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 알린 '이음 책방' 지킴이 조진석 "책방 없는 나라엔 희망이 없다"
[경향신문]
조진석 책방 이음 지킴이는 최근 출판문화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다. 운영하던 서점이 잘 돼서가 아니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난 22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책방 이음 페이지에 폐점 소식을 알렸다. 책방이 문을 닫아도 할 일은 남는다. 재고 서적을 정리해야 하고, 문닫는 이유를 주변에 설명해야 한다. 지금도 책방 손님과 회원들로부터 숱한 연락을 받고 있다. SNS에는 “계속 운영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죄송하네요” “마음과 기억에 평생 이음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등 댓글이 달렸다.
할 일은 또 있다. 조씨는 서점이 ‘폐점’한다고 알렸다. 책방 문을 닫아두는 것이지, 영업을 아주 그만두는(폐업) 것이 아니다. “사업을 접게 되면, 그동안 해 온 박사수료생에 대한 지원도 끊어야 해요. 매달 일정금을 지원해주거나 선입금으로 책을 구매해 온 회원들에게 돈도 갚아야 합니다.” 지금은 문을 닫지만, 사실은 동네서점을 살리고 싶다. 조씨는 지난달 7일부터 매일같이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를 목표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하루치 시위를 막 마친 그를 청와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SNS에 폐점 알림글을 올렸다.
“코로나19 탓이 컸다. 수익은 없는데, 300만원 가까운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갔다. 내부 서적을 정리하고 공간을 정리하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2009년 12월부터 책방을 운영했으니 올해로 11년을 책방 사람으로 살았다. 긴 시간인 만큼 위기도 많았는데, 매번 책방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이번엔 달랐다. 최근 ‘3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코로나19, 도서정가제 개악, 문화체육관광부의 해태. 감염병이 치명적이긴 했는데, 그건 사람이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제도와 정책의 문제다. 책방을 지키고 싶어도 환경이 자꾸 나빠진다.”
-서점 유지가 구체적으로 왜 어려웠나.
“기본적으로 돈이 안되는 사업이다. 동네서점은 보통 도매상에서 판매가의 70% 수준 돈을 주고 책을 들여온다. 책을 한권 팔 때마다 판매가격에서 30%가 수익으로 남는 것이다. 이 30%에서 임대료, 인건비, 카드수수료, 세금 등 온갖 비용을 지출한다. 내가 직접 일을 해서 인건비를 아끼지만, 매달 450만원 이상이 이 고정비용에 쓰인다. 2만원짜리 책을 팔아 6000원이 남는다면, 한달에 750권을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 동네서점에서 하루 25권 팔기 쉽지 않다. 영리를 표방해도 어차피 수익을 남기기 어려워 ‘비영리’라는 콘셉트를 표방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으니…. 자영업자용 저리대출로 1600만원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다 까먹었다. 특히 8월15일 이후 코로나19가 2차 확산되면서 희망을 잃었다.”
-다른 동네서점들도 상황이 비슷한가.
“망원동 한강문고가 지난 5월10일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동네책방에 미치는 영향을 지난 4~8월 조사했는데, 5월에 잠깐 수익이 반등했을 뿐 전반적으로 매출이 급감한 상태다.”
-벌이가 안되는 것치곤, 동네 서점이 주변에 꽤 많다.
“대부분 2010년대 중반 이후 생겨난 서점들이다. 2014년 11월 도서정가제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 전까진 동네서점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구간(오래 전 발간된 책) 할인’ 제도 때문이다. 당시 발간 18개월이 지난 책들을 할인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책 관련 행사가 열리면 50%부터 90%까지 대폭 할인행사가 열렸다. 신간 구매보다 할인하는 책을 살 유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시 교보문고 1~10위 자리를 다 18개월 지난 책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또 2012년부터 알라딘이 중고서점을 낸 것도 동네서점에 타격을 줬다. 그래서 동네서점이 늘어날 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다행히도 현행 도서정가제가 생기면서 구간 할인을 없애고 10% 할인, 5% 적립, 무료배송 등으로 가격 폭이 조정됐다. 전보단 상황이 나아진 거다. 도매상을 끼고 책을 사야하는 동네서점 입장에선 그 할인 폭조차 맞추기 어렵고,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런데 정부가 지금 그 도서정가제를 다시 예전 형태로 돌려놓겠다고 나선 거다.”
