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묻지마 폭행' 구속과 기각 사이.. '고무줄 영장' 해법은

이현주 2020. 10. 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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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폭행과 8월 논현역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거의 흡사하다.

7명의 여성 피해자들을 폭행한 논현역 사건의 피의자 권모씨는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후 즉각 구속됐다.

그러나 서울역 사건 피의자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대법원은 "개별 사건, 개별 법관에 따라 영장재판이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도 "영장 발부 여부에 관해 구속력 있는 일률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에 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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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 "명확한 구속 기준 마련" 요구 
검찰 "불구속이 원칙" 구속사건 점유율 줄여와 
법원 "법관 재량.. 일률적 기준, 되레 재판권 침해"
서울역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났다가 검거된 이모씨가 올 6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5월 서울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폭행과 8월 논현역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거의 흡사하다. 30대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들을 무차별 폭행한 것이다. 그런데 처리 과정은 달랐다. 7명의 여성 피해자들을 폭행한 논현역 사건의 피의자 권모씨는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 후 즉각 구속됐다. 그러나 서울역 사건 피의자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어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었다”거나 “조현병 등에 따른 우발적, 돌출적 행위였다”라는 게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다. 이씨는 결국 상해,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유사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일관치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구속 영장 처리를 두고는 검찰과 법원의 입장부터 다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법무부와 대법원에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 및 발부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10일 발간한 ‘2020 국정감사 이슈분석’에 따르면,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법무부는 국회의 요구에 “구속수사의 일반 원칙과 기준을 정립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힌 반면 대법원은 “영장 발부 여부에 관해 일률적 기준을 마련하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법무부는 국회에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건에 한해 신중하게 영장을 청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6월 검찰사건처리기준에 ‘구속수사의 기준’을 추가했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지침에 따라 수사상 필요성과 인권보장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전체 형사사건 중 구속사건의 비율은 꾸준히 줄고 있다. 2016년 구속사건 점유율은 1.30%에서 2020년 8월 기준 0.98%로 5년간 지속 감소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올 8월에 열린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제일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는 불구속 수사 원칙의 철저 준수와 공판 중심의 수사 구조 개편”이라면서 “인신 구속은 형사법의 정상적인 집행과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극히 예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면 대법원은 검찰처럼 불구속 재판을 위해 구속영장 발부율을 관리하거나,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구속 사유 외 별도의 판단 기준을 정립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전체 법원의 일관성 있는 영장심사 원칙 및 발부 기준을 마련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재판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고, 일관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고 강조했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법관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개별 사건, 개별 법관에 따라 영장재판이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도 “영장 발부 여부에 관해 구속력 있는 일률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어 “객관적인 구속 기준 설정은 결국 구속 확대를 가져와 불구속 수사ㆍ재판의 원칙에 역행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일률적 기준을 마련하는 대신 영장전담법관교육 또는 연구회, 세미나 등으로 영장재판의 편차를 줄여나간다는 설명이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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