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와도 원격수업 어려워 "전쟁터 던져진 느낌.."

김미향 2020. 9. 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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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특집
노조 만든 장애인 교사들
코로나로 더 접근 어려운 온라인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하던 이들이
코로나로 더 존중받지 못하게 돼"
2007년부터 장애교사 5천명 노조 만든 뒤 교육부와 교섭 시작
장애 비하·차별어 일상인 학교
"장애인이냐?" 학생끼리 놀리면
"누가 선생님 부르니?" 되물어
"'헉' 이러고 다음부턴 안 해요"
서울 구룡중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헌용 교사가 지난달 28일 영어교과실에서 노트북 카메라, 마이크, 화면낭독기, 점자책 등을 놓고 원격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김헌용 교사 제공

▶ 식당 등에 놓이기 시작한 무인주문기(키오스크), 누구에겐 편리함을 주지만 누구에겐 장벽을 만든다. 시각장애인 김헌용씨는 식당에서 혼자 음식을 주문해왔지만, 무인주문기가 있는 식당에선 혼자 음식을 주문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이처럼 환경에 따라 장애는 불편이 없었다가 중증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중증 장애인도 환경이 갖춰지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오래 장애인 교사가 ‘없는’ 존재였던 학교 환경에 도전하는 장애인 교사들을 만났다.

“전 차별어를 학교에서 들어본 적은 없어요. 감히 제 앞에서 하는 학생들은 없거든요.”(배성규)

“있을걸요? 선생님이 청각장애인이라서 못 들었던 것 아닌가요?”(김헌용)

“(웃음) 그럴지도요. 일일이 대응하자면 내가 매사 싸우는 사람이 돼야 해요. 저도 ‘아, 피곤해. 내가 왜 인생 전부를 사람들과 싸우면서 지내야 해’ 이런 감정도 솔직히 있어요.”(배성규)

“한마디로 고칠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네요.”(김헌용)

“때론 웃자고 한 이야기에 같이 웃을 때도 있고,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때도 있고. 매번 우리는 그런 시험대에 올라가는 거죠.”(배성규)

“그러고 보면 장애인이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에요. 안 들어서 좋은 것들은 안 들을 수 있고, 세상 못 볼 꼴은 안 봐도 되거든요.”(김헌용)

지난 8월29일, 서울 종로구의 장애인야학인 노들야학의 한 교실에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교사가 모여 대화를 나눴다. 시각장애인 김헌용(34·서울 구룡중), 청각장애인 배성규(40·서울정민학교), 지체장애인 백승진(41·인천 미추홀학교), 시각장애인 이예리(34·인천 미추홀학교)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장교조의 조합원들이다. 장교조는 장애인 교사의 ‘잘 가르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와의 단체교섭을 시작한 장교조는 지난달 5일 교육부 장관과 1차 본교섭을 벌였다. 장애인 교사들이 별개의 교사 노동조합을 꾸려 정부와 교섭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대 정보 약자로 산다는 것

“삐이익, 삐이익.”

진지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 갑자기 모두의 휴대폰에서 재난 알림문자가 울렸다. 코로나19 감염 시기에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한날한시에 네 명의 장애인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은 장소여야 했고, 청각장애인이 대화에 소외되지 않도록 문자통역 서비스도 필요했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마스크도 입술이 보이는 립 뷰 마스크를 사서 착용했다. 입 모양과 표정이 보여야 청각장애인이 대화를 이해하기 쉬워서다.

올해 코로나19가 대대적으로 퍼지며 학교 현장에 원격수업이 일반화되자, 장애인 교사들의 할 말은 더욱 많아졌다. 청각이나 시각처럼 감각 장애를 가진 학생이나 교사가 특히 원격수업에 큰 불편을 느꼈다. 이날도 립 뷰 마스크를 썼지만 말할 때마다 입김이 서려 입 모양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대면 대화도 쉽지 않은데 장애 학생들과 장애 교사들에게 원격수업이란 얼마나 험난할까.

배성규 “그냥 뭐…, 거의 전쟁터에 던져진 거죠. (청각장애인에게) 원격수업이 많이 불편해요. (원격수업에) 다양한 영상을 활용하고 싶어도 자막이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고, 들리지 않으니 제대로 음성녹음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죠. 장애인 교사에 대한 지원도 하나 없고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보조공학기기 지원사업에서도 정작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로 한 것은 받지 못했죠. (장애인이 사용하기 편리한 아이패드 같은) 스마트 기기가 필요한데 청각장애인에겐 보청기만 지원해준 거예요.”

