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7만여대 취득하고도 주인 없어 취득세는 0원?

이정훈 2020. 10. 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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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2015년 KT금호렌탈 인수하며
호텔롯데 등 5곳 계열사가 지분 50% 취득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자와 TRS 계약으로
롯데 "과점주주 없어 납부의무도 없어"
계양구청 "의결권 등 실질적 주주에 의무"
400억여원 취득세 두고 5년 법정 갈등 중
롯데렌탈 매출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롯데렌터카 홈페이지.

개인이 차를 사면 취득세(4∼7%)를 내고, 회사를 인수할 때 법인 소유 차량이 있다면 과점주주가 취득세(2%)를 낸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차량 7만6천여대를 취득하고도 취득세를 한푼도 안냈다. ‘비결’은 신용파생상품의 일종인 총수익스와프(Total Return Swap)에 있다. 롯데는 2015년 케이티(KT)금호렌탈(현 롯데렌탈)을 인수한 뒤 보유 차량은 물론 부동산도 갖게 됐지만 약 400억원의 취득세를 두고 인천시 계양구청과 아직 분쟁 중이다.

4일 인천시 계양구청과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5월 롯데는 인천시 계양구청과 다른 지자체를 상대로 한 취득세 처분 취소를 요구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앞서 롯데렌탈 소유 차량이 등록된 계양구청이 2017년 롯데그룹 계열사들을 상대로 부과세를 통보하자 이에 불복해 롯데 쪽은 조세심판원에 취소심판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바 있다.

양 쪽의 갈등은 롯데그룹의 롯데렌탈 인수 방식에서 비롯됐다. 롯데는 케이티로부터 케이티금호렌탈을 인수하면서 증권사 등 재무적 투자자와 주주간 총수익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즉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 롯데하이마트, 롯데손해보험, 우리홈쇼핑 등 5개 롯데 계열사가 지분의 정확히 절반인 491만2850주를 계열사 돈으로 인수하고, 나머지 절반은 재무적 투자자가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인 그로쓰파트너 등 4곳이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재무적 투자자는 자기 돈으로 지분을 인수하며 5년간 의결권 등에 대한 권한을 건네는 대신 투자금에 대한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는 물론 배당금 등 안정적 수익을 약속받았다. 또 계약 기간이 끝나면 현금을 돌려받기로 했다.

인수 이후 롯데렌탈은 취득세를 신고하지 않았다. 롯데렌탈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차량은 물론 본사, 지방 사무소 등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납부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행 지방세법은 비상장법인의 자산 취득시 과점주주를 납세의무자(7조)로 정의한다. 롯데 계열사들의 보유 지분이 정확히 50%에서 1주도 넘지 않아 과점주주가 아니고, 이에 따라 취득세 납부 의무도 없다는 논리였다.

반면 계양구청은 절반에 달하는 주식의 명의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갖고 있지만 실제 행사 권한은 롯데 쪽에 있어 실질적인 과점주주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과거 2012년 대법원 판결에서 과점 주주 여부를 형식상 주식 소유자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자로 판단했다는 점도 함께 주장했다. 행정안전부에도 유권해석을 질의해 “주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 사항은 실질적으로 과점주주로 과세 대상으로 판단”한다는 회신까지 받고, 2017년 10월 롯데그룹 계열사에 취득세 319억원을 통보했다. 롯데렌탈의 다른 자산이 있는 지자체 44곳도 계양구청의 연락을 받고 취득세 통보가 이어지면서 전체 취득세 통보액은 408억원에 달했다. 그러자 롯데는 법무법인 율촌과 함께 반격에 나섰다. 같은 해 11월 조세심판원에 취득세 부과처분 취소를 구하는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이듬해 12월 “취득세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과점주주는 주주명부상의 주주가 아니라 그 주식에 관하여 의결권 등을 통해 주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 법인의 운영을 지배하는 주주를 의미한다”며 “롯데 계열사들이 특수목적법인들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주식 의결권 및 우선매수지정권 등을 갖게 된 점등을 고려할 때 롯데 계열사가 과점주주에 해당한다”며 계약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롯데호텔이 2015년 감사보고서에서 롯데렌탈에 대해 ‘보유지분은 20% 미만이나, 기타주주와 체결한 총수익스왑계약에 의해 20%를 초과하는 의결권을 보유해 유의적인 영향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관계기업으로 분류했다’고 명시한 점과 롯데렌탈 2016년 주주총회에서 특수목적법인 의결권을 넘겨 받은 위임장 등이 조세심판원의 판단 근거였다. 조세심판원 결정이 나자, 서울 강남구청 등 22곳의 지자체도 추가로 취득세 38억원을 통보했다.

롯데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9년 롯데 계열사들은 계양구청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5월1일 서울행정법원(제4부)는 롯데 계열사 5곳이 한 그룹에 속한다고 해서 ‘특수관계인’으로 볼 수 없다며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애초 롯데 쪽이 주식 50%뿐만 아니라 특수목적법인 보유 지분 의결권을 갖고 있어 과점주주 여부를 다투던 싸움이, 롯데그룹 계열사가 서로 특수관계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세기본법 시행령에는 대기업집단을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지방세법 시행령에는 이와 관련된 명확한 정의가 없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또 같은 그룹의 계열사라는 점만으로는 특수관계인이라고 볼 수 없고, 한 계열사가 다른 곳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나라살림연구소 서호성 책임연구위원은 “과점주주가 없다면 차량 7만여대의 소유주는 누구라고 봐야하는 것인지 의문이고, 롯데렌탈 인수시 롯데그룹이 계열사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특수관계인임을 의미한다”며 “지방세와 지방세법시행령에도 국세 기본법처럼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 항목을 명확하게 적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행정으로 400억여원의 세수를 확보한 계양구청 등 60여곳의 지자체는 롯데에 취득세 446억원을 반환할 처지에 놓였다. 계양구청 관계자는 “새로 대형 로펌과 계약을 맺고 항소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텔롯데쪽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지방세법과 최근 판례에 따라 당사를 포함한 5개 롯데그룹 계열사는 특수관계자 관계로 볼 수 없고, 특수목적법인 보유 지분은 외부 투자자들이 독자적인 투자 결정을 거쳐 보유하고 주주권을 행사하므로 롯데의 지분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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