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싸우고 나오니 "퇴사"..완치자 악몽, K방역의 그늘
“나는 죄인이 아니다. 피해자다.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직장인 김지호(27)씨는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지내며 자신의 경험담을 꾸준히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코로나 19 확진 후 접한 낯선 일상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확진자나 그 가족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찾아와 “나도 그렇다”며 댓글을 달았다. 인터넷 조회수만 24만회가 넘었다. 김씨는 코로나 19 감염 전후 일상을 쓴 글들을 모아 12일 『코로나에 걸려버렸다』란 이름의 책을 펴낸다. 김씨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할머니 장례식에 와준 친구 6명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됐다. 그 자리에 확진자 친구가 나왔다. 김씨를 뺀 나머지 친구는 모두 음성이었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친구 역시 연쇄 감염 피해자였기 때문에 나무랄 수 없었다. 샤워 시설이 없어 물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버틴 날들이 이어졌다. 고열로 온몸이 뜨거워지면 아이스팩 두 개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버텼다. 그는 지난 6월 29일 50일간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병원만 떠나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 작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바이러스와 싸우고 나오니 세상과 싸워야 할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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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완치 후 일상
퇴원 후 회사 측은 김씨에게 3주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임신부나 아이가 있는 사람 등 여러 직원이 불안해한다”는 이유였다. 재택 일주일 만에 퇴사를 종용받았다. 김씨는 “내게 코로나 19를 옮긴 친구도 이미 퇴사했다”며 “회사 동료에게 (확진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4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사실 회사에 해명하는 상황은 입원 직후부터 계속됐어요. 힘들고 겁에 질린 건 저잖아요. 저만큼 힘들 순 없는데 제가 계속 죄송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쩌다 걸렸냐’ ‘조심하지 그랬어’란 말을 셀 수 없이 들었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회사에 해명문도 썼어요. 저는 피해자인데 그들에게 죄인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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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자가 본 'K 방역'의 명암
입원 기간 의료비는 2500만원이 나왔다. 입원 하루마다 50만원꼴이었다. 하지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80%, 국가와 지자체가 20%를 부담해서다. ‘K 방역’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김씨는 “병원비를 듣고 깜짝 놀랐으나 영수증 하단에 ‘후불’이 적혀있어 안도했다”며 “한국 의료시스템에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방호복을 벗지도 못하고 더위·바이러스와 사투하는 의료진들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K 방역의 그늘도 몸소 겪었다.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었지만, 확진자·완치자는 사회에서 배제됐다. 확진 후에는 ‘확진자’란 편견과 싸워야 한다. 완치한 뒤에도 낙인 때문에 일상 복귀가 쉽지 않다. 김씨는 “성공적인 방역이라면 확진자의 심리적 안정까지 도와 사회로 안전하게 복귀시키는 내용까지 포함해야 한다”며 “방역 시스템의 연장 선상에서 확진자를 향한 혐오를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완치자를 맞기 위한 사회 구성원의 자세를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김씨는 “힘들고 답답하지만, 마스크를 쓰는 마음은 나와 타인을 위해서다. 우리는 서로의 희생으로 버텨내고 있다"며 "이런 마음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끝내 코로나 19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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