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이 아닌 마음으로 노래를 전하는 가수, 더 크로스 김혁건

김혜민 2020. 10. 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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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녹음비도 너무 많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회사에서도 돈 많이 들여서 만드는 음악 말고 R&B 음악을 해라, 근데 어린 마음에 제가 그건 안 됩니다, 저는 락커인데, 락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락 음악을 썼는데 이거 말고 노래를 받자고 하는 거예요, 저랑 맞지 않아서 그러면 저는 가수를 하지 않겠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냥 락밴드를 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회사와 결별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노래를 하는 사람이 노래를 할 수 없고 사실 노래를 못 하면 제가 기타를 치면 되는데 손이 못 움직여서 기타도 칠 수 없고, 피아노도 칠 수 없고, 드럼도 칠 수 없고, 손, 발, 손가락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서도 너무 힘들었는데 너가 했던 한마디가 노래 좀 못하면 어때? 너랑 나랑 행복하면 되지,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가 음악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게 내 삶을 정말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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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 대담 : 더 크로스의 김혁건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두 발이 아닌 마음으로 노래를 전하는 가수, 더 크로스 김혁건'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음악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줍니다. 계절의 감흥을 느끼게 해주고 또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인생의 파도를 뚫을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죠.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남성 2인조 그룹의 더 크로스의 김혁건씨입니다. 안녕하세요~

◆ 더 크로스의 김혁건(이하 김혁건)> 안녕하세요.

◇ 이성규> 김혁건씨하면 어마어마한 고음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거 다 아실 텐데. 특히 더 크로스의 돈 크라이라는 노래는 노래 좀 부른다 하는 사람들이 노래방 가면 빼놓지 않는 곡이거든요. 이 노래가 언제 발표 됐었죠?

◆ 김혁건> 2003년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17년 전 노래인데요. 제 고음을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서 많은 고음을 집어넣어서 만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노래방에서 남학생들이 도전하는 도전 노래로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가수는 어떻게 해서 되셨어요?

◆ 김혁건> 처음에 시하라는 친구랑 밴드를 하다가 저희가 엠넷 뮤직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었어요. 제가 락 보컬 부문 대상을 받고 캐스팅이 돼서 솔파미레도라는 기획사가 있어요. 그 기획사에서 락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고. 그때 부활의 태원이 형이랑 옥슨80 선배님들이 프로듀싱하고 편곡을 도와주셔서 더 크로스 1집 앨범을 발표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이시하씨는 원래 친구세요?

◆ 김혁건> 원래 친구예요. 20살 때부터 같은 실용음악학원에 다녔어요. 제가 노래를 하고 그 친구가 작곡을 하고 그랬는데. 뜻이 맞아서 화합해서 뭉쳤죠.

◇ 이성규> 한 때 더 크로스에서 잠깐 나오셨었죠? 그때 어떤 계기로 나오셨고, 무슨 욕심이 있으셨어요?

◆ 김혁건> 제가 음악을 하면서 창작곡을 부르고 싶은데 제가 쓴 곡 보다는 대중성 있는 곡을 원했어요. 그 당시에 R&B 음악이 굉장히 대세였는데. 락 음악은 더 이상 사람들이 듣지 않는 시기가 왔어요. 미디음악이 올라오면서 컴퓨터 음악을 다 사용하고 라이브 밴드로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는 가수가 사라지기 시작했죠. 녹음비도 너무 많이 들고 그러다 보니까 회사에서도 돈 많이 들여서 만드는 음악 말고 R&B 음악을 해라, 근데 어린 마음에 제가 그건 안 됩니다, 저는 락커인데, 락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락 음악을 썼는데 이거 말고 노래를 받자고 하는 거예요, 저랑 맞지 않아서 그러면 저는 가수를 하지 않겠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냥 락밴드를 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회사와 결별했습니다.

◇ 이성규> 회사와 결별을 하신 거죠?

◆ 김혁건> 네. 또 멤버와도 결별이 되었죠. 저는 락 음악을 고집했고 그 친구는 대중성 있는 음악을 회사를 따라 갔던 거죠.

◇ 이성규> 그러다가 군대를 가셨었고 그 이후에 다시 이시하씨하고 결합이 됐지 않습니까? 뭔가 또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요.

