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잇단 택배 노동자 사망에 뒤늦게 "긴급점검"..실효성 의문도
심야배송 금지 공동선언 두 달 만에 사고 재발
"보여주기식 쇼..정부, 택배사 압박 특단 조치"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정부가 19일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잇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소속된 택배 회사와 대리점을 대상으로 위법사항 조사 등 긴급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택배업계와 택배 노동자 보호를 위해 심야배송 금지 등 공동 선언을 발표했음에도 유사한 사고가 재발함에 따라 이번 대책 역시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최근 택배 기사분들이 업무의 과중한 부담 등으로 연이어 돌아가신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사망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 위법사항 확인 시 의법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서울 강북구에서 배송 업무를 하던 CJ대한통운 소속 택배 노동자 김모(48)씨가 사망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한진택배 소속 김모(36)씨와 쿠팡 물류센터 택배포장 업무담당 장모(27)씨가 숨지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고용부는 우선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의 주요 서브(Sub·지역) 터미널 40개소와 대리점 400개소를 대상으로 이번 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과로 등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 긴급점검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관련법상 기준을 초과하는 과로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과로 등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실시여부 등을 확인하고, 개선방안 마련 및 이행을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또 원청인 택배회사와 대리점이 택배기사에 대한 안전 및 보건 조치를 관련 법률에 따라 이행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점검해 위반사항 확인 시 법에 의거해 조치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아울러 최근 제기된 택배기사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의 '대리점 대필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점검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CJ대한통운 소속 김씨가 생전에 소속됐던 송천대리점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신청서의 필체를 근거로 대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고용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6일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의 대필 의혹이 제기된 해당 대리점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이 장관은 "적용제외 신청 경위, 사실관계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법사항이 확인되는 경우 해당 사업장의 적용제외 신청을 취소하고, 보험료를 소급 징수하는 한편 필요한 경우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재 공단에 제출된 택배기사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전수조사해 신청 과정에서 사업주 강요가 있었는지 등 위법사항 여부를 집중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이번 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의 국회 개정 논의를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사고 발생 때마다 정부가 통상적으로 내놓는 조치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점이다. '긴급 점검', '법적 조치' 등은 매번 정부의 대책 발표 시 단골 소재로 나오는 내용으로 실제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누군가 목숨을 잃어야 그제서야 관련 대책을 발표하는 정부의 행태는 그간 계속돼 왔다"며 "그마저도 매번 비슷한 대책을 예쁘게 포장해서 '종합선물세트' 마냥 내놓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대책은 정부가 최근 택배업계와 택배 노동자 보호를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한 사고로부터 나왔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에 더욱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13일 고용부와 택배업계는 매년 8월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지정하면서 '택배사와 영업점은 택배기사의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심야시간까지 배송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등의 공동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또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17일에는 추석 성수기 동안 택배 분류작업 등에 일평균 1만여명을 추가 투입하겠다며 택배업계와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 없이 심야 배송은 계속됐고, 추가 인력 투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택배 노조의 주장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이날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했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며 "정부는 과연 고인의 참담한 죽음 앞에서 할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규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대책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택배사의 '의지'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세규 과로사 대책위 교육선전국장은 "정부가 노력은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택배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환경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가 좀 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택배사들을 강력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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