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고기 나눠 먹고 단식으로 속죄..세상엔 이런 명절도
친구들과 한잔하고 귀성해 가족 식사
명절 다음날인 금요일 휴무하며 쇼핑
하나 같이 코로나 방역 초비상 사태
중화권 설날 귀성으로 코로나 확산
베트남전 때 베트콩, 설날 틈타 공격
유대 세계, 사과와 속죄로 새해 맞아
방송도 쉬는 욤키푸르 틈타 아랍 기습
이슬람권선 종교행사 마치고 나눔 명절
가축 잡아 고기 이웃과 나누며 평등 새겨
명절 풍습은 달라도 넉넉한 마음은 하나
코로나19 와중에도 30일로 2020년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다. 마스크를 쓴 채 맞는 올해 추석은 지난 어느 때보다 색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명절의 전형적인 모습은 멀리든 가까이든 떨어져 사는 가족이 한데 모여 차례를 지내고 함께 식사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평소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명절의 형태와 성격은 가족 구성, 종교, 개인 사정 등에 따라 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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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함께 맞는 2020년 한가위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당국의 권고가 있어 명절을 지내는 형식이 더욱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 그리워도 귀향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국공립 묘지나 납골 묘역 등이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아 올해는 추석 당일 성묘도 어렵다. 그런데도 가족 간의 정을 서로 확인한다는 명절 고유의 의미는 변치 않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명절을 맞아 다른 문화권의 명절은 어떤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풍습은 달라도 명절을 맞는 넉넉한 마음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추석을 맞아 세계의 독특한 명절 풍속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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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추수감사절, 한국 추석과 가장 비슷
수확의 계절에 열리는 한국의 추석과 가장 비슷한 해외 명절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쇠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일 것이다. 하느님에게 풍성한 수확을 감사드리고, 미국을 세운 건국 조상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미국에선 매년 11월의 넷째 목요일이, 캐나다에선 10월 둘째 월요일이 각각 추수감사절이다. 한국의 상당수 개신교 교회에선 11월 셋째 일요일에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린다. 미국에선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휴무로 지정해 주말을 포함해 나흘간 휴일을 즐긴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해서 유통업체가 대규모 할인행사를 벌인다.
북미대륙의 추수감사절은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부모님 댁으로 귀성해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 다시 만난 가족이 함께 식사한다는 점 등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심지어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기 전날인 수요일에 친구들과 한잔하는 풍속이 있어 술집이 붐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런 풍속 때문에 추수감사절 기간에 북미대륙에서 코로나19가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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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이동, 친구들과 한잔-위험한 명절
기록상 첫 추수감사절은 16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종교박해를 피해 잉글랜드에서 지금의 미국 매사추세츠주로 이주한 청교도 53명이 신대륙에서 첫 수확을 하자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옥수수 등 작물 재배법을 비롯해 신대륙에서 생존술을 알려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도 초청해 사흘간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가족 식사에선 칠면조 요리와 통옥수수 구이, 파이 등을 먹는 이유다. 당시 제대로 가축을 기르지 못했던 미국의 건국 선조들은 정착촌 근처에서 야생 칠면조를 사냥해 먹었으며, 원주민이 알려준 옥수수를 재배해 먹었으며, 잉글랜드 음식인 파이를 귀하게 챙겨 먹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그야말로 건국신화와 곧바로 연결되는, 미국적인 명절이다. 1789년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국경일로 지정했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날짜를 조금씩 손봐 오늘에 이른다.
유럽 대륙에선 추수감사절이 명절도, 공휴일도 아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추수감사절 이야기가 자주 나오면서 유럽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추수감사절 당일이나 앞뒤 주말에 부모님 댁에 온 가족이 모여 칠면조 통구이를 먹기도 한다. 풍속도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세계화가 코로나19로 일시 주춤하고 있지만 언제든 위력을 회복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해외나 장거리 여행이 어렵게 된 사람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미국 영화와 작품을 더 많이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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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설날이 사과와 속죄의 명절
유대인은 4대 종교 명절이 있는데, 독특한 것은 가을에 설날을 맞는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은 서구와 다른 히브리력이라는 고유 달력을 쓴다. 음력이 바탕이지만 중간에 윤달이 있어 보정이 된다. 서양과 한국이 쓰는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9~10월에 로슈 하샤나(Rosh Hashanah)로 불리는 유대 설날을 맞게 된다. 히브리력으로 7월 1일인데 유대인은 이날을 새해의 첫날로 친다. 올해는 9월 18일 저녁부터 9월 20일 저녁 사이였다. 나팔을 불어 속죄일을 준비해 나팔절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서로 행운의 덕담을 하면서 꿀에 담근 사과나 대추야자, 호박, 사탕무 등 달콤한 것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인생이 달콤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유대인에게 설날인 로슈 하사나와 새해 열흘째 되는 날인 욤 키푸르는 잘못한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속죄한 뒤 화해하면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있다. 과거 유대인들은 로슈 하샤냐부터 9일 동안 매일 자신이 그 전해에 잘못했던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도 미처 다하지 못한 사과가 있을 수 있으므로 새해 열흘째인 ‘욤 키푸르’에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식을 함으로써 속죄했다. 구약 시대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하면서 모세가 처음 받아왔던 십계명을 깨뜨렸던 유대민족이 회계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온 날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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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의 명절, 욤 키푸르 전쟁 밀린 원인
욤 키푸르에 유대인들은 속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스라엘에선 방송도 쉰다. 1967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 기습공격에 나선 이집트의 안와르 나세르 대통령은 바로 이날을 공격개시일로 잡았다. 이날은 방송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예비군 긴급 소집 명령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빈틈이었다. 사다트의 계산은 적중했다. 이스라엘군은 초기에 상당히 밀렸다. 일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이 전쟁은 서방에는 ‘욤 키푸르 전쟁’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명절 방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알려주는 무서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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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 설날 대공세로 허 찔러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중화 문화권에서는 음력 1월 1일인 설날을 춘제(春節)라고 해서 최고의 명절로 여긴다. 추석을 중추절이라고 부르며 기념하지만, 설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중국과 홍콩은 설날부터 사흘, 마카오는 설날 전날 오후부터 사흘 반, 대만은 설날 전날부터 닷새가 각각 공휴일이다. 화교들이 많이 사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설날부터 다음날까지 이틀이 공휴일이다. 화교가 일부 사는 인도네시아는 설날 하루 전, 필리핀은 설날 당일이 공휴일이다.
