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쉬면 아이들 어디로".. 라면 화재로 드러난 '돌봄 공백'
◆수차례 ‘돌봄 공백’ 경고음에도 당국은 소극적 대처
19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16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임대주택 빌라 2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에 홀로 머물던 초등학생 형제가 점심을 위해 집안에서 라면을 끓이던 중 실수로 불을 낸 것이다. 형제는 사고 발생 6분 만에 119에 신고해 “살려주세요”를 외쳤다. 소방서에서 다급히 이들의 위치를 추적해 건물을 찾았지만 형제는 이미 중화상을 입은 뒤였다. 동생을 감싸려던 형은 전신 40%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책상 아래에서 발견된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었다.
해당 가정은 어머니 A(30)씨가 아이 둘을 홀로 양육했는데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그동안 종이가방을 제작하거나 포장하는 이른바 ‘자활근로’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다. 자활근로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의 보호로 일을 하며 자활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A씨가 근무하던 사업장은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휴관에 들어갔다가 약 4개월이 지난 뒤인 7월 27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A씨는 사업장이 영업을 재개한 뒤 다시 근무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업장은 코로나19로 지난달 25일 다시 휴관한 상태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당시 코로나19로 자활근로가 멈춰 지인의 박스 작업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활 급여와 수급비 등 매달 160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취약계층 돌봄 이용 전수조사”
구청과 학교, 이웃 모두 형제의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적극적인 대처는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사고 이후에야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은 지역아동센터 등 돌봄시설의 이용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위기 상황에 처한 가정과 취약계층 등에도 돌봄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학생의 규모는 어느 정도 인지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인천 미추홀구는 형제 치료를 위한 의료비 300만원을 지원하고 미추홀구 공무원 사랑나눔 1%를 통해 모인 기금 50만원과 지역재단에서 50만원을 모아 병원 인근에 A씨가 거주할 수 있도록 거주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돌봄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촘촘한 아동 복지의 틀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돌봄 공백을 완화하기 위해 ‘가족 돌봄휴가’ 등을 권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7일까지 맞벌이 직장인 283명에게 코로나19에 따른 돌봄 공백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50.5%(143명)가 ‘자녀 돌봄 공백을 버틸 수 없어 휴업이나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69.2%는 연차사용이 쉽지 않다고 했고 84%는 정부가 권장하는 가족 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이같은 돌봄 공백은 한 부모 가정이나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는 저소득층에게는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자녀가 18세 이하인 한 부모 가구는 40만 8000가구에 이른다. 장철민 의원은 “정부가 시차출퇴근제나 재택근무와 같은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 부모들이 일과 돌봄을 둘 다 놓치지 않도록 유도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에 대해 지원금 확대 요구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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