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군주'로 들썩이게 한 유시민은 與의 히든카드?

최형창 2020. 10. 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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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정치 비평 자제한 유시민
김정은 '계몽군주' 한마디에 정치권 들썩
이낙연·이재명 위기 몰리면 유시민 등판 가능성↑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알릴레오 유튜브 방송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발 ‘계몽군주’ 한마디가 한 주간 정치권을 강타했다. 유 이사장이 4·15 총선을 끝으로 잠시 정치평론계를 떠났지만 언제든 위기감이 감돌면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이 증명된 셈이다. 이를 넘어 내년 보궐선거 이후 여권 전반이 직격탄을 맞으면 대선 후보로 소환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유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공개된 방송인 김어준씨의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 자신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군주’라고 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내가 너무 고급스러운 비유를 했나보다”라며 “식자우환”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2500년 전이었으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라고 말하는 게 칭송으로 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보다”라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등 다 독재자다. 일반적인 전제군주들이 안했던 일은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독재자다. 북한 체제 전체가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왕조국가니까. 이 사람은 생물학적 운명 때문에 자기 뜻이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전제군주가 된 사람”이라며 “과거에 계몽군주라는 사람들이 왜 그런 일을 했냐 하면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계속 과거처럼 할래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참아주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니까 자기가 통치하는 제국을 조금 더 오래 잘 해먹으려고 그런 개혁 조치들을 했던 건데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김어준씨는 이에 “유시민이 다시 등장해서 또 이 지형에 영향을 줄까봐 사전에 어떻게든 ‘아 저 사람 말 들으면 안 돼, 알릴레오 보면 안 돼, 중도 넘어가면 안 돼’ 이거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권 등 유시민 비판 쏟아져

실제로 야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유 이사장에 대한 비판이 일제히 이어졌다. 국민의힘 김근식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김정은(위원장)의 통지문을 칭송하기 위해 애꿎은 계몽군주를 소환하는 ‘깨시민’”이라며 “북한의 만행에 눈감는다고 비판하자 무지한 군중에 의해 고발당하는 소크라테스로 자신을 고급비유하는 ‘무시민(의식 없는 시민)’”이라고 지적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설마 싸구려 입에서 고급스러운 비유가 나오겠나. 어느 나라 계몽군주가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형을 암살하고, 코로나 방역에 소총을 사용하나”라며 “살해 당한 사람 장례식장에서 범인이 ‘계몽 범인’이라 하는 격이다. 증거인멸을 증거보전이라 하던 개그 감각으로 이젠 블랙유머에 도전하시나 보다”라고 꼬집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화군 수해 복구 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유시민 이사장은 ‘김정은 계몽군주’설을 옹호하면서 자기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한 죄라며 동료 시민들의 무식과 무지를 개탄한다”며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모든 아테네 시민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는 장안의 지가를 올린 자칭 지식인보다, 광대를 자처하는 한 예인(藝人)이 소크라테스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비판했다.

◆알릴레오 시즌3로 돌아오는 유시민

유 이사장은 총선 이후 ‘스피커’ 역할에서는 물러났지만 책 비평 컨셉인 ‘알릴레오 시즌3’로 돌아온 만큼 여권 지지자들에서는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다. 도서 비평이 주를 이루지만 방식에 따라 정치인이 나올 수도 있고, 정치 관련 서적을 소개하면서 정국에 대한 해설도 곁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유 이사장이 현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내년이 되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유 이사장이 저렇게 정치를 한사코 안한다고 주장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면서도 “현재 상황에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쌍두 마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기에 굳이 유 이사장까지 나설 필요는 없지만 만에 하나 둘 모두 본선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상황으로 전개되면 유 이사장이 ‘히든 카드’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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