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빙하, 꺼지지 않는 산불.. 지구 온난화의 저주는 시작됐다
호주와 미국은 대형 산불, 아시아는 태풍과 홍수 피해
환경단체 "기후위기 결의안 환영, 구체적 정책 필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지구 환경 오염이 개선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관광과 이동이 멈추고,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대기 오염이 줄어들고 수질도 좋아지면서 사라졌던 돌고래와 백조 등 동물이 돌아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일회용품과 마스크 사용이 늘면서 환경에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지구의 경제 활동은 줄었지만 기후 변화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올 한해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상 기후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호주와 미국은 유례없는 산불로 숲이 사라졌고, 수 많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반면 중국과 우리나라는 태풍과 홍수 피해로 직격탄을 맞았다. 빙하는 녹아 내렸고, 북반구는 141년만에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다.
기온 상승에 가뭄 계속… 호주∙미국은 '최악의 산불'
미국 캘리포니아주ㆍ오리건주ㆍ워싱턴주 등 서부에서 7월 말부터 동시다발로 일어나기 시작한 산불로 30여명이 목숨을 잃고, 많은 재산 피해가 났다. 특히 워싱턴주에서는 한 살배기 남자 아기가 숨졌고, 오리건주에서는 불에 탄 차 안에서 개를 끌어안은 채 숨진 13세 소년도 발견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난해 9월~5월 이어진 호주 남동부 산불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전 세계 산불 중 최악이었다. 우리나라 면적의 63%를 태웠다.
화마를 피해 달아나다 철조망 때문에 더는 달아날 곳이 없는 어린 캥거루가 철조망을 손에 부여잡고 선채로 불에 타 죽어 있는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확산했다. 호주를 상징하는 또 다른 동물인 코알라 역시 사실상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호주 시드니대에 따르면, 대규모 산불로 호주 전역에서 희생된 포유류 등 동물은 약 5억 마리에 달한다.
아마존 열대우림과 세계 최대의 늪지 판타나우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도 갈수록 커지면서 이 지역 동물과 식물군이 파괴 위기에 처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처음은 사람 때문에 산불이 시작했지만, 온난화로 인한 가뭄으로 불길은 1년째 꺼지지 않고 있다. 이미 뉴욕 면적의 3배에 달하는 2만9,000㎢를 태웠고, 수백마리의 재규어와 악어, 새들까지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산불이 잦아진 원인은 기온이 상승하고 가뭄이 이어지면서 불이 잘 번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 게다가 산불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나오면서 기온 상승과 기상 이변이 더 빨리 그리고 자주 일어나고 결국 더 많은 산불을 불러오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 긴 장마와 잇따른 강력 태풍
우리나라도 기후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올해 들어 긴 장마와 태풍 3개를 연달아 겪었다. 중부지방 장마는 6월 24일 시작해 8월 16일 끝나면서 54일 동안 이어졌는데 이는 1973년 이후 가장 긴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 역시 장마가 49일 동안 지속돼 역대 가장 긴 장마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급 장마에 기상청은 '장마 기간'을 '장마철'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그 동안 장맛비는 찬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형성되는 정체 전선의 영향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정체 전선뿐만 아니라 복잡한 원인이 동반되기 때문이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기상청은 기존에 사용되던 '장마전선=정체전선'의 개념을 앞으로는 '장마전선'이 아닌 '정체전선'으로 사용하고, 장마 기간을 '장마철'로 표현해 예보할 예정이다.
8월 8호 태풍 '바비'를 시작으로 9호 태풍 '마이삭' 10호 태풍 '하이선'까지 총 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덮쳤다. 특히나 해안 지역의 피해는 심각했다.
