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할머니 욕보였다" 격분..檢 "기부결정 불능" 치매진단 주목
"치매에도 간헐적 판단능력 있다면 혐의 입증 어려울 수도"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을 기부·증여하게 한 혐의(준사기)로 기소된 것에 대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길 할머니와의 면담과 의료기록 분석을 충분히 거쳤다고 반박하면서, 윤 의원이 당시 심신미약에 해당하는 길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알면서도 기부를 적극 유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의원의 준사기 혐의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16일 "장기간 이뤄진 다양한 검사와 치료 기록을 모두 확인했고, 치료를 담당한 의료진 등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며 "검사가 직접 할머니를 면담해 확인하는 절차도 가졌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는 윤 의원이 2017년 11월부터 2년 2개월 간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할머니가 받은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하는 등 총 9회에 걸쳐 7920만원을 기부·증여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길 할머니가 정의연에 기부를 이어간 2017년 11월부터 올 1월까지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판단이 준사기 혐의에 대한 검찰의 기소 배경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윤 의원과 사망한 마포 쉼터 소장 손모씨가 지난 2014년부터 길 할머니의 치매 증세를 알고 있었고, 병원에 데려가 진단까지 받게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길 할머니가 지난 2014년 7월, 2016년 7월, 2018년 7월 세차례에 걸쳐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마지막 검사에서는 경제활동 의사 결정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치매를 앓고 있는 길 할머니를 속여 기부를 유도했다는 기소 사실에 크게 반발한 윤 의원과 정의연의 주장과 배치된다.
윤 의원은 기소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당시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상’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셨고, 그 뜻을 함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상금을 기부했다"며 "중증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속였다는 주장은 해당 할머니의 정신적 육체적 주체성을 무시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또 욕보인 주장에 검찰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의연도 15일 입장문을 내고 "스스로 나서서 해명하기 어려운 사자에게까지 공모죄를 덮어씌우고, 피해 생존자의 숭고한 행위를 '치매노인'의 행동으로 치부한 점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윤 의원이 숨진 마포쉼터 소장과 공모해 길 할머니의 심신장애 상태를 이용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현재 윤 의원은 준사기 외에도 보조금관리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등 총 6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준사기 혐의의 경우 윤 의원의 인권운동가 경력에 치명상이 될 수 있어, 재판 과정에서 특히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형법상 준사기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혐의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길 할머니가 기부 당시 치매 증세가 있었다고 해도, 간헐적으로 판단능력이 있었다면 재판부가 준사기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윤 의원은 기소 직후인 14일 밤, 길 할머니가 2017년에서 올해까지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피력하는 영상을 여러 건 올린 바 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도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검찰의 준사기 혐의 기소에 대해 "가장 분노스러운 일"이라며 "할머니께서 어떤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였는가, 자신의 의지를 단 한순간도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인가, 여기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고 싶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당시에 그리고 이후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의사를 표현했던 여러 가지 영상과 사진들이 남아 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선 할머니를 옆에서 모셨던 요양보호사분들께서 적극적으로 증언해주셨다"고도 했다.
형사법 전문 A변호사는 "최근에는 심신장애 상태를 굉장히 엄격하게 본다"며 "피해자가 치매 증상이 있다고 해도 무조건 사기가 성립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치매가 있더라도 치매 정도를 모두 따져야 하고, 의료진이 조금이라도 간헐적인 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올 수 있다고 판정한다면 무죄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wh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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