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 불안감..미국 역사상 '총' 가장 많이 팔렸다

하윤해 2020. 9. 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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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미국 FBI 총기구매 조회 자료 분석
올해만 2593만건..뉴욕타임스 "총기 2000만개 팔렸다"
대선까지 겹쳐 대형 총격사건 등 불안감 증폭
지난 3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컬버 시티의 한 총기 판매점 앞에 총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다. AP뉴시스


올해 미국 내의 총기 판매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기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라 미국에서는 트럼프 진영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의 총격전과 우발적인 대형 총격 사건 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국민일보가 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NICS(국가범죄이력 즉시조회시스템)에서 연도별·월별·지역별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합법적으로 총기 구매를 시도한 건수가 2593만 4334건으로 집계됐다.

미국에는 전국 각지에서 팔리는 총기 판매량을 정확히 집계하는 자료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공신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자료가 FBI의 NICS다. 뉴욕타임스(NYT)는 NICS를 토대로 올해 최소 2000만개의 총기가 미국에서 팔렸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DC 인근 버니지아주의 한 총기 판매점 직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총기가 매우 많이 팔린 것은 아니지만, 총기 판매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모든 성인 남녀의 총기 구매가 늘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데 취약한 여성들과 노인들이 코로나19 이후에 많이 찾아 왔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NICS(국가범죄이력 즉시조회시스템) 자료. 총기 구매를 위한 연도별 범죄이력 조회 건수다. 올해의 경우 8월까지 집계되지 않았으나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그래픽=전진이 기자

실업자들의 강도·살인 우려 등 불안감 증폭

미국의 기록적인 총기 판매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불안감이 가장 큰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업·파산·가정 해체 등이 급증하면서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과 극심한 심리적 혼란에 빠진 사람들에 의한 강도·살인 사건 등이 급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총기 구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전례가 없는 아노미적 상황이 역사적인 총기 판매를 낳았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연이어 발생하는 미국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과 그로 인한 흑인 항의 시위도 기록적인 총기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우려도 총기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원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또 미국 경찰의 잇단 공권력 남용으로 경찰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축소 주장이 확산되면서 이를 우려한 시민들이 스스로 무장하는 추세가 급증하고 있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강력한 자가격리 조치를 다시 취하지 못하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의식한 의도도 깔려있지만 실직자나 폐업자가 늘어날 경우 강도·살인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있다.

국민일보가 분석한 미국 FBI의 NICS(국가범죄이력 즉시조회시스템)는 합법적 총기 구매자가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과정이다. 총기를 사려고 하는 사람은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범죄이력을 구매 직전에 검사 받아야 하는 것이다. NICS는 흉악범죄 전과자, 불법 이민자,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조치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7월 13일 펴낸 보고서에서 “NICS 자료는 총기 판매량을 완벽하게 의미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NICS 자료는 총기 판매와 매우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연구자들이 널리 활용하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NICS는 1998년 11월부터 시행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NICS(국가범죄이력 즉시조회시스템) 자료.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월별 범죄이력 조회 건수다. 코로나19와 흑인 사망 항의 시위가 겹친 6월이 현재까지 최고점을 찍고 있다. 그래픽=전진이 기자

코로나19·흑인 시위 겹쳤던 6월에만 총기 구매 조회 393만건

NICS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총기를 사기 위해 범죄이력을 조회한 건수는 2593만 4334건으로 집계됐다. 한 달 평균 324만 1791건의 조회가 이뤄진 셈이다.

NICS가 시행된 이후 조회 건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지난해로 2836만 9750건을 기록했다. 그러나 현재 추세라면 올해 9월이나 10월 중 이 기록을 깰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총기 판매는 2016년에 정점을 찍은 뒤 하락했다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올해 6월 조회 건수는 월(月) 기준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무려 393만 건이 넘는다. 지난 6월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공포가 장기화되고 경기 침체가 누적됐던 달이다.

미국 워싱턴주 로체스터의 한 총기 판매점에 소총(rifle)들이 진열돼 있다. AP뉴시스


여기에다 지난 5월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던 것이 6월 초·중순이었다. AP통신은 “6월의 기록적인 조회 수는 코로나19 불확실성과 흑인 시위로 인한 혼란이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3월도 눈여겨 볼만한 달이다. 지난 2월, 280만 건을 기록했던 조회 건수가 3월엔 374만 건으로, 94만 건이나 급증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코로나19가 미국을 강타해 뉴욕과 같은 대도시들이 ‘외출 금지(stay at home)’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던 시점”이라며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으로 미국인들이 총기를 구매하거나 비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목이 눌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미국 전국적으로 번졌다. 일부 흑인 시위는 약탈·방화로 변질됐다. 지난 5월 3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도중 방화 현장에서 한 청년이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AP뉴시스

올해 총기 구매자 중 40%, 처음 총 산 사람들

올해 미국 총기 판매의 새로운 양상은 총기를 처음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 사격스포츠협회는 올해 총기 구매자 중 약 40%가 최초 구매자라고 밝혔다. 총기에 익숙치 않는 총기 최초 구매자가 늘어나면서 사격이나 보관 과정에서 안전 사고 우려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주류·담배·화기·폭발물 단속국에서 퇴직한 뒤 총기규제단체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칩맨은 AP통신에 “총기 판매 급증은 일시적인 현상이 더 이상 아니다”라면서 “향후 몇 달 동안 전례가 없는 총기 판매량 증가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NICS의 주(州) 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기 구매 건수가 인구와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8월까지 미국에서 총기 구입을 위한 범죄이력 조회가 가장 많이 이뤄진 주는 일리노이주로 517만 9673건에 달한다. 일리노이주의 전체 인구는 1265만명으로 미국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지만 총기 조회 건수는 1위를 차지했다. 일리노이주의 높은 총기 구매 비율은 강력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시카고를 끼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켄터키주는 더욱 극명한 사례다. 올해 총기 구입 조회 이력 2위는 켄터키주로, 232만 8237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켄터키주의 인구는 450만명으로 미국 전체 26위다. 켄터키주가 총기 소유 비율은 높은 것은 허술한 규제 조치 때문이다. 켄터키주에선 자동소총 구입에 나이 제한이 없다.

또 총기는 흑인보다 백인이 더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비영리 조사단체인 ‘퓨 리서치 센터’는 2017년 보고서에서 백인 가정의 49%가 총기를 갖고 있으며, 흑인 가정의 총기 보유 비율은 32%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로 확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우편투표 제도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환경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주피터를 방문한 모습. AP뉴시스

코로나19·인종차별·대선 등 화약고 널려있어

AP통신은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이 있는 해에 총기 판매가 늘어난다”면서 “그 이유는 대선에서 이긴 후보가 취임한 뒤에 총기 규제를 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라고 전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인종적 차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 총기 구매 이력 조회가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 흑인 사망 항의 시위, 대선 등 화약고가 사방에 널려있다. 언제, 어디에서 방아쇠가 당겨질 지 모를 노릇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확대 시행될 우편투표 제도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벌써부터 대선 불복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사망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던 지난 5월 29일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위터 글을 올려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경우 총격전을 비롯한 엄청난 소요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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