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현대重 훔친 기밀 설계도..해군 제공에 가치도 없다?

김태훈 기자 2020. 9. 26. 10: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군의 차기 구축함 KDDX의 개념 설계도를 도둑 촬영해 훔친 현대중공업 측이 대(對) 국회 설득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목적은 크게 2가지입니다. 훔친 KDDX 개념 설계도를 KDDX 본사업 수주에 활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강변하고, 그래서 KDDX 설계도 절도 사건의 다음 달 국정감사 쟁점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겁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논리는 "훔친 KDDX 개념 설계도는 활용할 가치도 활용할 이유도 없었다"입니다.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KDDX 개념 설계도를 현대중공업은 왜 훔쳤을까요. 절도를 위한 절도였고 단순 소장용으로 KDDX 설계도를 비밀 서버에 모셔뒀던 걸까요.

무려 해군의 3급 비밀입니다. KDDX의 상당한 기밀들이 들어있는 보고서이자 도면입니다. 현대중공업에게 KDDX와 같은 해군 구축함은 건조해도 큰돈 안 되는 소소한 배일지 몰라도, 해군에게는 국민과 영해를 지키는 전부입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국회에서 "개념 설계도를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았다"는 무도한 주장도 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방사청, 해군 모두 현대중공업 직원이 2014년 1월 해군본부 함정기술처에서 설계도를 도둑 촬영해 훔쳐간 사실을 인정하는데, 현대중공업은 합법적 취득이라고 우기는 꼴입니다.

현대중공업 측이 KDDX 기밀 절도 관련 국회 설명용으로 작성한 문건


●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아 '획득'했다"

현대중공업의 이른바 대관 업무 담당 직원들은 요즘 몹시 바쁩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의 방을 찾아가 KDDX 개념 설계도 절도 사건을 해명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사의 입장뿐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 방사청 입장도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과 방사청이 한배를 탔다는 의심을 받을 만합니다.

먼저 현대중공업이 국회에 유포하는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현대중공업 자료의 요약 및 재구성)
-획득 경위 : 장보고-Ⅲ 잠수함 개념 설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설계 보고서의 형식과 구성 체계 등을 참고하기 위해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편의상 촬영'
-사용 여부 ① : 2018년 12월 7명으로 별도의 전담 조직을 구성해 광개토함, 울산함 등 최신 함정 기본 설계 경험을 토대로 KDDX 개념을 정립
-사용 여부 ② : KDDX 개념 설계도는 7년 전 작성된 것으로 수준과 용도, 무기체계 발전 추세 등을 고려했을 때 '활용할 이유도 가치도 없음'

획득 경위부터 어불성설, 거짓말입니다. 절도도 획득의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절도를 획득이라고 치장한 것부터 억지입니다. KDDX 개념 설계도를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았다는 설명은 기가 막힙니다. 해군은 현대중공업에게 KDDX 개념 설계도를 제공한 적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해군 장교 한 명을 꼬드겨 개념 설계도를 받은 뒤 도둑 촬영해 훔친 겁니다. 장교 한 명의 일탈을 해군 전체로 확대해 합법적 취득인 양 꾸미려는 현대중공업의 간교한 술책에 불과합니다.

장보고-Ⅲ 개념 설계에 참고하기 위해 KDDX 개념 설계도를 훔쳤다는 논리는 이번에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SBS의 현대중공업 기밀 절도 사건 취재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은 기밀 절도의 목적을 밝히지 못해 전전긍긍했습니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함구하더니 SBS의 보도 이후 국회용으로 새로 개발한 논리로 보입니다.

작년 한 전시회에서 공개된 현대중공업의 KDDX 모형


● "활용할 가치도 이유도 없다"

현대중공업의 기존 논리는 "7년 전 작성된 개념 설계도여서 활용할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입니다. 해군은 개념 설계에 이어 첨단 함형 적용 연구, 스마트 기술 적용 연구 등의 국책 과제를 잇따라 수행하면서 KDDX의 윤곽을 구체화했습니다. 개념 설계, 첨단 함형 적용과 스마트 기술 적용 연구 모두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특히 개념 설계도는 KDDX 연구개발의 전반기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입니다.

활용할 이유도 가치도 없었다면 훔칠 까닭도 없었습니다. KDDX 설계도를 훔친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형이 확정되는 순간, 현대중공업은 국가 사업의 입찰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이렇게 무거운 기밀 절도죄의 불이익을 잘 알면서도 절도를 감행했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은 KDDX 개념 설계도를 훔쳤고 공교롭게도 KDDX 본사업인 기본 설계 사업자로 사실상 선정됐습니다. 발표만 남았습니다. 현대중공업은 개념 설계도를 기본 설계 사업 제안서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글쎄요. 현대중공업의 막강한 영향력은 많은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있어도 진실을 영원히 가릴 수는 없을 겁니다.

● 방사청 입장 전파도 대행

현대중공업은 국회에 방사청 입장을 대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KDDX 기본 설계 제안서 평가와 업체 선정은 적법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방사청은) 규정과 절차에 맞게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라는 겁니다.

방사청 입장은 위와 부합할 겁니다. 그렇다 해도 현대중공업이 방사청 입장을 대행해서 전파하는 행동은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현대중공업이 방사청 역할을 대행하는 건 현대중공업과 방사청의 긴밀한 공조의 결과로 읽히기 십상입니다. 국회가 궁금하면 방사청에 질의하면 될 일이고, 방사청이 궁하면 국회에 설명하면 그만입니다.

사실 방사청도 자유로운 처지가 못 됩니다. 현대중공업의 KDDX 개념 설계 절도 행각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KDDX 본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래 놓고 방사청은 지금까지도 적법했고 앞으로도 적법할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방사청의 이런 주장은 현대중공업의 입을 통해 국회로 중계되고 있으니 둘이 친하다는 의혹을 받아도 할 말 없습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