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조작사건' 손해배상 소송 강기훈씨 인터뷰 "2년 지났는데 꿈쩍도 않는 대법, 나 죽은 뒤에 결정 내리려 하나"

문주영 기자 2020. 9.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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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기훈씨는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 2심 법원이 국가 책임만을 인정하고 당시 수사검사들과 필적감정인 등 개인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했다. 2년 넘게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조작사건을 꾸민 당사자들이 그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향후라도 수사 일선 공무원들이 그런 나쁜 일을 꾸미지 못할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담당 검사·필적감정인에 면죄부
사과했더라면 소송은 안 했을 것
실제로 일을 꾸민 사람들은 없고
실체 없는 국가가 조작한 것인가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 위헌 결정
간암 투병 중 공권력과 싸움 계속
전원합의체의 현명한 판결 기대

“2009년 서울고법의 재심 결정에 대해 검찰이 항고한 후 대법원이 3년간 답을 안 줬는데 지금이 딱 그때와 비슷해요. 손해배상 소송 건에 대해 상고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대법원은 꿈쩍도 하지 않아요. 아마도 내가 죽은 뒤에야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어요.”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강기훈씨(56)는 한층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기력이 부족해 대화 중간중간 숨을 골랐지만 화가 나 있었다.

사건 발생 24년 후인 2015년에야 재심을 거쳐 동료(고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도왔다는 혐의를 벗었지만 당시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국가 공권력과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면서 기다리는 것도 지쳐 있다”고 했다.

강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직후인 2015년 11월 국가와 당시 담당 수사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 신상규 전 검사장(당시 주임검사), 유서 필적 감정을 맡았던 김형영 전 국과수 문서감정실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2017년 1심에서 검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데 이어, 2018년 2심에서 추상적인 국가 책임만을 인정하고 개인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에서다. 강씨는 2018년 대법원에 상고했다.

강씨는 재판부가 1·2심을 통해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른 담당 검사들과 필적감정인에 대해 면죄부를 준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 만약 그들이 과거 잘못된 수사에 대해 내게 사과했더라면 손해배상 소송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민사소송은 형사소송과 달리 원고인 내가 피고인들의 잘못을 입증해야만 한다. 1·2심 판결문만 봐도 판사는 그들이 잘못한 게 없다고 대신 변명해주고 있어 한심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상고심의 쟁점이 ‘소멸시효를 어떻게 보느냐’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만 책임을 지고 당시 집행자들은 소멸시효가 지나서 책임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일을 꾸민 사람들은 없고 단지 실체도 없는 추상적인 국가가 내 혐의를 조작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강씨와 변호인단은 헌법재판소가 2018년 8월 과거사 사건에 대해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내린 결정에 주목하고 있다. 중대한 인권침해나 조작의혹 사건,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의 경우 소멸시효 없이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헌재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이 울산보도연맹 피해자 가족 4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소멸시효가 지나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는 등 헌재 결정을 적용한 판례가 나오고 있다. 다만 국가가 아닌 특정 공무원 등 개개인에 대해서도 이 같은 헌재 결정을 적용한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강씨의 소송대리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우리 입장은 헌재 결정을 추상적인 국가만이 아닌 당시 혐의를 조작한 개개인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특정 공무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느냐가 문제인데 아직까지 우리 법원은 수사기관 공무원들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간암 투병 중인 강씨는 지난해와 올해만 해도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전남 강진에서 홀로 거주 중인 그는 인터뷰 전날에도 서울대병원에서 긴 시간 동안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건강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꼈다.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 듯했다.

“법원이 계속 답변을 주지 않는다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내가 해당 검사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라도 해야 하나, 그런 무서운 생각까지 들 때가 있어요. 우리나라 과거사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너무 착해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후 재심을 청구해 겨우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요. 출세를 위해 조작사건을 꾸민 당사자들이 그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향후라도 수사 일선 공무원들이 뒷일 무서워서라도 그런 나쁜 일을 꾸미지 못할 거 아닙니까!”

하늘이 투명하고 공기 중 습기가 적은 요즘, 강씨는 밤이 되면 별을 본다고 했다. 그는 “상고심 판결이 기존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전원합의체로 돼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난다면 그 자체로 의미는 있다고 본다”며 “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시골 밤하늘의 투명하고 맑은 별처럼 우리 사회가 투명사회가 되는 그날을 위해 강씨는 오늘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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