지체장애 학생이 다니는 서울정민학교의 배성규 교사는 2003년부터 일한 17년차 교사다. 청각장애인인 배 교사는 수어를 사용하거나 입 모양을 보거나(구화), 활자를 통해 의사소통한다. 각종 스마트 기기를 다루는 데 능한 그는 학교에서 교육정보부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확산되자 그의 역할은 막중해졌다. 동료 청각장애인 교사들로부터 원격수업 제작에 대한 문의가 많자, 제작법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청각장애인 교사가 학교에서 겪는 다양한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 계정 ‘어느 농교사의 일기’에 올리고 있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장교조) 소속 교사들이 8월29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 회의실에서 출범 1주년을 넘긴 장교조의 성과와 교육부와의 첫 단체교섭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비대면 원격수업이 일상화되자 학교에서 벌어진 변화의 쓰나미는 장애인 교사들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장교조는 지난 4월 장애 학생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온라인 개학으로 취약해진 장애 학생의 학습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온라인 환경에서 장애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무척 다양하다. 일단 온라인 플랫폼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부터 수업 영상에 수어나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수업에 필요한 보조기기를 가정에서 따로 장만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장교조는 “원격수업을 계획할 때 웹 접근성 전문가와 특수교육 전문가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리 “지적장애 학생들이 있는 특수학교에서 원격수업은 그냥 엄마들이 듣는 수업이에요. 저희 애들은 정말 솔직하거든요. ‘얘들아, 온라인 수업 보고 있어?’ 하면 안 봤대요. 그런데 저는 만드느라 힘들거든요. 제가 맡는 음악 과목은 특히 원격수업이 어렵죠. 수업 영상에 저작권이 있는 음악은 쓰면 안 되니까 수업에 쓸 노래를 직접 음원으로 제작해야 해요. 만드는 것도 저의 몫, 그것을 아이들이 보게 만드는 것 또한 저의 몫이죠. 그래서 책임이 가중되는 느낌이에요.”

―코로나로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정보 약자’로 더욱 소외되는 현실을 체감하신 적이 있나요?

백승진 “발달장애 학생들이 있는 특수학교에서 직업교육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자신의 휴대폰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쌍방향 수업을 한번 해봤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그런데 휴대폰이 있는 친구가 한 반에 한 명 정도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을 위해서는 온라인이 전혀 좋을 게 없는 것 같아요.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무척 크다고 해요. 일단 밖으로 나와야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를 배우죠. 그렇지 않으니 소외되는 것 같아요.”

이예리 “얼마 전부터는 지적장애 학생과 쌍방향으로 원격수업을 하자는 논의가 나왔어요.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한 60~70% 될까요? 나머지는 다 일어나서 걷고 싶고, 나가고 싶고, 화장실 한번 더 가고 싶고, 물 먹으러 가고 싶은 친구들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원격도 모자라 쌍방향을 어떻게 할까. 이건 비단 학교의 관리자들이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정말 너무나도 큰 차원의 문제이구나 싶어요.”

김헌용 “어쩌면 기술의 변화는 그 자체로서 무엇을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바꾸진 않아요. 기존의 차이를 부각시킬 뿐이죠. 그동안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해 더욱 존중받지 못하게 됐어요.”

존재만으론 바꿀 수 없다

2010년 교단에 선 김헌용 교사는 서울 구룡중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시력을 쓰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 김 교사는 센스 리더라는 화면 낭독 프로그램을 사용해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를 한다. 화면에 떠 있는 문자 정보가 소리로 변환되는 식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그는 무척 불편해졌다. 원격수업이 실시되자 학교에서 쓰는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에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탓이다. “모든 교사가 사용하는 행정시스템 나이스나 재정시스템 케이에듀파인 같은 기본 플랫폼에 언제든 장애인이 접속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교과서만 하더라도 이 교과서를 장애인 교사가 볼 것이란 전제 없이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용 대체자료를 따로 만드는 식이다.”

―장애인 교사들이 교단에 진출하면 학생들이 장애 친화적인 마인드를 갖고 성장하게 될까요?

