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해 '2주' 버텨달라는 부탁, 대부분은 참고 노력하더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강남구청 재난안전과 박경욱 주무관이 한 호실 문에서 2m 떨어져 전화에 대고 말했다.
박 주무관은 "이탈로 뜨면 매뉴얼에 따라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다. 전화를 안 받으면 바로 격리 장소로 '튀어' 가는데, 해외 입국자는 시차 문제로 오전에 자느라 전화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가격리 감시 공무원의 하루
타부서 직원까지 차출해 현장 투입
격리용 물품 전달하며 몸 상태 묻고
'답답하다' '힘들다' 호소엔 격려도
장소 이탈·연락 불통땐 바로 출동
“김석호(가명)씨, 문 앞에 자가격리자용 물품을 방금 놨습니다. 지금 문 열고 가지고 들어가시겠어요?”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강남구청 재난안전과 박경욱 주무관이 한 호실 문에서 2m 떨어져 전화에 대고 말했다. 문이 빼꼼히 열리고, 자가격리 대상자가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조심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박 주무관과 눈인사를 나눈 뒤 손만 내밀어 황급히 물품을 집안으로 들였다. 문이 열렸다 닫히기까지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2주간 격리하게 되는데요. 제가 매일 불시에 찾아뵐 수 있는데 불편하시겠지만 양해 부탁드려요.”
박 주무관은 전화로 나머지 준수사항을 마저 안내했다. 두 사람은 2주 동안 문을 사이에 두고 “안에 잘 있냐”, “열은 없냐”고 묻고 답하며 매일 소통하게 된다.
‘코로나19’ 확산 뒤 국외 입국자나 확진자 접촉자 등 자가격리 대상자들이 쏟아지면서, 전국 시·군·구청에서는 이들을 관리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담당 부서만으론 인력이 부족해, 다른 부서들 인력까지 대거 차출돼 관리에 투입된 상황이다.
강남구청은 음성 판정을 받더라도 2주 동안 무조건 자가격리해야 하는 해외 입국자가 많아 이 업무가 과중하다. 회사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20~30대 출장자들이 모여 있고, 유학생도 많기 때문이다. 24일 현재 구청 직원 1660명 가운데 729명이 자가격리자 1237명을 관리하고 있다. 가장 많았을 땐 855명이 1452명을 담당했다.
박 주무관에게 김씨는 스무번째 격리자다. 전날 그가 홍콩에서 입국하자마자 박 주무관에게 배정됐다. 박 주무관은 “많을 땐 한번에 3~4명씩 관리했는데 지금은 해외 입국자가 줄어 1명”이라며 “요일 구분 없이 실시간 통화하고 방문하는 건 그대로인데, 이제 우리 가족들도 익숙해져 주말에도 (일하러 다니더라도)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자가격리자 관리는 강남보건소에서 격리용 물품이 담긴 쇼핑백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쇼핑백엔 마스크 10개와 소독제, 의료폐기물용 쓰레기봉투 그리고 체온계가 담겼다. 다음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가격리 대상자가 머무는 주소를 찾아가는 일이다. 지도 앱을 켠 채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단다.
곤란한 경우는 자가격리 관리 앱에 대상자 위치가 ‘이탈’로 뜨거나 전화를 받지 않을 때다. 박 주무관은 “이탈로 뜨면 매뉴얼에 따라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다. 전화를 안 받으면 바로 격리 장소로 ‘튀어’ 가는데, 해외 입국자는 시차 문제로 오전에 자느라 전화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심리 방역’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박 주무관은 “2주간 갇혀 있다 보니 ‘답답하다’, ‘힘들다’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를 위해 조금만 버텨달라고 달래드리면, 대부분 참고 노력하신다”고 말했다.
관리·감시활동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공무원별로 노하우도 생겼다. 김은주 강남구청 정책홍보실 팀장은 “영상통화로 집안을 비춰달라 하거나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손을 흔들어달라고 하는 등 상황에 맞게 대처 중”이라고 말했다.
관리 대상자 배정은 무작위 추첨인지라, 외국인을 맡게 되면 말 못할 고생을 하기도 한다. 엄정식 성동구청 감사담당관실 주무관은 “동남아의 경우 입국자가 많아 구청 내 통역 가능한 분들이 있는데, 흔치 않은 언어를 쓰는 외국인을 맡게 되면 번역기를 돌려가며 소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70대 노인을 맡게 됐는데 스마트폰이 없어 임대폰을 구해 앱 사용법을 알려드리곤 더 자주 통화했다”며 “2주 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외려 제게 고마워하시는데 보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글·사진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 [단독] “박덕흠이 담합 지시” 판결문 명시…검찰은 기소도 안했다
- “집값 못 내려” “그 값엔 안 사”…매도-매수 힘겨루기 길어지나
- 제로백 3초…슈퍼카를 삼킨 전기차
- 아동 성행동 보면 어떡하죠? 보육교사 80%가 “난감했다
- 데뷔 25년 크라잉넛 “25년 달려온 비결요?…만나면 재밌다는 거죠”
- 전면에 나선 문 대통령…‘진상규명 공조’ 통해 돌파구 찾기
- 집주인 “실거주” 한마디에, 짐싸야 하는 세입자들
- 유가족 “구명조끼가 월북 증거라니”-군당국 “첩보 있지만…”
- ‘상온 노출’ 독감백신 접종 407명…“최대 6개월 추적 필요”
- [한겨레 프리즘] ‘기더기’ 오명이 억울하다면 / 유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