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자라고 있는 K리그 '유스 시스템'

손병하 2020. 9. 1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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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자라고 있는 K리그 '유스 시스템'



(베스트 일레븐)

작금 이탈리아 세리에 A를 대표하는, 범위를 유럽 전역으로 넓혀도 정상급 팀인 유벤투스는 1970년대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지금도 리그를 아홉 번 연속 제패하고 있는 최강의 팀이지만, 1970년대에도 그에 못지않았다. 1972·1973년과 1977·1978년 세리에 A 2연패를 두 차례 달성했고, 1975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대 열린 10번의 리그 중 4위를 기록한 1970-1971시즌을 제외하면, 우승하지 못한 나머지 시즌도 모두 TOP 3에 들었다. 참으로 대단한 기세였다.

당시 유벤투스의 성공을 얘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유스 시스템의 성공적 정착이다. 유벤투스는 잠피에로 보니페르티가 회장에 오른 1971년 ‘프리마베라’라는 유스 파트를 만들어 운영했는데, 여기서 훌륭한 재능이 화수분처럼 쏟아졌다. 1970년대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유벤투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강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프리마베라에 있다.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가 ‘라 마시아’를 보유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처럼 유스 시스템은 유럽 클럽 축구의 젖줄이자, 발전 동력이다. 누가 더 훌륭하고 제대된 유스 시스템을 가졌는가가 곧 성적으로 연결되고, 이는 빅 클럽과 스몰 클럽으로 나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유스 시스템은 클럽의 미래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2008년 시작한 K리그 유스 시스템

2008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연맹)은 K리그에 참가하는 전 구단에 유스 시스템을 확립할 것을 규정으로 만들었다. ‘K리그 유소년 클럽 시스템 세칙’을 만들었고, 이에 K리그1과 K리그2에 참가하는 모든 구단은 산하에 연령별 유스 클럽(U-18·U-15·U-12)을 둬야 했다. 신생 구단이 탄생하더라도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연맹이 승인을 받을 수 없다.

그냥 만들기만 하게 두지도 않았다. 운영 계획과 운영 시설을 점검받아야 했고, 코칭스태프의 기준까지 설립했다. 예를 들면 목적과 철학, 조직도, 자격을 갖춘 지원 스태프가 있어야 했다. 유스 클럽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재정 지원 계획도 미리 발표해야 했으며, 축구 및 일반 교육 프로그램도 검증받아야 했다. 여기에 연령별 팀에 맞는 지도자 자격증 소지 기준도 꼼꼼하게 부여해, 주먹구구식의 운영이 이뤄지지 않도록 방지했다. 흉내 내기가 아닌, 정말 제대로 하잔 것이었다.

처음엔 애먹은 구단이 많았다. 기존 학원 클럽에서 선수를 수급하던 구단들도 모두 자체 클럽을 만들어야 했기에, 예산부터 만만치 않게 소요됐다. 기존 방식대로 해도 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도 적잖게 들렸다. 굳이 일을 만들어 인력과 시간과 돈을 허비할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유스 시스템 정착 후 10년이 조금 넘은 현재는 그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유스 시스템의 성과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고, 클럽의 미래를 위해 유스 시스템의 성공적 정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맹은 구단들을 설득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임을 강조했다. 이에 연맹 차원에서 체계적 발전 계획을 수립해 시행했는데, 2013년에는 유스 클럽 지도자들의 해외 연수를 처음으로 시행했고, 2014년에는 유소년 클럽 시스템의 운영 세칙을 만들어 공유했다. 2015년에는 자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K리그 산하 유스 클럽만 참가하는 유스 챔피언십이란 대회를 신설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고, 2016년에는 경기 영상 분석 사업까지 시작하며 프로 못지않은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렇게 해마다 점진적이고 발전적으로 유스 제도를 손보면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빛을 발하기 시작한 K리그의 유스 시스템

코로나19로 많은 대회가 연기되거나 취소된 올해, 그래도 많은 이의 노력으로 남자 고등부에서는 총 13번의 대회가 열렸다. 그 13번의 대회 중 K리그 산하 유스 클럽들이 참가한 대회는 대한축구협회장배와 대통령금배 등 총 일곱 개다. 놀라운 건 그 일곱 번의 대회에서 K리그 유스 클럽들이 다섯 번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70%가 넘는 우승 확률인데, 유스 클럽 수보다 학원 클럽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다.

기간을 최근 5년으로 넓히면 더 대단하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열린 남자 고등부 대회는 총 64회다. 그중 K리그 유스 클럽이 참가한 대회 숫자는 29회인데, 여기서 딱 다섯 번을 제외한 24번 우승했다. 고교 축구 전통 강호 포항제철고를 비롯해 전북 현대의 유스 클럽 영생고, 수원 삼성 유스 클럽 매탄고 등 다양한 K리그 유스 클럽이 정상을 밟았다. 학원 클럽과 격차가 확실히 벌어졌다는 방증이다.