우리나라에 피해를 준 태풍은 모두 남쪽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는 경로를 보이면서 강도도 셌다. 이 역시 직간접적 원인으로 기후 변화가 지목된다. 원래 태풍은 일본 남동쪽이나 우리나라 남동쪽에 위치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데,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태풍의 동진을 막아 북진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중부 내륙이나 북한 동북지방 등 평소 태풍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지역에까지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대륙 고기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태풍을 밀어내야 하는데 올해는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이상고온으로 북극 바다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남북으로 요동쳤다"며 "이로 인해 태풍을 동쪽으로 밀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은 건조로 인한 대형 산불, 우리나라는 역대 최장의 장마라는 상반된 현상을 보였지만 결국 원인은 같았다. 기후변화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 변화로 시베리아 찬 공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고, 남쪽에 위치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만나면서 긴 장마가 이어졌다. 반면 미국 서부에서는 이상 기후로 페루 앞바다의 해수온이 낮아지면서 평년보다 따뜻한 고기압이 발달했고 건조해지면서 산불이 확산했다.
아시아를 강타한 홍수와 폭우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6월부터 2개월 넘게 폭우가 쏟아지면서 5,500만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1998년 최악의 홍수 당시 물을 방류하기 위해 댐과 제방을 폭파했을 때처럼 폭우로 불어난 물을 빼내기 위해 안후이성 추허강의 제방을 폭파하기도 했다.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에서도 몬순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이어졌다. 6월부터 시작된 몬순우기로 700명 넘게 목숨을 잃었고, 저지대가 많은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기는 등 지난 10년 중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었다.
알프스엔 분홍색 빙하가, 남극엔 진흙투성이 펭귄이
이탈리아 알프스 지역에 분홍색 빙하가 나타나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다에 사는 조류(물속에 살면서 동화 색소를 가지고 독립 영양 생활을 하는 하등 식물의 총칭)에 의한 현상으로 파악됐는데 문제는 빙하에 색이 입혀지면서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조류가 빨리 성장하면서 규모가 커질수록, 조류에 덮인 빙하가 더욱 빨리 녹아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빙하는 태양에서부터 오는 복사열의 80%를 반사하는데, 조류가 빙하의 윗부분을 덮어 짙은 색으로 변할 경우 더 많은 복사열이 흡수돼 빙하의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이번에 관찰된 지역 역시 빠르게 성장하며 늘어나는 조류에 의해 흰색 눈이 분홍색으로 변한 만큼, 빙하와 눈이 녹아 내리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2월에는 지구온난화로 남극의 눈과 얼음이 녹아 내리며 펭귄들이 진흙투성이로 발견돼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온몸에 진흙이 묻은 아델리 펭귄들의 사진을 촬영한 네덜란드 사진작가 프랜스 랜팅은 "남극 시모어섬은 영상 20도 이상에 도달하는 등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열기를 직접 느꼈다"면서 "새끼 아델리 펭귄들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서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온이 올라가면 눈과 얼음이 비와 진흙에 자리를 내주고, 새끼 펭귄들은 물이 차면 단열재를 잃는다"며 "펭귄들은 기후 대혼란으로 인한 새로운 현실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남극의 상황을 전했다.
한국은 기후악당? "구체적 정책 세우고 서둘러 대응해야"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심지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함께 '기후악당'(2016년 4월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 미디어 클라이밋 홈 뉴스가 국제환경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의 분석을 인용)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년 61개국 중 58위,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 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하위 2위, 석탄발전 비중 상위 4위가 우리의 성적표다.
국회는 24일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6번째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나라가 됐다. 해당 결의안은 현 세계 기후 상황을 '기후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정부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기로 했다. 해당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순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환경단체들은 환영하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내 여러 환경단체들이 모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여러 정당의 발의안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이 모호하고 혼란스럽게 담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성과 실천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려면,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0년의 절반 이하여야 하지만 실제 목표는 '강화한다'고만 되어 있다고 이들은 비판한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내고 "결의안은 기후위기 대응의 첫걸음일 뿐"이라며 2030 탈석탄 로드맵 없이는 이 내용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도 "국제사회와 과학계의 권고에 맞춰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 50% 감축과 2050년 순 배출 제로를 목표로 구체적인 정책을 세워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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