조씨가 1인시위에서 든 손팻말엔 “도서정가제 개악 시도! 동네책방을 벼랑 끝으로 내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미디어정책국 국장,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과장 파면하라”는 글귀가 적혔다. 지난 2014년 시행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출판계 등 상황 변화에 맞춰 법안을 재정비하도록 규정돼 있다. 올해 개정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가 검토한 법안엔 발행 36개월이 경과한 장기재고도서를 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문체부가 주최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도서전에 대해서도 예외적으로 정가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허용 할인율을 확대하기로 했다.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등은 문체부 안이 동네서점 매출을 줄이고 대형서점에만 혜택을 몰아주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한다.
-책방을 시작할 땐 달랐나.
“그때도 상황은 안좋았다. 지난 2005년 다른 분이 ‘이음아트도서’란 이름으로 열었던 책방을 4년 뒤 인수했다. 그 책방이 망해서 내게 넘어온 거다. 당시 사장님은 책방 지키려고 사방팔방 돈을 빌리시다가 개인파산까지 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도 3000만원가량을 빌리셨더라.”
-그 과정을 보면서도 책방을 시작한 건 왜인가.
“학생 때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선택하기에 앞서 부모님께 역사를 전공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부모님은 법이나 경제를 전공해서 현실적으로 돈을 좀 벌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언제까지 네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느냐며. 하지만 나는 역사책을 읽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때 부모님을 설득한 논리가 이거였다. ‘공부할 때 제일 필요한 게 책이잖아요. 책 좋아하니까 책 파는 일을 할게요.’ 실제로 대학 가서는 근 10년 인근 서점 이곳저곳에서 일했다. 서점 주인이 되려면 유통도 알아야 하고, 책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사회생활이 책방 영업이었던 건가.
“아니다. 꿈은 꿨지만, 한동안 묻어두고 지냈다. 사립대 교직원으로 일하다가,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에서 연구조교로 있었다. 유학 준비도 했고. 그러다 2008년 3월에 시민단체 ‘나와우리’ 사무실에 발령받았는데, 그 사무실이 ‘이음’ 근처였다. 혜화역 1번출구로 나와서 골목에 들어오면 바로 이음이 있고, 책방을 지나면 사무실이었다. 슈퍼 갈 때도 늘 간판을 봤다. 그렇게 몇번 이음을 들락날락하다가 사장도 알게되고 나니, 애정이 생기더라. 내가 잊고 있던 꿈, 내가 못가는 길. 그걸 꿈으로만 간직했던 나와 달리, 현실 속에서 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한 거다. 가게로 들어오는 문을 열면,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책방 이름인 ‘이음’은 무슨 뜻인가.
“‘사람과 사람을 잇다’, ‘사람과 자연을 잇다’. 그래서 ‘이음’이다. 전 사장 때도 같은 단어를 썼는데, 그때는 ‘다른 소리’(異音)를 뜻했다. 책방을 인수하면서 이름은 유지하되 뜻을 달리 해석했다. 도시 공간이 참 인공적이지 않나. 사람과 자연을 잇고자 생태학 책을 많이 들여다 놨다. 내부에서 환경 관련 전시도 자주 했다. 그간 한두달에 한번씩 책방 내부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3분지 1은 천연기념물 등을 다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온 경험은.
“책방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살다보면 무슨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주변에 털어놓기 어려운 때가 있지 않나. 가족·친구는 너무 가깝고, 이해관계 얽힌 사람과 대화하긴 민감하고. 그런 얘기를 책방 사람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많았다. 또, 미대를 준비하는 고3이라면 책방 손님인 미대 교수나 대학원생과 연결해줬다. 임산부에겐 출산·육아를 고민하면 출산코치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좋은 기억도 많겠다.
