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으로부터 약자를 지켰던 위대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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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로 재직한 기간이 10년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판사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답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9월18일 삶을 마감한 위대한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었지만, 판사인 내게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보여준 법률가였다.
긴즈버그는 재판에 처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특히 소수자나 약자가 어떻게 목이 밟히고 있는지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머나먼 미국의 위대한 법조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런 의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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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로 재직한 기간이 10년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판사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답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9월18일 삶을 마감한 위대한 판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었지만, 판사인 내게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보여준 법률가였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여성 인권운동이 활발해졌다. 변호사 긴즈버그는 1970년대부터 다양한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것을 ‘여성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를 위한 활동이라고 불렀다. 의미 있는 소송을 제기하고 변론하여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는 게 그의 무기였다. 긴즈버그는 ‘성차별이 존재하는 줄 모르거나’ ‘성차별이 여성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했던’ 판사들에게 성차별의 존재와 의미, 해악을 차근차근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상상해보자. 성차별을 겪어본 적 없는 남성 엘리트 법관 9명에게,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유산관리인 지위를 박탈당하는 게 왜 부당한지 설명하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을.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자녀 양육자로서 사회보장 혜택을 못 받는 게 왜 부당한지 설명하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을. 차별로 고통받는 자들이 차별 구조의 수혜를 입는 자들에게 차별은 부당하니 이를 바꿔달라고 호소해야 할 때의 막막함을 상상해보자. 원래 1 더하기 1이 왜 2가 되는지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판사가 되기 전부터 긴즈버그는 판사들이 시대정신과 사회 변화에 무지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판사들이 법의 형식논리에 치우쳐 구체적 현실을 살피지 않을 때 그는 그 사회의 규범은 시민들과 동떨어진 죽은 규범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판사들이 시민사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법 해석이 정답이라며 오만해질 때 시민은 주권자에서 피통치자로 전락하고 민주주의는 파괴됨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재판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절망을 이해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는 판사가 되었다(최소한 시민의 분노와 절망을 놓고 사법 독립 침해라고 말하진 않았다). 나아가 시민에게 분노와 절망을 일으키지 않는 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긴즈버그는 재판에 처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 특히 소수자나 약자가 어떻게 목이 밟히고 있는지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현저히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법이 내리눌러 평평하게 만들어야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진정한 주권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득권의 정점에 올라 있다고 여겨지는 연방 대법관이 소수자와 약자의 곁에 서서 외쳤다. “그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 법 해석은 폭풍우 속에서 우산을 내던지며 비에 젖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인지부조화와 염치없음 그 자체다.”
연방 대법관이 되어 기득권의 최정점에 올라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시대 변화에 둔감해지고 무뎌질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년까지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단호한 지성을 유지했다. “중요한 문제가 걸린 사건이라면,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이를테면 표현과 언론의 자유, 젠더 평등에 관련된 문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항상 기득권에 맞서 무엇이 문명인지를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 보편타당한 인권의 구현을 제시했다. ‘꼰대에 저항하는 단호박.’ 그는 ‘Notorious RBG(악명 높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고 불리며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다.

연대 속에 잠드소서, R. I. P. RBG
긴즈버그는 판사로서 밑도 끝도 없는 중립을 강조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보편타당한 권리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사법이 소수자 인권 보장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소수자들은 자신의 보루가 되어줄 연방 대법관이 최소한 한 명은 있구나, 부당한 차별에 맞서 법에 기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희망은 연방 대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소송이 되었다. 연방 대법원은 충실하고 투명한 토론이 담긴 기념비적인 판결로 화답했다.
긴즈버그의 이런 태도는 현직 판사로서 나 자신을 계속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사법은 국가권력에 맞서 인권의 보루가 되어야 할 책무를 여러 번 저버렸다. 군부독재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주지 못했고, 사법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재판 당사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했다. 사법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법 불신이 당연한 상황에서 가장 힘든 이들은 소수자와 약자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재판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것일까. 재판을 통해 ‘실질적으로 평등한 법의 보호’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는가. 사법이 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기댈 곳이라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나.
대법원 판결과 동종 유사 사건의 하급심 판결들을 검색하여 내 사건에 대입해보며 ‘무엇이 무난한 정답일까’를 찾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재판 당사자들은 법정에 출석하여 법대 위의 나를 간절히 쳐다보지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들을 보기보다는 변호사가 써낸 단정한 서면 속 주장들과 제출된 자료들을 대조해보면서 사안을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당사자들이 어떤 상황이었을지 상상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상상의 시간조차 끊어내야 한다.

기존 규범 해석이 혹여나 구조적 차별을 재생산하지는 않는지, 당사자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에서 평등한 법의 보호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법을 해석해야 하는지, 시대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담론은 어떻게 성숙되어가는지.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소통하고 궁리하는 일은 이런저런 현실적 한계를 핑계로 늘 뒤로 밀린다. 나는 사실 현실을 핑계 삼아 직업인으로서 판사직을 그냥저냥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가끔 직업인을 넘어 판사의 사명에 충실한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현실로 쉽게 도피해버리는 내 나약함과 나태함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머나먼 미국의 위대한 법조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런 의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놀랄 만큼 공허해졌다. 어떤 식으로라도 그를 애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Rest in Power, RBG.
류영재 (판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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