◆ 김혁건> 굉장한 우연이었어요. 사장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다시 더 크로스를 해보자, 더 크로스로 제가 나간 뒤에 앨범을 몇 장 냈는데 제가 냈던 돈 크라이 앨범만큼 호응이 계속 없었나봐요. 히트송이 없었던 거죠. 다시 한 번 같이 해보자 그랬는데 제가 거절을 했어요. 싫습니다하고 사실은 공수부대 모병을 신청을 해놔서 날짜가 잡혀있었어요. 근데 거절을 하고 나니까 시하가 멤버 친구가 전화를 하더라고요. 같이 하지 못해도 좋다. 너한테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 얼굴이나 보자고 해서 둘이 만났어요. 둘이 만났는데 웬걸 군 입대 통지서를 받았는데 저랑 같은 날짜인 거예요. 물로는 저는 공수부대고 그 친구는 방위지만. 이거는 대단한 우연이다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또 먼저 사과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손을 내밀었다는 게 자존심을 내리고 했다는 거에 그래 우리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한 번 해보자 지금은 우리가 군대에 가야 되지 않겠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하게 됐고 어릴 때 친구처럼 편하게 다시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녹음을 했는데 녹음해서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제가 사고가 나고, 그때 녹음한 노래를 저 말고 락 밴드 더 넛츠가 제 노래를 대신 발표하게 됐죠.

◇ 이성규> 사고 때도 어린 나이였고 앨범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정말 그때 심정을 말씀해주실래요?

◆ 김혁건> 모든 걸 잃어버렸고.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노래를 하는 사람이 노래를 할 수 없고 사실 노래를 못 하면 제가 기타를 치면 되는데 손이 못 움직여서 기타도 칠 수 없고, 피아노도 칠 수 없고, 드럼도 칠 수 없고, 손, 발, 손가락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좌절할 수밖에 없죠. 제가 음악을 하지 않았어도 저처럼 되면 좌절을 할 수밖에 없겠죠. 모든 걸 포기하고 삶의 의미가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렇게 노래가 부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봐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셨기에 지금 이렇게 다시 우뚝 서신 거 아니에요?

◆ 김혁건> 노래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고 굉장히 힘들었는데. 처음에는 전혀 노래를 할 생각이 없었죠.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일반인 폐활량의 3,4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폐가 쪼그라들어 있어서 또 폐에서 숨을 밀어주는 횡경막이 아예 마비가 되어있어서 그냥 말하는 것조차 힘들고 어지러운데 의사도 노래하는 건 어렵다고. 모든 걸 포기했는데 제가 용기를 내서 노래를 한 게 아니에요. 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다시 노래를 하길 바랐어요. 사랑하는 부모님, 가족, 친구, 팬들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노래 못해도 좋아, 바보 같아도 좋아, 시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냥 너랑 무대를 올라가서 예전처럼 즐기고 싶다, 그 말을 듣는데 울컥하는 거예요. 다 괜찮더라고요.

◇ 이성규> 아버님이 대단히 역할을 많이 하셨다고 읽었어요.

◆ 김혁건> 제가 노래를 배를 누르면서 하는데. 배를 누르면 복식호흡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아버지가 제 배를 누르는 장치를 만들려고 철공소에 엄청 돌아다니셨어요. 우리 아들 배를 이렇게 누르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발품을 팔고 다니셨는데 그런 걸 만들어주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다들 무시하겠죠. 근데 어느 마음씨 좋은 철공소 아저씨분이 저희 아버지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했는지 노 젓듯이 배를 눌러주는 기계를 만들어주셨고 그 기계가 모태가 되어서 서울대 로봇융합연구소에서 계속 지금 복식호흡조절 디바이스를 만들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저 혼자의 힘이 아니고 정말 아버지의 사랑, 정말 저 같으면 그렇게 해서 그런 장치를 만들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저를 무대를 세우려는 친구의 의지 그리고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를 도와주신 철공소 사장님부터 제 이야기를 듣고 정말 백원 하나 저한테 받지 않고 복식호흡 장치를 연구해주고 있는 서울대 로봇융합연구센터 이런 많은 분들의 힘과 사랑으로 제가 노래를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이성규> 아까 이시하씨 친구 도움도 많이 컸다고 들었는데요. 무작정 도와준 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 김혁건> 그게 참 고마운 일이죠. 폐인이 됐는데 제가, 어떻게 저한테 다시 같이 하자고 이야기 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은 시하에게 음성 편지를 써보고 싶습니다. 제가 얼마 전 슈가맨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정말 떨려서 그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서도 너무 힘들었는데 너가 했던 한마디가 노래 좀 못하면 어때? 너랑 나랑 행복하면 되지,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가 음악을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게 내 삶을 정말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아. 항상 내가 너한테 말도 험하게 하고 상처도 주지만 또 몸이 아파서 말이 송곳처럼 나가는 것 같은데 사과하고 싶고 앞으로도 서로 싸우지 말고 영원히 함께 음악을 하자, 사랑한다, 시하야.

◇ 이성규> 노래를 부르시면서 본인의 기대와 팬들을 생각하실 때 복잡한 마음도 있으셨어요?