“사랑이, 레온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결혼하면서 한국에 이주해 오신 일본 여성분이 계셨다. 대학로에 살면서 동네 산책을 자주 하셨는데, 첫째인 사랑이가 걸어다닐 때쯤부터 책방에 들르셨다. 육아에 한참 지칠 때여서인지 오면 종종 소파에서 잠이 드셨다. 나는 그 사이에 아이랑 숨바꼭질하고, 까꿍 놀이하고(웃음). 사랑이가 코코아를 좋아해서, 없던 코코아를 가게에 들여놨다. 좋아하는 브랜드 딱 집어서. 나를 ‘코코아 삼촌’이라고 부르더라. 그러다 둘째인 레온이가 태어나고, 1년쯤 됐을 때인가. 돌잔치를 가게에서 열고 싶다고 하시더라. 아이들이 이 책방을 너무 좋아한다면서. 하지만 책방이 공간도 그렇고, 의자도 불편하지 않나.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요가매트를 샀다. 돌잔치 오신 분들 모두 요가매트에 앉아서 축하를 해줬다. 레온이는 걸음마도 책방에서 배웠다. 서가를 짚으면서 일어나고, 책 사이를 걸어다녔다. 나중엔 그 가족이 일종의 상징처럼 돼서, 자주 오시던 다른 손님이 엄마와 아이가 책방 들어오는 장면을 캐리커처로 그려주기도 했다. 책방 하면서 가진 가장 좋은 기억이다.”
-‘공익’서점으로도 유명하다.
“2014년부터 박사 수료생 지원사업을 했다. 알아보니, 박사과정을 밟을 땐 장학금 등 지원 제도가 여럿 마련돼 있지만 수료한 뒤엔 지원책이 마땅히 없더라. 논문 쓰는 기간엔 개인의 특별한 노력 없이는 밥벌이가 어렵다는 뜻이다. 처음엔 매달 50만원씩 한 사람에게 연구장학금으로 줬는데, 최근엔 매달 10만원씩의 도서구입비를 여러 명에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베트남에 지원도 했다.
“내가 일하는 ‘나와우리’가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희생자 가족에게 현금·현물 지원을 하다, 이음 책방을 열면서 책을 전달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크캠프 차원에서 1년에 2주는 베트남을 방문하는데, 돌아다녀보면 학교마다 교실뿐, 도서관은 하나도 없더라. 가정집에 책 있는 경우도 거의 없고. 그래서 2010년 꽝남성 인근 한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건립했다. 첫해 벌었던 돈 1000만원이 거기 쓰였다. 최근엔 베트남 연구자들, 서점·출판사 대표들과 함께 출판문화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책방 문을 닫으면 공익적 활동도 멈추나
“아니다. 책방 소식을 알리면서 폐업이 아닌 폐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공익적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싶어서였다. 지난 10년 동안 1억원 남짓을 외부 지원에 썼다. 박사 수료생 지원, 베트남 도서관 건립 추진 등 굵직한 활동도 있었지만, 출판사 현수막 지원, 시민단체 후원 활동, 베트남 전쟁 피해자 지원사업 등 적은 액수로 꾸준히 이어온 활동도 있었다. 폐업을 하면 사업 자금으로 이어오던 지원을 끊어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음은 회원제로 운영하는데, 매달 5000원에서 5만원 사이 후원금을 내주는 회원을 뿌리회원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300명 정도 된다. 들꽃회원도 있는데, 이분들은 10만원 단위 일정 금액을 선입금하고 책을 구매하거나 서점 내 카페를 이용할 때, 강좌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때 차감한다. 이분들도 대략 300명이다. 당장 폐업한다면 후원해준 분들에게 바로 돈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지킴이’라는 명칭이 특이하다. 대표나 사장과 다른 의미인가
“다른 의미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하는 아르바이트생 등은 지킴이라고 부른다. 나는 큰지기, 다른 분들은 작은지기라고 불러 구분한다. 다함께 책방 이음을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작년에 300명이 넘었다. 무임으로 책·서가 정리를 돕고, 책 배달이나 구매, 판매를 도왔다. 내부 장식을 위해 수작업하거나, 현수막 등 디자인에도 그들의 정성이 들어갔다. 그동안 매월 2개씩 이음 건물 외부에 현수막을 걸었는데, 출판사 홍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인쇄소 사장님이 ‘왜 이런 걸 서점에서 만드냐’고 물어보셔서, ‘출판사를 지원하고 싶어서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분도 ‘돕고싶다’면서 다음부터 돈을 안받으시더라. 이음이 공익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음을 유지하고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던 배경엔 누군가의 도움이 늘 있었던 거다.”