베트남에서도 설날을 ‘뗏’이라고 해서 최고의 명절로 여기며 설날 전날부터 엿새 동안 공휴일이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공산 진영의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은 설날 명절로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바로 설날 당일에 남베트남 전역을 동시다발로 공격하는 구정 대공세를 시작했다. 공산 측이 30만~50만의 대병력을 동원해 3차에 걸쳐 9개월간 계속한 대규모 공세로 양측에서 5만5000명 이상이 숨졌다. 서방에서는 뗏을 영어식으로 읽은 ‘테트 대공세’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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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설날 방역 실패, 반면교사 삼아야
중화 문화권에선 설날에 귀향해 부모나 돌아가신 조상에게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어 이동이 많다. 중국에선 이 기간에 36억 명이 이동한다. 상당수 중국 노동자들은 이 기간에 1주일 이상, 심지어 한 달 가까이 쉬기도 한다. 중국에선 올해 설날인 지난 1월 25일 이전에 코로나19가 확산했지만 중국 당국은 최대의 명절이란 점을 염두에 둔 때문인지 강력한 통제를 하지 않아 전염병이 번졌다는 지적이 강하다. 결국 중국은 춘절이 지나면서 코로나19 발생지인 우한(武漢)은 물론 전국 상당 지역을 사실상 봉쇄할 수밖에 없었다. 명절에 귀향한 노동자들이 한참 동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경제적 피해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중국의 지난 설날 방역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따르거나 되풀이해선 안 될 나쁜 본보기)로 삼고 있다. 이번 추석에 귀성과 이동을 가급적 자제하도록 당국에서 권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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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명절이 이웃과 나눔의 축제로
이슬람 세계에선 단식월인 라마단이 끝난 뒤 사흘간(어떤 나라는 나흘) 축제를 즐기는 이드알피트르와 정기 성지순례인 하지 기간이 끝난 뒤 여는 희생제인 이드알아드하가 있다. 음력인 이슬람 달력으로 쇠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우스력을 디누으로 하면 매년 달라진다. 올해는 이드알피트르가 5월 22일부터, 이드알아드하가 7월 31일부터 각각 열렸다. 지난 8월 23일은 이슬람 설날이었다.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이웃과 나눠 먹는 나눔의 행사다. 라마단과 하지는 신앙고백, 기도, 나눔과 함께 이슬람의 5대 기둥으로 불린다. 종교와 사회적인 나눔이라는 의미가 동시에 있다. 유일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므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신에게 올리고 이웃과 나눠 먹으며 신의 뜻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족만 생각하지 말고 이웃과 함께 공존하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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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숙연한 아슈라, 즐거운 노루즈 명절
이슬람 달력에선 한해의 첫 달을 무하람이라고 부르고 그 열흘째 되는 날을 아슈라(아랍어로 10이라는 뜻)로 부른다. 올해는 지난 8월 18일 저녁부터 19일 저녁까지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 무슬림은 이날 하루 단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란 중심의 시아파 무슬림에겐 의미가 다르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또는 후사인으로도 부른다)이 이라크 남부 카르발라에서 반대파와 싸우다 전사한 것을 추모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의 자손이 이슬람 세계를 지도해야 한다고 믿는 시아파는 후세인의 아버지인 알리와 후세인을 종파의 시조로 여긴다. 그래서 시아파는 후세인의 죽음을 추모해 아슈라를 슬픔과 애도의 날로 여긴다. 이란 등 시아파 지역에선 이날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통곡을 하는 사람, “후세인, 후세인”을 외치며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치며 후세인을 구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종교 행사를 연다. 숙연하고 슬픔으로 가득한 날이어서 과거 외국인이 이날 함부로 다니면 단속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태양력을 쓰는 이란 문화권에선 양력으로 3월 21일인 춘분을 노루즈(Nowruz)라고 부르며 설날로 쇤다. 노루즈는 기원이 3000년 전으로, 현재 이란은 물론 발칸 반도, 흑해, 카프카스, 중앙아시아, 중동 여러 나라에서 설날이다. 전 세계 3억 명 이상의 사람이 기념하고 있으며 유엔도 이를 인정했다. 노루즈 공휴일은 이란에서 닷새간, 아제르바이잔에서는 7일이나 된다.
코로나19 방역은 명절 정신과도 일치
노루즈에는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특별 정찬과 과자를 즐긴다. 정찬에는 콩의 싹, 달콤한 푸딩, 말린 보리수 열매, 마늘, 사과, 옻나무 열매, 식초 등 7가지 메뉴를 즐긴다. 각각 소생, 풍요, 사랑, 의술, 아름다움과 건강, 해돋이, 노령과 인내심을 의미한다. 어둡고 엄숙한 추도일이 있으면 이렇게 밝고 즐거운 축제의 명절도 있는 법이다.
이처럼 명절은 문화권과 종교, 인종과 민족을 넘어 인류에게 마음이 넉넉해지는 날이다. 코로나19가 엄습한 올해는 모든 명절에 방역이 필수가 됐다. 방역은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예의로, 명절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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