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받지 않는 의사 권력, 누가 만들었나[우보세]

지영호 기자 2020. 10. 1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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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일자리를 잃고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행위들이 의사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진 내용만 보더라도 간호조무사에 대리수술을 747번 시킨 의사가 고작 자격정지 4개월의 행정처분만 받았고, 음주 상태로 의료행위를 한 의사는 지난해 5명이나 적발됐지만 1개월 남짓의 자격정지에 그쳤다.

대중이 인지하는 솜방망이 처벌 사례는 차고 넘친다. 가수 신해철은 간단한 복강경 수술로 세상을 떠났지만 집도의는 유죄가 나기까지 의료활동을 이어갔다. 병원 이름을 바꾸고 진료행위를 하다 소문이 나자 외국인 환자 병원을 개원해 진료를 계속했다. 그 사이 외국인 한 명이 이 의사에게 복막염 수술을 받다 또 사망했다. 이 의사는 법정 구속되기까지 다른 병원의 페이닥터로 일했다.

수면내시경 과정에서 환자를 성추행 한 의사 사례도 잊을만하면 나온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휴대전화로 음성녹음을 해야 한다는 웃픈(?) 충고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이런 의사도 면허를 유지하는 게 현실이다.

설령 의사면허 취소가 되더라도 얼마든지 구제받을 수 있다.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리베이트 수수, 면허증 대여, 불법 사무장병원 의료행위 등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고도 재교부를 신청하면 100명 중 97명은 면허를 재발급받았다.

처벌받지 않는 권력이 부패를 낳는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일례로 제약사가 의사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리베이트 관행이 뿌리뽑히지 않는 것은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허술한 의료법에 기인한다. 수수액이 300만원 미만이면 처벌되지 않고, 최고액인 2500만원 이상이더라도 자격정지 1년에 불과하다. 3번을 걸려도 마찬가지다. 6년간 2578명이 리베이트를 수수해 적발됐는데 면허 취소는 1.78%인 46명 뿐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구제된다. 주는 사람만 처벌받고 받은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

의사가 ‘갑’이라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부모들은 기를 쓰고 자녀를 의대로 보내려한다. 그러다보니 비뚤어진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입학·졸업이 쉬운 해외 의대에 통역까지 붙여가며 학위를 받아서 합격률 95%인 의사 국가고시로 의사면허를 취득하는 사례도 재조명됐다. 이렇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의 주변을 보는 능력은 점점 퇴화된다. ‘덕분이라며 챌린지’나 ‘전교 1등 의사 홍보물’은 공감대 결여로 지탄을 받았다.

어쩌면 코로나19(COVID-19) 상황에서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불사한 것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후배들이 국가고시를 거부한 것도, 또 재응시 기회를 엿보는 것도 선배들을 통해 얻은 경험의 산물일 수 있다

이쯤되면 누가 이런 권력을 만들어줬는지 궁금해진다. 마침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다른 직종은 면허가 취소되는데 왜 의사만 범죄를 저질러도 취소가 되지 않느냐”고 묻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좋은 질문에 우답이지만, 입법부가 법을 그렇게 만들어주신 겁니다.”

국회는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막강한 권력이다. 하지만 선출만으로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관심이 멀어지면 변화는 관행이라는 벽에 막히게 된다. 최근 의사 권력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여당 의원 중심으로 제출됐다. 의사들은 해당 의원들을 겨냥해 ‘의사 파업이 끝나자 보복에 나섰다’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처벌받지 않는 의사 권력은 더 공고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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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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