김헌용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 시각장애인 친구가 전철역을 이용하는데 안내서비스를 받으려고 사회복무요원을 호출한 적이 있대요. 그런데 탑승을 안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제가 다닌 학교에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계셨어요’ 하면서 안내를 잘해주더라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가 10년 전 부임했던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더군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이 다른 장애인을 만났을 때 훨씬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학교에 장애인 선생님이 계시면 지나치면서 봤다 하더라도 학생이 커서 가지는 인식이 좀 다를 것 같아요.”

배성규 “그런데 단지 학교에 장애인 교사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장애인 교사들이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예를 들어 제가 생활안전부장을 하던 지난해 교사 연수를 갔어요. 재난대피훈련을 했는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은 대피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아수라장에서 소리를 듣고 빠져나와야 하는데 들리지 않으니 저는 대피를 못 하고… 죽겠더라고요. 이렇게 청각장애인 교사가 말을 못 알아듣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아, 장애인은 도와줘야 하는 시혜적인 존재구나’ 이런 인식만 반복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서울정민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배성규 교사가 학교 정보기기를 조율하며 소리 대신 수치와 그래프로 조율에 성공한 뒤 학교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07학년도부터 교원임용시험에서 장애인 구분 모집제를 실시하며 장애인 교사가 교단에 서기 시작했다. 13년간 교단에 진출한 장애인 교사는 전국 5천여명 규모로 추정된다.(2017년 국회 제출 자료 기준) 대부분 사립이 아닌 공립학교에서 일한다. 현재 100여명인 장교조 조합원은 약 75%가 특수학교에, 약 25%가 일반학교에 근무한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교사(교원공무원) 장애인 고용률은 해마다 1%대에 머물며 지자체 장애인의무고용률 3.4%(2017~2018년 3.2%)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고용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지금껏 전국 교육청이 부담한 장애인고용부담금은 24억원(2017), 31억원(2018), 38억원(2019), 3년간 총 93억여원이다.(국회 교육위원회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 그동안 교사 부문에선 장애인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해도 고용부담금을 부과하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교사를 포함해 부담금을 새로 집계하고 징수할 계획이라 전국의 교육청이 내야 할 부담금은 지난해 금액보다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애인 교사들은 어렵게 교단에 진출한 뒤에도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쉽지 않았다. 학교의 모든 시설과 프로그램은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장교조에서 장애인 교사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에 대한 만족도(응답자 44명)를 조사해보니, 매우 만족 4.3%, 만족 40.4%, 보통 40.4%, 불만족 14.9% 순서로 나타났다. 학교 생활에서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동료 교사 또는 교장·교감과의 관계가 46.8%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담임 등 보직에서의 배제 36.2%, 행정 업무에서의 어려움 27.7% 순서였다.

―그러니까 장애인 선생님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김헌용 “만약 장애인 교사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걸 학생들이 보고 자랐다고 해보죠. 학생들이 자라서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이 바뀔까요? 요즘 식당에 키오스크(무인주문기)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예전엔 시각장애인이 식당에서 혼자 주문하는 데 무리 없는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키오스크로 바뀐 뒤 (화면 낭독 프로그램이 없어서) 저는 혼자 주문을 못 하게 됐어요. 나의 신체는 그대로인데 환경이 바뀌면서 장애가 중증이 되어버렸어요. 환경이 받쳐주면 장애가 경증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장애가 중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예리 “저는 특수학교에 근무하는데, 오히려 장애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강하다고 느껴요. 지난해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떤 학급의 아이가 학교 밖으로 도망친 거예요. 그런데 만약 제가 그 학급 담임이었으면 어땠을까요. ‘아, 역시 장애인 교사를 담임으로 맡기면 안 되는 건데 맡겼다가 학생 관리가 안 되나’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겠죠. 그런 차별적인 시선들과 저희는 싸워야 되죠. 지난해 저한테 교무부 시간표 관리 업무가 맡겨진 거예요. 처음에 모두가 걱정했어요. (장애인 교사에게) 시간표 관리 맡겨도 괜찮나?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학교가 전체적으로 저를 믿어주고 신뢰하는 분위기로 가더라고요. 처음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지적·발달장애 학생이 다니는 인천 미추홀학교에서 고교생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시각장애인 이예리 교사는 2018년 선생님이 됐다. 어릴 적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던 이 교사는 중1 때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교사의 꿈을 꾸게 됐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전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죠.” 이 교사는 수업 중 악기를 두드리면서 일일이 아이들 손을 잡아가며 수업하고 있다.

