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고 킥보드 타는 어른들..알고보니 상습 음주운전자

김헌주 2020. 10. 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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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킥보드 음주운전 확정판결 분석
16건 중 10건이 상습 음주운전
8개월 아이 탄 유모차 치기도
12월부터 형사처벌 대상서 제외
자전거와 동일하게 범칙금 3만원

차량과 충돌한 전동 킥보드. 부산경찰청

지난해 8월 A씨는 밤 늦은 시간 서울 강남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약 700m 구간을 이동하다 단속에 걸렸다.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113%로 측정됐다. A씨는 두 차례 음주운전으로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 검찰은 A씨가 “음주운전 규정을 2회 이상 위반했다”며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전동 킥보드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PM)는 현행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운전면허가 필요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강혁성 판사는 지난 7월 A씨에게 “음주 무면허운전은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범죄로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 3월 B씨도 부산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약 50m 구간을 이동하다 적발됐다. B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213%. B씨 역시 2013년과 2016년 음주운전으로 각각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 부산지법 형사10단독 이성진 판사는 지난 5월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전동킥보드를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됐다고 보기 어려운데 충분한 계도나 교육을 하지 아니한 채 엄벌하는 것은 과도한 형벌권 행사”라며 벌금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전동 킥보드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편리한 개인형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일부 이용자들의 위험 운전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안전운전 불이행,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으로 인한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술을 마시고 킥보드를 타는 어른들이 늘어나면서 도로 안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킥보드 음주운전자들의 상당수가 상습 음주운전자인 것으로 파악됐지만 ‘혁신 산업’이란 이유로 규제가 완화돼 오히려 킥보드 음주운전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서울신문이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통해 킥보드 음주운전 판결 결과를 확인한 결과, 2017년 이후 확정된 16건 중 10건에서 두 차례 이상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운전 전력이 없는 경우는 4건에 그쳤다.

세 차례 음주운전 끝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킥보드 음주운전을 하거나 동승자를 태우고 운전하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동승자가 얼굴을 다치는 등 상습 음주운전자들의 판결문에는 다양한 사례들이 담겨 있었다.

음주운전 전력이 없지만 대낮에 혈중 알코올농도 0.210%의 만취 상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운전하다 20대 여성과 생후 8개월 된 아이가 타고 있던 유모차를 치는 사례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 일날 뻔한 사고였다. 지난 2월 대전지법 형사7단독 나상훈 판사는 당시 사고를 낸 C씨에게 “죄책이 가볍지 않고 피해 회복 및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오는 12월 10일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되면 킥보드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크게 낮아진다. 현재는 형사 처벌 대상이지만 앞으로는 원동기장치자전거가 아닌 ‘자전거 등’으로 분류되면서 음주운전 적발 시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상습 위반에 따른 가중 처벌도 없다. 음주 측정에 불응하면 10만원이 부과될 뿐이다. 신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업계 요구를 받아들여 운전면허 없이 탈 수 있게 한 것도 킥보드 음주운전 증가로 이어지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경찰은 법 개정이 이뤄진 이상, 하위 법령도 이에 맞게 정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현재 도로교통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를 한 상태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추이를 보면서 사회적 부작용이 커지고 규제 필요성이 늘어나면 당연히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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