터, 재개발 기다리다 가슴에 멍든 사연까지 동네방네 떠나가게 속을 풀어 놓고 있었다. 그동안 마음에 쌓이고 맺힌 게 많았나 보다.

그 허튼 실랑이를 지나치면 골목길은 산골처럼 적막하다. 영등포여고 뒷길부터 신길2동 깊은 골목을 걷는 동안 간간이 지나치는 사람을 빼고는 골목 안 행인은 드물고 고요했다. 반려동물조차 귀한 듯 골목에서 흔한 개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담 넘어 보이는 빨래가 이곳에 사람이 산다는 드문 흔적이다.

중국인들도 신길동 골목에 자리 잡았다.


길가 가게 주인에게 동네가 조용하다고 말을 건네니 “사람들은 다 일하러 다니느라 바쁘다”고 했다. “낮에는 식당이며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또 밤일하러 나간다. 집은 살림하는 곳이 아니라 잠자는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일터에 갔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낮은 곳의 삶이 신길동 골목에 깃들어 있다. 언제나 노동은 힘겹고 삶은 고되다.

방값 싸고 교통 좋아 중국인들 몰려

골목 안엔 고단한 노동의 일상을 증거하는 흔적도 박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은 신길동 언덕배기 아주 좁은 골목 안에 숨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나 그밖에 세상으로부터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한 이들을 세파로부터 지켜주는 현대판 ‘소도’인 셈이다. 이곳에 피한 이들이 온갖 걱정과 시름에 몸을 뒤척이지 않고 하룻밤만이라도 꿀잠이 자길 바란다.

골목 바깥에는 자전거를 쌓아놓고 부품을 분해해 닦아 다시 쓸모를 만드는 공작소가 보인다. 버려진 혹은 쓰임을 다한 자전거들은 이곳에서 손을 봐서 다시 살아나 세상 여기저기를 굴러다닐 수 있을 것이다. 사람도 저렇게 다시 손질해 되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쓸모는 숨을 쉴 때, 일할 수 있을 때뿐. 이 골목 안엔 노동의 숙명을 절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도 남아 있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중국식품점도 보이고 마작패를 돌리는 마작방도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신길동 주민으로 눌러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골목 안에 가득하다. 참기름병을 정리하던 방앗간 주인은 “예전엔 더 많았다. 지금은 옆 동네 대림동 쪽으로 많이 갔다”고 말한다.

집들은 대부분 가능한 만큼 방을 만들고 칸을 나눠 고친 모습이다. 다른 곳보다 방값이 싸고 주변 교통이 좋아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단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에 살던 이방인들은 인근으로 흩어졌고, 신길동엔 대개 10년 이상 산 중국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문 열린 연립주택에서 찢어지는 절규가 골목을 점령했다. 좁은 복도에 이웃인 듯 어중간히 늙은 남녀가 반쯤 열린 문을 기웃거리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고, 튀어나오는 절망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억울해서 못 살겠다. 살아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하러 나간 틈에 니들은 시시덕거리면서 붙어먹고 있었냐?” 그 대사를 들으니 어떤 사연인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됐다. 이웃들의 뻘쭘한 표정도 이해가 된다. 때로는 사랑이 사람을 절망하게 만든다.

골목 깊숙한 곳에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이 있다.


신길동 골목길의 특색 중 하나는 깨끗하고 잘 정비됐다는 점이다. 골목길 보도블록도 제대로 깔려 있고 오래된 골목의 얼룩은 남아 있지 않았다. 후미진 곳에는 화분이라도 놓여 있다. 다른 동네에서는 ‘마을 재생사업’이란 말이 흔하나, 이곳 골목 곳곳엔 ‘골목길 재생사업’이란 사업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어느 골목엔 ‘감나무 마당’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신길동 골목 안엔 실한 열매를 맺은 감나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감나무들은 이 골목만큼 세월을 보낸 듯 굵고 높이 자라고 있다. 집주인 영감에게 올해 감 농사 사정을 묻자 “비가 많이 와서 망칠 줄 알았는데, 제법 많이 열었다. 그런데 올해 감은 좀 싱겁다”고 했다. 추석을 지났으나 감은 무르지 않았고 감잎은 아직도 무성하고 푸르다.