인천 미추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이예리 교사가 원격수업을 위해 음악실에서 음원을 제작하고 있다. 이예리 교사 제공

‘결정장애’ ‘병맛’ 일상이 된 차별어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지 사실 실수란 건 없거든요. 인식 개선교육을 100시간 받든 1000시간 받든,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긴 어려울 거예요. 다만 ‘이번에 잘못 걸렸으니 다음에 말할 때 조심해야지’ 이런 생각은 하겠죠.”

“이런 해프닝을 볼 때마다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 반갑기도 합니다. 그래, 마음껏 차별 발언을 해라. 대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라…. 말은 후졌지만 유명인이 차별 발언을 하면 사회적으로 ‘저런 말을 하면 안 되는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잖아요.”

모임은 금세 달아올랐다. 최근 국가인권위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장애인 인권교육을 받길 권고한 일이 화제가 됐다. 이 전 대표는 ‘선천적 장애인은 후천적 장애인보다 게으르다’ 같은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얼마 전 인권위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에게 90일 내 장애인 인권교육을 받으라고 권고했다. 유명인사의 반복되는 장애인 차별 발언에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다. 상반된 의견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 세대들은 소수자 인권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무지해서 온 결과이니 교육을 받으면 개선될 거예요.”

“과연 그럴까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에 규제가 필요해요. 다수는 소수를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어요.”

베스트셀러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다문화학)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계기에 대해 차별을 연구하는 자신조차 ‘결정장애’란 말을 공식 자리에서 사용한 것을 지적받고 별생각 없이 쓰이는 차별어에 주목하게 돼서라고 한다. 학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어가 난무하는 곳이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욕설이나 비속어를 쓰는 학생들을 만날 때 어떻게 지도하냐는 질문에 허심탄회한 답변이 나왔다.

김헌용 “학생들은 제가 바로 앞에 있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그냥 막 해요. 예전에 ‘애자’ 이런 말이 유행했지만 요새는 그냥 “장애인이냐?” 이런 말을 비하의 의미로 많이 쓰거든요. 그러면 제가 “누가 선생님 부르니?” 이런 식으로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반문을 하죠. 그러면 자기네들끼리 “헉” 이러고 그다음부터 안 해요. 그런 식으로 한번씩 인지를 시켜주죠.”

백승진 “학생들은 비하의 의미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그게 재미있어서 쓰는 거예요. 일년에 두번 하는 장애이해교육(법정의무교육)을 제가 담당해 모든 반에 들어갔어요. 그때 언급을 했어요. 너희들이 쓰는 ‘애자’라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학생들은 그 뜻을 알기는 알지만 큰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었더라고요. 제가 한번 그렇게 단도리를 하니까 그다음부터는 확실히 좀 사용빈도가 줄었어요. 아이들은 받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아이들은 충분히 변화가 가능해요.”

그들은 우리나라에 특히 신체에 대한 비하 표현이 많다고 했다. ‘귀머거리’ ‘절름발이’ ‘벙어리 삼룡이’ ‘정신병자’ ‘동네 바보형’….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신체적 능력이 중요한 자원이었고 이런 문화 탓에 신체 제약에 대한 비하 표현이 많이 발달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9월, 장교조는 국가인권위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조속히 진행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가인권위가 선거 등 각종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차별금지법, 인권기본법과 관련된 업무를 잠정 보류한 것이 알려지자 이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장교조는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으로 구성된 우리 노조는 인권위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현 상황에서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려면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권위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신체적 특성이나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수차례 발의됐지만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6월 다시 발의된 상태다.

김헌용 “옛날엔영어 교과서에 미국, 영국만 주구장창 나왔는데 요즘엔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나오고 소수 부족도 나오거든요. 교과서에 다양성을 담으려 노력하는 게 보여요. 그런데 1년 동안 배우는 교과서에서 장애인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장애를 소재로 다룬 일화도 없어요. 영국에선 국민 다섯 중 한명이 장애인이라는 조사(15살 이상 장애인구 출현율 21%, 2016년 영국 노동연금부)가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5.1%(보건복지부, 2019년)예요. 우리나라가 전쟁도 경험했고 고령화도 빠르게 겪고 있는데 장애인이 왜 없겠어요. 그 많은 장애인은 숨어 있는 거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에요.”