국내 대회를 평정한 K리그 유스 클럽 선수들을 연령별 대표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에서 열린 2019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에서 한국은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총 21명의 최종 엔트리 중 K리그 유스 클럽 출신이거나 소속으로 대회에 참가한 선수가 무려 12명이나 됐다. 절반이 넘는 숫자다. 같은 해 브라질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에서는 21명 중 17명이 K리그 유스 클럽 출신이었고,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의 아시아 예선 성격으로 치러진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도 23명 중 14명이 K리그 유스 시스템에서 자란 선수들이었다. 각급 연령별 대표팀의 젖줄 역을 하고 있다 해도 과하지 않은 수치다.

K리그 내에서도 유스 클럽 출신 선수들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8시즌에는 209명의 유스 클럽 출신 선수들이 프로로 올라왔고, 2019시즌에는 이보다 35명 많은 244명이 형들과 한솥밥을 먹었다. 올해는 여기서 또 여섯 명 늘어난 250명이 프로의 꿈을 이뤘다. 더 고무적 사실은 자체 유스 출신 선수가 프로 선수가 된 비율도 13.3%(2018년)에서 16.6%(2019년), 그리고 16.7%(2020년)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접 키워서 쓰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잘 키우지 못했다면 아무리 자신들이 길렀다 하더라도 프로로 끌어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잘 키웠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유스에서만큼은 팀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

브라질 출신 축구 선수 대부분이 어린 시절 풋살을 경험한다는 사실, 잘 알고 있을 테다. 브라질이 어린 선수들에게 풋살을 강조하는 이유는 좁은 공간에서 볼을 소유하며 개인기를 높이기 위함도 있지만, 판단과 선택을 빨리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브라질 출신 선수들의 유독 개인기가 좋은 건 그저 브라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그에 걸맞은 훈련을 거쳤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유럽 유스 클럽 대부분은 전술보다는 개인기 연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 전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볼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어린 시절의 개인기는 그 선수 평생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K리그 유소년 클럽 육성 정책에도 팀보다는 개인이 중요하고, 또 우선시 된다. 유스 클럽 육성 원칙 중 가장 첫손에 꼽히는 것인데, ‘팀 성적보다 개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선수 중심의 육성 환경 지원도 물론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대회에 참가해 선수 개개인의 경기 출전 기회를 확대하고, 과학적 분석 시스템 도입으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지원한다. 또 좋은 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중요한 ‘좋은 지도자’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모든 건 유스 클럽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함이 아닌, 소속 선수가 좋은 축구 선수로 발전하기 위해서다.


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피면 이렇다. 우산 K리그 산하 전 구단의 유스 클럽 경쟁력 향상을 위해 주말 리그를 시행하고 있고, 국내 최고 수준의 유소년 대회로 발돋움한 유스 챔피언십을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학년 선수들의 출전 기회 확대를 위해 U-17 대회나 U-14 대회, 그리고 U-11 대회 등을 따로 만들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실전을 통한 경험 쌓기를 돕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개인별 경기 영상 분석 시스템의 자료를 제공해 내 경기를 스스로 복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외에도 EPTS 분석 장비를 통해 스스로가 장점과 단점 파악이 용이하게 지원하고 있다.

좋은 선수를 길러낼 수 있는 좋은 지도자 만들기에도 열심이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회 K리그 유소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해외 선진 리그 연수를 진행 중인데, 그간 잉글랜드를 비롯해 독일·스페인·네덜란드·포르투갈 등을 방문해 더 나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이 덕에 지난 7년 동안 총 159명의 유소년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양분을 흡수할 수 있었다. 또 잉글랜드축구협회 등에서 유소년 지도자를 초빙해 초청 강연을 하고, 유소년 수준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스 트러스트’란 유소년 선수 평가 제도를 만들고, 프로 경기에 U-22 의무 출전 규정을 만들고, 준프로 계약 제도를 만든 것 역시 양질의 선수를 많이 배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늦지 않았다. 제대로 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

가끔 이런 얘기를 하는 이가 있다. 유럽의 선진 클럽 축구와 비교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특히 유스 시스템 구축은 더 그렇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클럽 축구는 유럽이나 남미 클럽 축구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실력과 인프라, 팬 모두 마찬가지다. 유스 축구는 더 그렇다. 그런데 사실인 이 말이 정답은 아니다. 100년 이상 된 구단이 수두룩한 유럽에 비해 우리 프로축구는 아직 40년도 안 됐으며, 유스 시스템 정착은 유럽과 비교하면 더 늦었다. 그러나 늦었다고, 실패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제대로 하면, 결코 늦지 않았다.

그래서 연맹과 K리그에 속한 22개 구단은 늦음을 실패로 귀결시키지 않기 위해, 2008년에 만든 유스 시스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 구단 프런트에서도 역량 있고 능력 있는 직원이 유스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고, 계획성 있는 운영과 향후 로드맵을 들여다봐도 프로 못지않게 잘 짜였다. 당연히 지원도 프로에 버금갈 만큼 훌륭하다.

한국 프로축구의 유스 시스템은 이제 12세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인 셈이다. 당연히 못 하는 게 많고 서툰 게 많을 나이다. 그러나 성실히 배우고 건강하게 자란다면, 성인이 됐을 때 훌륭한 역을 할 수 있는 이로 성장할 수 있다. 늦었지만, 제대로 하고 있기에 늦지 않았음을 믿는다. K리그의 유스 시스템이 지금처럼 잘 성장한다면, 한국 축구의 화수분 역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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