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단절, 유쾌함과 짠함의 기묘한 동거

서화동 2020. 9. 2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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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코가 삐뚤어져 있고, 웃고 있는 입은 귀에 걸릴 판이다.

입이 볼에 붙어 있거나 피노키오처럼 코가 뾰족하게 나온 사람도 있다.

일상의 소재에 상상력을 입혀 익살과 해학으로 버무린 그의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특유의 색감과 동화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두 사람이 한몸이 돼 하나의 마스크를 끼고 있는 '뮤트(Mute)'는 코로나 시대가 초래한 침묵과 우울함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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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태 개인전 '판타스틱 맨'
일상적 소재·경험 해학적 표현
삶의 본질·모순 예리하게 포착
코로나 시대 담은 '마스크' 등
회화 35점, 조형물 7점 선보여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문형태 개인전 ‘판타스틱 맨’에 전시된 ‘마스크’(왼쪽)와 ‘뮤트(Mute)’.


눈과 코가 삐뚤어져 있고, 웃고 있는 입은 귀에 걸릴 판이다. 입이 볼에 붙어 있거나 피노키오처럼 코가 뾰족하게 나온 사람도 있다. 목이 90도로 꺾여 있거나 두 얼굴이 하나로 합쳐진 경우도 있다.

얼핏 보면 판타지와 동화 그림 같다. 빨강·노랑·초록을 주조로 한 원색의 화면과 유머러스한 캐릭터….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화처럼 천진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익살과 해학 속에 번득이는 칼날과 암호 같은 장치가 숨겨져 있다. 형태를 왜곡한 익살스러운 캐릭터는 일상 이면의 부조리를 들춰낸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문형태(44) 개인전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에 걸린 작품 이야기다. 전시 작품은 회화 35점과 오브제 조형물 7점.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상반된 감정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Fantastic man', 45.5x53cm, Oil on canvas, 2020. 선화랑 제공


전시의 표제작 ‘판타스틱 맨’은 네덜란드 계간 남성 잡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하얀색 왕관을 쓴 남자의 얼굴 반쪽은 푸르스름하고 나머지 반쪽은 어둡고 검푸른 데다 눈이 충혈돼 있다. 한 인물에 내재된 복합적이고 상반된 요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문 작가는 “유명 인사들의 화보 위주인 다른 잡지와 달리 명품시계, 미녀, 자동차 같은 건 전혀 없이 흥미로운 인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것을 보고 성공의 기준이란 뭘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가난한 무명작가였던 자신의 삶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조선대 서양화과 출신인 그는 현재 최고의 인기 작가다. 작품을 그리면 마르기도 전에 팔려나간다고 해서 ‘마팔’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지난해 경매시장에선 낙찰률이 90%에 달했다.


일상의 소재에 상상력을 입혀 익살과 해학으로 버무린 그의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특유의 색감과 동화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올해 작업한 신작 ‘마스크’를 보면 두 남녀가 한 손으로 서로의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다. 사랑하는 남녀조차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 보편화된 소통과 단절의 줄다리기를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두 사람이 한몸이 돼 하나의 마스크를 끼고 있는 ‘뮤트(Mute)’는 코로나 시대가 초래한 침묵과 우울함을 웅변한다.

그의 작품에는 소통과 단절, 사랑과 증오, 행복과 불행 등이 교차하고 잠복한다. ‘메리 고 라운드(Merry Go Round)’는 회전목마를 타고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그렸지만 삶이라는 놀이터는 평탄하지 않고 끝없는 오르내림의 반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 속 피노키오처럼 긴 코와 유니콘의 뿔은 성적(性的)인 코드다. 작품에 등장하는 숫자들도 나름의 암호다. 1은 나, 2는 둘의 관계,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탠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상징하는 식이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석점토 조형물 7점은 새로운 시도다. 고무오리 ‘러버덕’의 주둥이 대신 혓바닥을 쑥 내민 ‘레버덕(Rever Duck)’, 자동차 애호가인 그가 가장 사랑하는 차를 모델로 한 ‘Porche 911 Turbo s’,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에서 착안해 심장을 형상화한 ‘Heart’ 등 제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눈길을 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땐 중간중간 쉬기도 하는데 오브제를 만들 땐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성공을 향해 달려왔던 그는 변화를 예고했다. 팔리는 작품과 하고 싶은 작품 사이에서의 갈등을 접고 새롭게 발견한 것이 ‘놀이처럼 재미있는 작업’이다. 올해 경기 양주 장흥의 가나아뜰리에에 입주한 뒤 작업의 본질을 새삼 깨달았다는 그의 신작들이 기대된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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