착한 구성원 되는 게 편한 길일까

백승진 교사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2008년부터 교사로 일했다. 선천적으로 왼손만 사용하는 백 교사는 거의 대부분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설정된 세상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간다. 건장한 아이들을 상대할 때 신체적인 어려움을 느낀다. “거친 아이들한테 많이 맞기도 했어요. 신체적으로 불편한 부분을 학교에 말씀드리면 지원 인력을 신청하면 어떠냐 권유하고 끝이죠.” 쉽게 말하면 신체 활동을 지원해주는 인력의 도움을 받아 비장애인 기준에 당신이 맞추고 살라는 뜻이다. 백 교사는 지금껏 비장애인에게 맞추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젠 목소리를 내는 게 답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인천 미추홀학교에서 직업교육을 가르치는 백승진 교사가 8월29일 장교조 조합원 모임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작은 계기가 있었어요. 더 이상 내가 이렇게 뒤에 있을 게 아니라 앞에서 목소리를 내야 나중에 후배들이 조금 나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자신과 함께해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꼈다. “장애를 가졌지만 일반적인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계신 선생님이 있다면 이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백승진 “제가 원래 장애가 있었지만 저의 장애를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는 일반학교를 나왔고 그 안에서 차별도 많이 겪었지만, ‘네가 비장애인에게 맞춰라. 그래야 네가 (장애를) 극복을 한 것이고 네가 우수한 것이다’ 이런 강요를 받았던 것 같아요.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저는 굉장히 착한 사람이 돼요. 그런데 내가 무언가에 이의를 제기하면 귀찮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냥 말없이 쭉 가는 게 답인 줄 알았어요.”

김헌용 “저희가 비빌 언덕이 없었어요.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 같은 느낌으로 저도 학교에서 지난 10여년을 살았죠. 어디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그렇게 늘 위축돼서 살아왔죠. 장애인 교사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늘 도움받는 교사로 지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냉엄한 현실은 도움받는 교사로 지낼 수는 있을지언정 교사 경력이 20년이 쌓여도 담임 한번 못 하게 되고요. 늘 성과급은 최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조금 바꿔보고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우리가 교육에 조금 더 기여하는 존재로서 떳떳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교직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요.”

오랜 기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은 교사가 되기 힘들었다. 2017년 한 뇌병변장애인이 14년 동안의 도전 끝에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한 경우가 있었다. 2003년부터 시험에 응시했던 뇌병변장애인은 2014년 필기시험과 수업 실연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도 면접에서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아 탈락했다. 이후 그는 국가시험에서 장애인에게 장애 특성에 따른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주장하며 광주시교육청을 상대로 법정 소송에서 승리한 뒤에야 끝내 2017년 교사의 꿈을 이뤘다.

그간 전국 5천여명 장애인 교사는 장애 유형별로 시각장애인교사모임, 청각장애인교사모임 등 친목 모임을 꾸려왔다. 그러다 2017년 서울시교육청이 장애인 교사와 대화하는 간담회를 마련하면서 여러 장애 유형의 교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그 뒤 100여명의 장애인 교사가 2019년 고용노동부에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노조 설립 신고를 했고 정식으로 장애인 교사 노조가 출범했다.

지난달 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교육부와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의 단체교섭 본교섭 개회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인호 장교조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교육부 제공

장교조는 현재 다른 대형 노조의 하위 조직이 아닌 단독 노조로 교육부와 협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기존 노동조합은 장애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힘든 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요 협상안으로 장애인이 접근하는 데 장벽이 없는 학교 환경 조성, 장애인 교사 지원 전담 기구 설치, 교원연수 접근성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교조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교사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배성규 “과학 교사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채용한다고 칩시다. 세계적인 석학이니 누구나 그가 선생님이 되는 걸 환영할 겁니다. 그렇다면 평생 휠체어 생활을 했던 스티븐 호킹이 학교에서 과학 수업을 할 수 있게끔 (엘리베이터부터 각종 기기까지) 여러 지원을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 마인드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하죠. 학교에서 장애인 교사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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