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은 일상적 관리의 대상..처벌과 예방이 함께가야"[헤경이 만난 인물-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2020. 10. 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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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 제정보다
실질적인 작동 담보가 더욱 중요
현재의 솜방망이처벌 문제 많지만
사회적 동의 반드시 이뤄져야
서류작업 위주의 사전규제 되레 방해
현장 불시점검 '패트롤방식' 큰 성과
'고위험업종' 특별관리 보완 필요
미래안전, 디지털 신기술 접목해야
박두용 이사장은 “안전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원·하청,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기본 권리이지만 그간 산업현장에서 소홀했던 측면이 많았다”며 “우리가 산업안전에서 지금 풀어야 할 숙제는 현장작동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인데, 그걸 고민하지 않은채 서류 위주의 사전규제만 강화하면 기업은 규제강화에 불만을 갖게 되고, 당국은 사전규제를 더 강화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안전에는 특별한 비법이나 지름길이 없다”며 “안전권은 노사는 물론 일반시민들이 지속적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확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해묵 기자

“안전은 선택과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차별없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산업안전에 관한 한 국내최고의 전문가다. ‘안전 전도사’를 자처하는 그는 “사고가 발생하는 길목을 지켜야한다. 많이 발생하는 곳, 반드시 줄여야 하고 줄일 수 있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며 현장을 강조한다. 그의 ‘현장주의’는 무수한 경험의 산물일 터이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호소력있는 ‘특유의’ 화법으로 우리 안전문화와 그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쏟아냈다. “이제 안전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진짜 안전’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그의 말에는 위험이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관리대상의 문제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또 “안전은 절대의 문제다”라는 대목에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산업안전은 협의나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소신이 묻어난다.

박 이사장은 공단 조직을 사망사고 예방 중심조직으로 30년만에 전면 개편했다. 중앙사고조사단을 설치해 산재사고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확보했고 미래전문기술원을 신설해 미래 안전보건에 대비토록 했다. 현장을 불시점검하는 ‘패트롤 방식’을 도입해 지난해 사고사망자를 116명이나 줄이는 역대급 성과를 냈다. 서류중심의 점검형 사업을 현장중심 패트롤 방식으로 바꾸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건설 추락, 공장 끼임. 밀폐공간 질식사고 예방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 ‘진짜 안전’에 서류위주 규제는 오히려 방해=그간 우리나라의 안전규제는 서류작업 위주인 ‘사전규제 1형’에 치중해, 현장점검·감독 위주의 ‘사전규제 2형’이 취약하다는게 박 이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아무리 서류를 완벽하게 갖춰놔도 사고가 나면 말짱 도루묵”이라며 “진짜 안전에 사전규제 1형은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행정규제는 줄이고, 핵심사항에 대한 현장 작동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안전규제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트롤사업의 성과가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정상작동을 멈췄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참사도 아픈 부분이다. 그래서 올해는 방어가 최대 목표다. 그는 “코로나로 대면 패트롤 사업을 거의 못했지만 지난 8월까지 작년 대비 약간 감소세를 보인 만큼 올해 사고사망자는 790명~840명 범위 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이사장은 물류창고 화재사고 같은 대형참사를 막는 방법으로 고위험업종에 대한 특별관리를 강조했다. 시행규칙에서 구체적인 업종을 나열하고 특별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안전은 “처벌만으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살인 폭력 절도 등 행동을 해서 저지르는 이른바 ‘작위범죄’를 다루는 형법은 처벌강화가 효과를 내지만 안전은 내가 뭘 하지 않으면 범죄가 되는 ‘부작위범죄’라 처벌 강화만으로는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로 ‘하이퍼볼릭 디스카운드 이펙트(Hyperbolic Discount Effect)’를 꼽았다. 사람들은 미래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음주교통사고 처벌만 강화하고 단속을 하지 않으면 “나는 괜찮겠지”하면서 음주운전을 한다. 이를 막으려면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안전도 똑같다. 미래의 처벌만 강조하고 당장 개입하는 기제가 없으면 기업들은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사후처벌만 강화하면 기업들은 반성보다 ‘재수 없어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예방효과가 없다”고 부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현장 작동성 높이는 계기 돼야=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말단 관리자만 처벌받는 솜방망이식 처벌의 문제점에는 동의하지만 음주운전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과 같이 사회적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예방효과도 없고 작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처벌 강화로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성적을 올리려고 꼴찌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이라며 “모든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민식이법’처럼 학교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에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안전사고는 이전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책임소재가 매우 복잡하다.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경영진을 처벌하려면 ‘안전투자 반대’나 ‘작업강행 지시’ 등을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런데도 법제정 압력이 거세지는 것은 현실과 국민 ‘법감정’사이의 간극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이후 안전인프라는 국민소득 2만달러 초반, 기업의 역량이나 기술은 2만달러대 후반인데 국민요구수준은 3만달러대”라며 “이런 갭에 의해 ‘법감정’이 폭발하면서 법제정이 탄력을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 감정에 편승해 무작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기 보다는 산안법 등 기존의 안전관련법과의 충돌이나 조화문제, 책임자 및 중대재해 범위, 예방책임과 중대재해 결과사이의 인과관계 입증이나 반증 기준 등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산재위반 양형기준강화 필요=박 이사장은 산재예방책임을 다하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그에 걸맞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양형기준 강화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그는 “양형기준 강화 움직임으로 산안법으로도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대법원이 양형기준 강화를 검토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최근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사회는 위험이 대형화, 고도화, 복잡화, 집적화되고, 노후설비의 증가와 위험의 외주화 등으로 산재는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며 “안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자가 산재문제를 신경쓸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잡하고 대형화되는 산재에 대한 대응을 보다 정교하게 해 일상화된 위험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기술인 빅데이터와 AI와 같은 디지털 신기술을 안전분야에 접목, 정보통신기술이나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지원할 수 있는 안전보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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