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근성작가 김성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만화가 김성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만화가 김성모(51)와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도 이 문장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김 작가의 대표작 ‘대털’에 나온 대사다. 2002년부터 일간스포츠에 연재되고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지만, 이 대사가 담긴 한 컷은 20년 가까이 온라인에서 숱한 패러디를 거쳐 왕성한 생명력을 갖게 됐다. 올 초부터 국내 제약 회사 비타민 광고에 이 컷과 대사가 등장하더니 언론사 채용 공고에도 나왔고, 지난달 새로 출시된 족발 브랜드 포장에도 실렸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문장 속에 생략된 자세한 설명을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있는 김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대털’은 실존하는 도둑 김강용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으로 주인공 이름도 교강용이다. 문제의 장면과 대사는 교강용이 자신의 범죄 수법을 동료에게 알려줄 때 등장한다. 초반에는 교강용의 절도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중반부터는 조폭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림을 그리기 귀찮아서 장난처럼 이 대사를 넣은 걸로 아는 사람도 있다.
“전혀 아니다. ‘대털’ 취재하느라 청송교도소를 숱하게 갔다. 만화에서 범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싶었는데, 김강용의 범행 수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모방 범죄가 일어날 것 같았다. 설명을 해줄 수 없으니까 넣은 장면이다. 장난친 게 아니라 진지했다.”
–취재를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내 외모가 원래 꽃미남에 가까웠다. 가냘프기도 했고. 사채, 도박, 유흥처럼 한국의 하류 문화는 건달에게서 비롯된 게 많아서 건달을 취재할 일이 많았다. 가냘픈 모습으로는 무시를 당하니까 몸도 불리고 말도 좀 거칠게 하면서 모습이 변했다. 그렇게 취재한 리얼리티가 있어서 내 만화 보고 ‘작가 양반이 분명히 건달이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더라.”
–왜 사채, 도박, 유흥 같은 밑바닥을 많이 그렸나.
“97년에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만화가 들어왔는데 성인물은 못 들어왔다. 일본 성인 문화와 한국 성인 문화는 안 맞는 면도 많고. 그때 한국적인 성인 극화를 그려 보려고 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성인 극화가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와 ‘도시 정벌’이었는데, 두 작품 모두 최강자가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얘기다. 나는 주인공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얘기로 현실의 절망을 그리고 싶었다.”

출처나 이유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와 콘텐츠를 ‘밈’이라고 한다. 밈의 특성상 한국 밈의 원조나 시작을 꼽기 어렵지만 2000년대 중반에 나온 김성모의 ‘드!’ ‘라!’ ‘군!’이 초기 밈을 주도했다고 보기도 한다.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동명 만화에 나온 대사다. 한때 포털과 SNS 댓글을 휩쓸 정도로 유행을 해서 이를 ‘드라군 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애로 사항이 꽃핀다” “네 놈은 그냥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왱알앵알” 등도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김 작가의 대사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쓴 대사인가.
“당연히 아니다. 웃기려고 쓴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대사를 넣는 것뿐이다. ‘애로 사항이 꽃핀다’ 같은 건 군대에서 다른 사람이 한 말인데, 그게 나중에 생각났다. 이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나 문장이 머릿속에 각인된 게 많은 편이다. 의도치 않은 유행어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런 것도 만화가로서 나의 센스가 아닐까.”
–진지하게 쓴 대사를 희화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전혀 아니다. 나의 생명력을 연장해서 살아있는 작가로 만들어 줬으니 오히려 고맙다. 나는 운이 좋다.”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독자도 있다.
“요새는 독자와 댓글로 싸우거나 ‘싫으면 보지 말라’고 하는 만화가도 있더라. 나는 내가 누구 덕분에 밥을 벌어먹고 사는지 잘 알고 있다. 작품을 본 독자가 비난,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내 직업의 일부다. 그런 것에 상처를 받기에는 너무 거칠게 살기도 했고.”
–한때 만화를 찍어내다시피 만들어서 ‘만화 공장’을 운영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나를 ‘화백’ ‘만신’(만화의 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쓰레기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만화 공장은 한 시스템이었다. 그때 스태프만 200명이 넘게 있었다. 당시 또래 작가 중 내가 돈을 가장 많이 버니까 욕을 먹은 것 같다. 젊은 나이에 건물을 살 정도로 벌었다.”
–요즘은 어떤가.
"이제는 스태프가 스무 명 좀 넘는다. 처음 시작할 때 함께한 친구가 아직도 작업실에 있을 정도로 끈끈하다. 네이버가 웹툰 플랫폼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기성 작가들이 ‘포털 사이트가 무슨 만화냐’고 했다.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김 작가에 따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를 광고에 쓴 영양제는 올 들어 판매량이 122% 늘었다. 라면이나 떡볶이 업체에서도 협업하자는 연락이 왔다. 지난달에 나온 족발 브랜드는 김 작가를 상징하는 ‘근성’을 갖다붙여 ‘근성 족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육체는 단명이고 근성은 영원한 것” “실패라는 상처에 인내라는 연고를 바르고 근성이란 노력으로 성공이란 흉터를 내 자신의 가슴에 남긴다” 같은 대사와 밑바닥에서 버텨가며 위로 올라가는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그는 ‘근성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근성을 강조한다. 근성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는 것, 몸이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는 것이다. 우선, 마음이 하고 싶은 건 욕망인데, 그걸 절제한다는 얘기고, 또 몸을 움직여야 일이 풀린다는 얘기다. 꼰대 같은 얘기일 수 있지만 근성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나는 하루에 스무 시간씩 만화를 그렸었다. 투자 없는 성공은 없다.”
–꼭 성공해야 할까.
"나는 콤플렉스가 많아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 컸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안 계셨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는 시내 가판대에서 공구를 파셨다. 학교에 도시락으로 칼국수를 싸 가거나 굶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
–만화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버지께서 그랬다. 남자는 자기가 잘하는 걸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초등학교 3~4학년 때 아버지가 만화 가게를 했는데, 그때 처음 만화를 접했고 나중에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 구단’을 보면서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새는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게 남자한테도 설득력이 없다. ‘사나이’란 단어가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데 젊은 남성 독자가 공감할까.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아들 얘기를 들어보면 돈 벌기도, 일하기도 싫어하고, 심지어 연애도 그런 식으로 한다더라.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찔러봤다가 안되면 욕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 젊은 남자들에게 남성다움을 끌어내고 싶다. (남성다움이 뭔지 묻자) 일단 근성, 그리고 담백하고 진실된 것이다.”
–작품에서 사나이,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반면, 여성 캐릭터는 존재감이 없거나 너무 수동적이다.
“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이다(웃음).”
–여자를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만화방에서는 내 숨겨진 히트작으로 ‘빨판’을 꼽는다. 이 작품을 그리려고 당시 강남에서 활약하던 최고 제비를 찾아가 취재하면서 많은 걸 보고 배웠다. 여자를 잘 알지만 모르는 척할 뿐이다.”
–노력해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근성이 통할까.
“세상은 변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도 계속 유지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열정과 노력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꼰대가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도 한때는 되바라진 X세대였다. 그때도 뭐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고,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 열정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런 근성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 근성이 있는 사람과 근성이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김 작가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등장하는 메디컬 드라마를 그려보고 싶다. 취재를 허락해주는 데가 없어서 시작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작품은 내년 1월 온라인 플랫폼에서 새로 연재한다. 어떤 작품인지 묻자 “완전 마초 웹툰”이란 답이 돌아왔다. 다른 데선 찾아보기 어려운 ‘열혈 마초’ 만화를 이제 ‘김성모 장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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