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도맡았던 형님 이젠 없어" 고통 여전한 초량지하차도 유족

부산CBS 박진홍 기자 2020. 9.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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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1지하차도 참사 50대 희생자 친동생 인터뷰
추석 앞두고 아픔 더 큰 가족들 "집안 경조사 형이 다 챙겨"
사고 이후 무너진 일상 되찾지 못해..불면증에 시달리기도
'기소의견 송치'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향한 실망, 분노로 바뀌어
"자신 명성과 안위만 챙겨..생각 바꿀 때까지 계란으로 바위 칠 것"
지난 7월 23일 폭우로 물에 잠긴 부산 동구 초량제1지하차도에서 구조대가 지하차도에 갇힌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곳에서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었다.(사진=부산경찰청 제공)
"명절이면 형님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게 꿈만 같습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한가위 연휴를 저마다 이유로 손꼽아 기다리지만, 부산 초량1지하차도 참사 유족에게는 사랑하는 가족 없이 보내야 할 첫 명절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두 달 전 참사로 형 A(50대)씨를 잃은 남동생 B씨. 명절 준비를 도맡았던 형을 대신해 다가오는 추석에 쓸 음식을 준비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렇게 벽에 부딪힐 때면 형이 어디선가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나타나 웃으며 도와줄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B씨는 목이 메어 온다.

◇우애 남달랐던 형제…사고 나자 일상 '와르르'

"아버지 차례상도 항상 형님이 다 알아서 준비하고 그랬는데, 이제 없으니까 제가 대신 준비하는데 형 얼굴이 자꾸 생각나서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고 사찰에 모시려고 합니다."

B씨는 형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 형처럼 착한 사람 없었어요. 부유하진 않아도 매번 주위 사람들 잘 챙기고, 그러다 피해를 보고 속은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이번 추석 때도 있었으면 가족들한테 음식을 얼마나 챙겨줬을지…"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장성한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살며 명절 때나 가끔 모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A씨 3남매는 어머니와 함께 네 가족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각자 살며 일상을 공유했다. 그랬기에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 각별했다. 특히 장남 A씨는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존재였다.

"여든을 앞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한데, 형님은 그런 어머니 집을 매일 찾아가 말벗을 해줬어요. 딸들에게 좋은 아버지였던 건 물론이고, 우리 가족이 친척이 많은 편인데 형은 경조사 같은 것들을 다 살뜰히 챙겼어요."

지난 7월 23일 폭우로 물에 잠긴 부산 동구 초량제1지하차도에서 구조대가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부산경찰청 제공)
B씨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저와 형은 주말마다 같이 조기축구를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낙이었어요. 그랬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났으니 저나 가족이 느끼는 빈자리는 더 클 수밖에 없어요."

가족에게 대들보와 같은 존재였던 A씨가 떠나자,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했던 일상은 깨졌다. 어머니는 지금도 A씨가 눈앞에 있는 듯 혼잣말을 이어간다. A씨 자녀들은 혹시나 다른 가족들이 더 슬퍼할까 하는 마음에 방에서 혼자 슬픔을 삼키고 있다. 거의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는 B씨는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마다 형이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며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넬 것만 같아 바깥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 A씨 가족에게 초량1지하차도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휴가 나온 딸 보러 오던 길에 사고 당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던 지난 7월 23일 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가용으로 귀가하던 A씨는 초량1지하차도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에 사고를 당해 끝내 가족 곁을 떠났다.

지난 7월 23일 폭우로 물에 잠긴 부산 동구 초량제1지하차도 당시 내부 모습(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생전 A씨는 조만간 새로 시작할 펜션 사업에 온 힘을 쏟았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고민이 깊었다. 그날도 부산 동구 모처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지인들을 직접 집까지 바래다주고 왔을 테지만, 그날은 A씨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둘째 조카(A씨 딸)가 휴가를 나온 날이었어요. 조카가 공군 부사관인데, 부산이 아닌 멀리 충주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주 얼굴을 보기 힘들었지요."

B씨는 조심스레 말했다. "보통 형은 지인들 데려다주고 큰길(중앙대로)을 통해 영도로 들어오는데, 그날은 지인들도 지하철 타고 간다고 하고 아이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아마 좀 더 빠른 길인 지하차도로 간 것 같아요"

B씨는 말을 이어갔다. "사고 이후 뉴스만 보는 사람들은 지하차도에 물이 차는데 왜 거길 들어갔냐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 지하차도 입구는 구조상 진입하기 전에는 밖에서 물이 찼는지 어떤지 잘 볼 수가 없어요. 폐쇄회로(CC)TV 화면이 찍힌 반대편 쪽 출입구는 경사가 없어 물이 차는 게 바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죠. 그날 사람들은 물이 찼는지 어떤지 모른 상태에서 별다른 통제도 없으니 진입을 한 겁니다."

◇부산시 무관심 대응에 실망, 수사 결과 발표 뒤 분노

A씨는 3명의 희생자 중 가장 늦게 발견됐다. 설마 하던 가족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족을 더 슬프게 하는 건 당국의 무관심한 대응이었다. 부산시 안전을 책임지는 수장인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사고 다음 날 사고 현장을 찾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을 직접 수행했지만, 장례를 치른 3일 동안 빈소에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7월 30일 부산 동구 초량1지하차도에서 동생 B씨(사진 맨 왼쪽)가 부산경찰청 수사전담팀이 현장 정밀감식을 벌이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다.(사진=박진홍 기자)
유가족들은 사고 나흘 만에 부산시청을 찾아 변 권한대행 면담을 요구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고, 뒤늦게 나타난 변 권한대행으로부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어야 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변 권한대행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을 달아 송치했다. 사고 당일 재난 매뉴얼에 적힌 상황판단회의나 대책회의, 재난 현장 확인 없이 저녁 식사를 한 뒤 관사로 돌아갔고, 전화로 상황을 보고받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변 권한대행에게 유족이 느낀 실망은 이제 분노로 바뀌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희생자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가는 사람이 그 시간에 술을 마셔놓고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시장은 술 먹고 집에 가서 자고, 부하 공무원들은 하지도 않은 회의를 했다고 공문서까지 작성하고…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B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변 권한대행이) 수사 결과 나오고 나서 변호인 통해 바로 반박 입장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명성과 안위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희생자를 향한 사과는 매번 허공에 날리기만 하고, 우리에게 직접 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도대체 시장이 말하는 시민은 누굽니까?"

지난 14일 부산경찰청 수사전담팀이 초량1지하차도 참사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경찰은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등 공무원 8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사진=강민정 기자)
B씨는 20대 희생자 유족과 함께 부산시 등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게 서툴고 아픔도 가시지 않아 힘이 들지만, 확실히 책임을 물어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사고가 또다시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B씨는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 권한대행이 태도를 바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정말 가능성 없는 이야기지만, 변 권한대행이 정말로 시민에게 일어난 일이 자기 가족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이 일을 마주했으면 합니다.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겠구나, 위로가 절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은 '내가 직접 안 죽였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바뀔 때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주위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하지만, 저는 끝까지 바위 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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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CBS 박진홍 기자] jh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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