-공익적 활동을 하지 않는 동네서점도 많다.
“그래도 동네서점을 지킬 이유는 충분히 많다. 동네서점만이 가치가 있다. 평소 동네서점을 3C라고 지칭했는데, 큐레이션, 커뮤니케이션, 커뮤니티의 약자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스타벅스 매장 직원이 커피를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는 흑인을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공간 이용은 상업적 목적과 직결된다. 하지만 책방에선 책을 사지 않는 사람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음 손님 중에는 한참을 잠만 자다 가는 분도 있었다. 내부에 소파랑 카페가 있다. 한 뮤지컬 배우는 오후 4시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1시쯤 와서 3시간씩 매일 책을 읽었다. 그렇게 와서 답답한 얘기도 꺼내고, 쉬기도 하고,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동네’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광역화가 급속도로 이뤄져, 노르웨이에서 잡은 연어를 우리가 먹는 시대 아닌가. 생활의 편의성은 전지구적으로 돼있는데, 마음의 공간은 사실 그렇게까지 멀지 않다. 온라인 활동이 활성화된 것과 달리, 삶의 영역을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케어는 약해진 상황이다. 서점은 발닿는 거리의 커뮤니티 역할을 해줄 수 있고, 그 안에서의 소통을 이룬다.”
-책방 주인으로서 많이 권해준 책은 뭐였나.
“특정 책을 많이 권하지 않았다. 책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존재다. 폭탄을 던져 테러한 사람의 마음 속엔 그래도 된다는 사상을 심어준 책이 있을 거다. 함부로 권하면 안 되는 것이 책이다. 같은 이유로 베스트셀러 목록도 두지 않는다. 잘 팔릴 뿐, 꼭 좋은 책이라곤 할 수 없으니까. 책 추천은 개개인마다 맞춤형으로 한다. 최근 파일럿으로 고용됐다가 코로나19로 해고되신 분이 책방에 왔다. 그 분에게 비행기 관련 책을 추천하면 안 되겠지. 일단 마음을 다독여주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책을 권했다.”
-요즘 읽는 책은?
“도종환씨의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을 보고 있다. 1989년 출판된 책이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시험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신간코너에서 봤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교사로서 도종환씨가 학생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책이다. 이제와 이 책이 끌렸던 건, ‘떠나는 마음’이 같아서다. 동네책방 사정이 다들 어렵다는 걸 알고, 동네책방 네트워크라는 걸 만들었다. 준비위원장직을 맡으며 여러 책방 사람들과 함께했다. 헌데 정작 내가 폐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해서….”
조씨는 책을 소개하던 중 조용히 이 시집의 한 페이지를 펼치고 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또 너희들 곁을 떠나는구나. 기약할 수 없는 약속만을 남기고. 강물이 가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산처럼….’ 강물과 산에 발이 걸린 듯 조씨의 목이 메었다. 오른손으로 시 구절을 만지며 읽어나간 그는 석별의 말을 막 스친 손으로 안경을 벗고 눈을 닦았다.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사람들에게 기억해달라고 알리는 문구가 있다. ‘책방없는 나라, 희망없는 나라.’ 책방이 사라지면 커뮤니티도 사라지고 소통도 사라진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 수도 없게 될 거다. 그건 곧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알 기회를 놓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 읽는 사회라고 꼭 좋은 사회인 것은 아니다. 좋은 책을 읽어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독일에선 서점인조합에서 하는 학교가 있어서, 졸업생들이 양질의 서점을 운영한다. 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서점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서점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다니는 것으로 안다. 양서를 골라낼 수 있는 큐레이터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책을 고른 뒤엔, 책을 기반으로 주변 사람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책방이 사라진다는 건 그래서, 희망이 스러진다는 뜻이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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