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암흑가의 통뼈
[경향신문]

여기 동네에선 뼈를 가리켜 ‘빼’라고 한다. 족발도 아니고 닭발도 아닌데 뼈를 빼라 부른다. 빼서 버리면 안 되는 것인데, 암튼 빼~. 여느 노동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농부들은 뼈가 굵어야 한다. 첫째, 삽질을 잘해야 다른 일도 잘한다. 제아무리 과학 영농의 시대라고 하나 삽자루를 거머쥐고 농로를 설쳐주면서 물꼬를 봐주어야 제대로 농부 축에 낀다. 둘째, 기초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선선한 시간에 보통 일을 시작하는데 비실배실 저질 체력으로는 새벽기상부터 어렵다. 통뼈들은 건강 상태가 남다르다. 셋째, 굴렀을 때 안 다치고 뼈가 멀쩡해야 한다. 뼈라도 금이 가면 한 해 농사 도로아미타불. 시골살이는 텀블링 데굴데굴 구를 일이 유독 많다. 논두렁 밭두렁 산길은 잘 닦인 도회지 산책로가 아니다. 땅벌과 독사가 나타나면 굴러서 도망도 쳐야 한다. 통뼈여야 굴렀을 때 덜 다친다. 경운기를 끌어안고 구르는 일도 생기는데, 통뼈들은 헤헤 털고 일어난다.
얼굴에 부기가 가득해도 채소밭에 계신 분들 보면 모두 통뼈들이다. 손목이 전봇대만큼 굵고 종아리 알은 공룡 알만 해. 입까지 험한 통뼈들 속에서 살아남기란 고되고 빡센 운명. 조금만 언성이 올라가면 주먹자랑, 뼈자랑. 요새는 치고받고 쌈박질이 덜하지만 과거엔 암흑가 누아르를 연속극으로 찍었다.
일반인은 제정신으로 살기조차 힘들고, 번창할 일 거의 없는 기가 쎈 터. 승려들이나 살 수 있다는 풍수에서 간신히 살고지고. 나도 나름 양중(서양 중)이라서 이만큼은 목숨 부지하는갑다. ‘쎈 터’ 센터에 사는 몸. 통뼈는 못 되고 중간 뼈는 그래도 돼서 다행이다. 청년 학생들의 힘은 부모의 직업군에서 나오는 세상이란다. 국민의 힘은 태극기에서 나오는 듯싶고, 농민의 힘은 통뼈에서 울끈불끈. 뼈자랑을 했다간 뼈도 못 추릴 여기는 암흑가. 추분이 지나니 해가 재빠르게 저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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