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갑질 맞섰다 부도 위기..을의 피눈물

글·사진 박용근 기자 입력 2020. 10. 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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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 단가 후려치기 제보해 최대 과징금 이끈 납품업체
손실액 받으려면 5년 이상 민사소송 필요..회사 생사기로에

[경향신문]

국민청원 호소 윤형철씨가 대형마트의 부당함을 제기한 후 부도 위기에 처했다면서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408억 최대 과징금 이끈 공익제보기업, 이대로 갑질에 쓰러져야 하나요’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전북 완주에서 육가공업체 (주)신화를 운영하는 윤형철씨가 올린 글이다. 롯데마트 100여곳에 돼지고기를 납품했던 윤씨는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납품을 강요하는 등 ‘갑질’에 시달리다 2015년 롯데마트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싸우느라 신화는 법정관리 상태다.

4일 기자와 만난 윤씨는 “대기업은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 행태는 사라졌지만 정작 회사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면서 “공익제보기업으로 인정받으면 뭐하겠느냐. 회사는 대기업과 싸우면서 피투성이가 돼 부도 위기인데 정작 우리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신화는 연 매출 600억여원을 올리며 탄탄하게 성장해온 기업이다. 2012년 롯데마트에서 찾아와 “회사를 키워줄 테니 돼지고기 납품계약을 맺자”고 제안해 수락했다. 하지만 마트 할인행사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한 것은 납품계약을 맺은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회사를 키워주겠다고 약속해 철석같이 믿었는데 횡포가 만연했어요. 예컨대 1만5000원짜리 돼지고기를 9900원에 할인판매하면서 업체에는 8000원을 줬어요. 할인행사를 해도 자기들은 수익을 창출하고, 손해를 본 납품업체에는 나중에 보전해준다고 넘어갔죠.”

윤씨는 롯데마트 측에 수차례 손실보전 대책을 건의했지만 회유책만 돌아왔다고 했다. 결국 2015년 6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원은 그해 11월 롯데마트의 불공정 사실을 확인하고 신화에 그간 피해액 48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롯데마트가 이를 거부하면서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로 넘어갔다. 피해 업체가 신고한 지 4년 만인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롯데마트에 408억2300만원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규명된 손실액 109억원의 절반밖에 안 됐지만 조정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롯데마트가 거부했어요. 괘씸죄였지요. 조정이 결렬되자 롯데마트는 자동 제소됐습니다. 지방의 쥐꼬리만 한 중소기업과 싸우겠다고 대형 로펌 3군데를 돌아가며 고용해 대응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겁니다.”

롯데마트는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문제를 제기한 이듬해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직원은 10분의 1로 줄었다.

“약자에게도 정당한 피해보상을 해주는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손실액을 받지 못해 부과된 과징금은 국고에 귀속됐고, 피해구제금융도 받지 못한 채 생사기로에 서 있어요. 통탄할 일은 공정위가 갑질 기업의 부당함을 밝혀냈는데도 손해를 보상받으려면 5년 이상 걸리는 민사소송에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회사 문 닫으라는 거죠.”

윤씨는 “공익제보로 과징금이 부과되면 일부를 피해기업 회생자금으로 지원하고 기업이 정상화되면 회수하는 대책이 절박하다”면서 “대형 로펌에 쓰는 비용은 얼마든 상관없어도 중소기업과의 피해보상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재벌기업에는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서로 의견이 달라 법원 판단을 받아보기 위해 조정금액을 거부했고, 과징금은 납부했지만 이 또한 법원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28일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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