◆ 김혁건> 노래를 정말 잘하고 싶고 팬들이 기대하지 않더라도 정말 좋은 노래 들려주고 싶은데 사실 목 컨디션이 왔다갔다 많이 하니까 좋은 노래 못했을 때 저 혼자 힘들어해요. 근데 팬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시죠. 그런데도 제가 욕심을 내는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요즘 무대 올라가시면 느낌이 어떠세요?

◆ 김혁건> 무대에 올라갈 때는 내가 살아있구나,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나기 위해서 노래 연습을 하고 삶의 의미가 있구나 이렇게 느껴요. 무대에 있는 순간에 제 노래를 듣는 팬들과 소통하는 게 제 삶의 의미인데. 제가 방송이나 공연을 하고 나서 팬 카페에 항상 팬들이 피드백을 주고 인증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글들을 제가 다 읽고 소통을 합니다. 지금은 코로라 팬데믹 때문에 대면을 하기가 어렵잖아요. 인터넷상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서로간의 굉장히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 이성규> 팬 카페에서 따뜻한 좋은 일도 하고 그랬더라고요.

◆ 김혁건> 팬들과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굉장히 많이 해요. 제가 하던 봉사활동을 팬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그래서 국립재활원에 매년 하모니카를 보내드리고 있고 환자들이 하모니카를 불면서 호흡재활훈련을 하거든요.

◇ 이성규> 그쪽 관련 박사도 받으셨죠?

◆ 김혁건> 제가 음악치료로 하모니카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그 호흡재활로 영향을 미치는지 논문을 발표했고, 그래서 하모니카를 지원해주기 위해서 제가 하모니카를 사서 보내드렸는데. 팬들이 함께 하고 싶다고 그래서 하모니카도 보내주고 또 성금이 너무 많이 모아진 적이 있어서 장애 아동에게 교육 장학금도 보내주고 어떤 팬은 저한테 마스크를 잔뜩 보내주는 거예요. 이 마스크가 필요한 곳이 다른 곳인 것 같다고 해서 그 받은 마스크를 장애인협회와 아동들에게 기부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노래 시작하니까 정말 좋다 이런 느낌 한 번 말씀해주세요.

◆ 김혁건> 노래 다시 시작하니까 첫 번째는 여성팬들이 너무나 많아졌어요. 제가 남자들의 우상으로 남성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제가 노래할 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고음 노래 부르면서 컨디션 관리도 힘들고 진짜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번에 발표한 송곳도 그래요. 제 호흡에 맞춰서 어려운 부분들은 박기영 누나가 도와주고 있고. 이제는 좀 마음 편하고 희망을 주는 노래, 예전에는 내가 노래를 얼마나 잘해 이런 걸 보여줬다면 지금은 노래 메시지,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 편안한 노래 이런 쪽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장애 없을 때와 장애가 생긴 이후 음악 생활 무슨 변화가 있어요?

◆ 김혁건> 음악이 없었다고 하면 장애인이었을 거예요. 음악이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비장애 때 하던 일을 계속 함으로써 비장애시절과 연결이 되고 사회 복귀를 하고 살아가는데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침상에만 누워있고 그렇게 살았겠죠. 그리고 장애인보다 비장애인들을 더 많이 만났고, 거의 99.9% 비장애인들과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장애인들끼리만 만나서 생활을 할 수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여러분들도 용기를 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자신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생활 속에서 소확행을 느끼는 김혁건만의 순간이나 방법 있으세요?

◆ 김혁건> 예전에는 명예를 추구하고 스타가 되겠다는 이런 게 있었는데 이제는 노래를 하고 내가 노래를 한 거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해요. 오늘 날씨가 엄청 좋은 거에 대해서도 되게 감사하고 제가 굉장히 힘든 겪다보니까 병원에서 2년 동안 누워있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려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지냈어요. 굉장히 힘든 시간 투석을 하면서 계속 고열로 생사를 넘나들다보니까 햇빛을 보는 게 굉장히 간절하더라고요. 밝은 햇빛을 보면 굉장히 희망이 생겨요. 하루 종일 아프고 힘든데 밤이 지나고 햇빛이 뜨면 희망이 보이고 다시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노래를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지금도 병상에 누워서 많은 시간 아프고 힘들지만 하루에 5분이라도 노래를 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굉장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멀리 잡기 어려운 행복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곳에서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또 다른 김혁건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 김혁건> 음악은 제 삶의 원동력이죠. 음악이 있기 때문에 두 발이 아닌 마음으로 일어서서 활동을 하고 사실을 제가 낯을 많이 가리고 그래서 밖을 나가지도 않았어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고 나가도 미용실에 들어가지고 못하고 또 사람들이 알아보시는 분들은 와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상처도 받고 지하철 타면서도 어려움을 느꼈고 그랬는데 음악을 하면서 제가 이렇게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무대에 오르고 소통하고 음악이 저를 다시 두발이 아닌 마음으로 의지로 저를 일으켜 세워줬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더 크로스의 김혁건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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