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지만 존재하는 세상..팬데믹을 은유하다

전지현 2020. 9. 2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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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개인전 '사각 死角'
`사각 死角(b)`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그림들이 한 눈에 보이지 않았다. A자형 구조로 전시해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들여다봐야 했다. 요즘 흔치 않은 길이 14m 대형 작품에 코로나19 시대 혼란과 작가의 일상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만난 이진주 작가(40)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관에 전시된 두루마리 그림을 보면 말려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늘 궁금했다"며 "숨겨져 있지만 존재하는 세상을 이번 전시에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 제목이 '사각 死角 (The Unperceived)'이다. 하얀 벽으로 이뤄진 여느 미술관과 달리 건축가 김수근이 붉은 벽돌로 마감한 전시장에서 A자형 구조라는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다.
사각 死角(a)
작가는 "전시장 전체를 캔버스로 생각하고 과감한 각도 전시를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섬세하고 집요한 동양화기법 붓질로 채운 대형 회화 '사각 死角(b)'는 팬데믹 시대를 은유한다. 핏물이 채워진 수영장에 수액을 짜는 나무들이 서 있고, 그 위 빨랫줄에 흰 광목천들이 널려 있다. 마스크를 끼고 앉은 소년, 흰 천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보인다.

작가는 "한 치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는 코로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주제 사라마구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은 후 최악에 처한 인간 상황을 이불을 뒤집어 쓴 답답한 상황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진주 작가
이 혼돈의 시대에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기들은 생명의 신비이자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사각 死角(a)'는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환경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남미 열대 식물 화분들이 놓여 있고 일부는 뿌리째 뽑혀져 있다. 작가는 "국내에서 유행처럼 가꾸는 열대 식물들이 서식지를 떠나 지구 반대편에 와서 증식되는 상황을 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그렸다"고 말했다.

방석에 누워 있는 부처 두상, 바닥에 놓인 십자가는 팬데믹 시대 종교의 역할을 묻는다. 자연분만을 결정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인위적이어서 느낀 충격, 아들이 좋아하는 풍뎅이 등 삶의 단편들도 담았다. 긴 그림 곳곳에 놓인 흰색 가림막에 대해서는 "인생의 마디를 의미한다. 내 나름 대로 삶의 순환 시작과 끝을 담았다"며 "작품에 숨어있는 오브제를 통해 관람객의 생각과 경험을 발견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두 작품 사이에 아이를 목말 태운 여인 그림이 A자형 구조를 완성한다. 그 주변에는 가위를 숨긴 여성이 대나무를 쥔 여자와 마주한 그림 '(불)가능한 장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허망한 수사들' 등이 설치돼 있다.

이진주 개인전 사각 死角 전경
예민한 촉수로 주변을 포착해온 작가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초현실적이라고 하는데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그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한다. 사실적이면서도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것 같으면서 주관적이다. 그 아슬아슬한 무게감을 드러내려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2월 14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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