여고 앞에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짬뽕집이 있다. 가게 앞에 위장·심장 약한 사람은 아예 관심도 갖지 말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손님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고 벽에는 손님들이 써 붙인 이 집의 짬뽕 예찬이 가득했다. 열 받는 일이 많을 때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좀 풀린다는데 오늘의 젊은이들은 열 받는 일이 많은가 보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신길동의 명물음식이 있다. 우신초등학교 뒤편 큰길에 이어진 골목 하나는 모두 홍어집으로 채워져 있다. 대략 10곳 남짓한 식당들은 저마다 원조를 내세우거나 맛과 양을 자랑하고 있다.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애탕, 홍어탕, 홍어전, 족삼합, 돌문어삼합, 홍어튀김’ 등 차림표도 다양하다. 홍어집을 나서는 손님은 “참홍어는 너무 비싸고, 요즘은 대부분 칠레산이나 아르헨티나산인데 싸고 먹을 만하다”고 했다. 신길동에 홍어골목이 생긴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족발골목, 순대골목 보다 특색이 있다.

신길동에 홍어거리가 있다.


신길동의 명물음식점 홍어집

신길동의 범위가 넓다 보니 도산로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진다. 북쪽은 옛 골목길의 모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으나 남쪽으로 갈수록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나오고 대방동과 대림동과 이어지는 구역에 가면 개발로 골목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골목과 함께 오래도록 신길동 사람들이 드나들던 시장도 사라졌다. 신길동에서 가장 컸던 신풍시장과 ‘사러가 쇼핑센터’는 문을 닫았다.

영등포농협 앞에서 젓갈을 파는 상인에게 신풍시장이 아직도 있냐고 묻자 “없어졌는데,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없는 데 있다는 뜻은 대체 무슨 뜻일까. 신풍시장과 사러가 쇼핑센터가 있던 자리는 헐리고 공터가 됐다. 길게 담이 쳐졌다. 들리기에는 대기업에서 땅을 사들였는데 개발계획이 갈팡질팡하다가 올해야 대형 복합건물을 짓기로 결정됐단다. 부동산 업자는 “지어야 짓나 보다 한다. 언제 지을지도 불확실하고 계획이 또 뒤집힌다 해도 놀랄 게 없다”고 했다.

사라진 시장을 지나 길가 상점들은 예전 시장에서 팔던 물건들을 취급한다. 어물전도 들어섰고, 식자재와 반찬도 판다. 골목을 따라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빠른 손으로 콩깍지를 까고 있다. 할머니들은 “노느니 염불하는 거지. 노인네 손이면 콩 한가마니도 잠깐이면 깐다”고 웃는다.

한 노인이 자식 역정에 신세 한탄을 늘어놓자 그 사정은 양반이라며 핀잔을 준다. 길 건너 채소가게 주인은 맨몸으로 나가게 생겼단다. 서방은 평생 피 빨아 먹다가 세상을 등지더니, 자식 둘이 사고를 쳐서 빈털터리가 됐다며 혀를 찼다. “그래도 가게라도 남았지 않나?”라는 물음에 그마저 보증금 다 털고 남은 게 없다고 했다. 노인들은 갑자기 우울해졌고, 애꿎은 콩깍지는 거칠게 비틀어져 길바닥에 나뒹군다. 처음 말을 꺼냈던 노인은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언제 한번 호강해볼까 평생을 속으며 지나쳐도 팔자에 없는 좋은 날이 올 턱이 없다”고 한숨을 쉰다.

서울 신길동만큼 많은 골목을 품은 동네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골목길을 밀고 아파트단지를 세우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신길동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도 놀랍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 낮과 밤을 쉴 새 없이 일해도 버거운 삶의 무게. 그래도 눈 돌리지 않고 열심히 사는 이들이 신길동 골목을 숨죽이며 걷고 있다. 착한 사람들은 신풍시장처럼 없어졌어도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kyunghyang.com▶ 주간경향 표지이야기 더보기▶ 주간경향 특집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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