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전국 첫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안 공포
실태 조사 뒤 지원책 마련
서비스산업연맹 "결정 환영"
[경향신문]
“코로나가 겁나긴 하죠. 그러나 제가 가지 않으면 혼자 아무것도 못하시는 어르신을 어찌하겠습니까. 저 역시 먹고살기 빠듯하고요.”
지상옥씨(62)는 요양보호사 일을 한 지 12년이 됐다. 여느 해보다 올해는 유난히 힘들다. 코로나19 때문이다. 감염 재확산으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됐지만, 그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집을 찾아가 하루 3시간씩 식사와 목욕을 도와주고 기저귀 관리까지 한다. 이 모든 일을 마스크를 쓴 채 하다 보니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은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서울 성동구는 지씨처럼 감염병 확산 등 재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업무를 해야만 하는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로 정의하고, 이들을 보호·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10일 공포했다. 조례에 명시된 필수노동자는 시민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의료·돌봄·복지·안전·물류·운송 등 직군이다. 지자체가 필수노동자란 용어를 만들고 지원 조례를 제정한 건 전국에서 처음이다.
조례는 구청장이 필수노동자 보호·지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기본계획에는 지원 방향, 분야별 시책, 필요 예산 등이 들어간다. 조례에 따라 성동구는 구의원과 전문가, 시민이 참여하는 필수노동자 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등 실태조사도 벌인다. 아울러 재난별 구체적인 지원 대상을 정하고 노동여건 개선 및 경제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 상반기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는 와중에도 많은 필수노동자들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해왔다”며 “우리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는 필수노동자들이 그에 합당한 존중과 배려를 받을 필요가 있어 조례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적 지원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 도출과 함께 국회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의 재정 지원 등 선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11일 지자체장 모임인 목민관클럽 창립 10주년 기념 국제포럼에서 필수노동자를 주제로 토론 발표를 할 예정이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이날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는 의미 있는 모범 사례”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서비스연맹은 “우리 곁에서 공기처럼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이들의 노동 없이는 우리의 일상이 모두 멈출 수밖에 없다”면서 “필수노동자란 호명으로 특별한 존중을 보내고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성동구와 구의회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조례가 지원 대상 필수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제한한 것은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근로기준법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고용 형태로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는 필수노동자를 포괄해야 한다”며 “고용 형태의 구분 없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례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동구는 서비스연맹의 제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구 관계자는 “필수노동자 조직 중 하나인 서비스연맹이 직접 위원회에 들어와 함께 거버넌스를 형성해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이 더욱 현장감 있게 구체화되고 확대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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