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세계 외교가도 '거리두기'.. 줌플로머시가 뜬다 [이슈 속으로]

홍주형 2020. 9. 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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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가져다준 '비대면 외교'
G20 정상회의·아세안+3 정상회의 등
상반기 굵직한 정상외교 '화상' 대체
복잡한 의전 생략.. 감염 위험 등 없애
韓, 가장 적극적.. 화상외교 예산 늘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 6개월간 외교의 형태는 많이 달라졌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팬데믹 확산으로 외교가 마비되는 상황에서 시작된 화상외교, 이른바 ‘줌플로머시(zoomplomacy·화상프로그램 ‘줌’과 diplomacy의 합성어)’가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2020년은 줌플로머시의 원년이라 할 만하다. 줌플로머시, 즉 화상외교는 국경을 넘는 만남에 따르는 수차례의 코로나19 진단 검사, 격리 기간에 따르는 불편함, 이동 중의 감염 위험 등을 일거에 해결해줬다.
 
정부는 3월 G20(주요 20개국) 특별화상정상회의, 4월 아세안(ASEAN)+3 화상 정상회의 등 이미 상반기 굵직한 정상외교를 모두 화상으로 치렀다. 이와 더불어 2020년은 외교의 꽃으로 불리는 유엔총회가 화상으로 개최되는 첫해가 될 전망이다. 변화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줌플로머시는 새로운 외교의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로나19 확산으로 화상외교가 ‘뉴노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아세안(ASEAN) 경제장관회의가 화상 방식을 통해 열리는 모습. 올해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는 이달 9일부터 화상으로 열린다. 하노이=연합뉴스·신화통신
◆줌플로머시, ‘뉴노멀’ 되나

화상외교는 ‘궁여지책’으로 등장했지만, 예상 외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다니엘 샤피로 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와 다니엘 라코브 이스라엘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5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4월 초 화상으로 잇따라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G20 에너지장관회의는 역사적인 감산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줌플로머시가 실질적 결과를 도출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화상외교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 중 하나다. 상반기 코로나19 확산 저지에 성공하면서 ‘K방역’이 부상했고, 이를 홍보할 외교 채널이 필요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G20 특별화상정상회의를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한 외교관은 “코로나 시대 우리의 선진 보건의료체계가 K방역으로 이어졌듯이, 대한민국의 앞선 IT가 화상외교에서도 앞서갈 수 있는 자산”이라며 “화상 시스템 구축이 ODA(공적개발원조)의 새로운 분야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해 지난달 31일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년도 예산안에도 비대면 화상 외교 관련 예산이 총 167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다량 동시 접속에도 흔들림 없는 서버 구축 등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라는 설명이다.

◆대면 외교 대체는 어려워

하지만 줌플로머시가 대면외교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 반응이다. 특히 ‘주변 대화(side conversation)’를 할 수 없다는 것은 화상외교의 뚜렷한 약점이다. 화상회의에선 대체로 의제만 바로, 간단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녹화되고 있는 회의 중에 진솔한 얘기가 오가기는 쉽지 않다.

화상회의 시스템에서는 대놓고 만날 수 없는 사이끼리 ‘슬쩍’ 만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놓고 한·일 갈등이 최고조로 달아오른 가운데서도 유엔총회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났던 것이나,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에서 종종 성사되는 남북 외교장관의 만남이 화상외교에선 불가능하다.

특히 국제기구인 유엔이 일찌감치 화상 총회를 결정한 것과 달리 올해 각종 국제회의 개최국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화상외교로는 회의 개최로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 등 정치적 이익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올해 G7 의장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6월 열릴 예정이었던 G7 정상회의를 대선 2개월 전인 9월로 연기하면서 정상들을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연기했다. 올해 ARF 의장국인 베트남은 외교장관 회의를 9월로 연기하면서 대면 회의 개최에 대한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다. 정부는 한국이 올해 의장국인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대면회의 개최를 기본 원칙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하반기부터 양자외교는 조심스럽게 대면회의가 재개되는 추세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7월 한국을 다녀갔고, 지난달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다녀갔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격리 면제 절차도 마련했다.
강경화 한국 외교장관을 비롯한 주20개국(G20) 외교장관들이 오는 11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열릴 정상회의를 앞두고 3일(현지시간) 화상으로 특별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G20 공보실 제공
◆코로나19 이후에도 살아남을까
그럼에도 외교가에선 줌플로머시가 외교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주로 다자회의에 참석하는 직군의 한 당국자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다자회의나 국제 세미나의 경우 국내에서 화상으로 하니 회의에 따라서는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민감하지 않은 실무 사안을 처리하는 데도 오히려 낫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사전대화, 만찬 등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외교 의전을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일각에선 이를 들어 코로나19 확산이 한풀 꺾인 뒤에도 줌플로머시가 일정 형태로는 외교가에 남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화상외교가 국가 간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화상외교 초반에는 제3세계 국가들 중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국가들이 더러 있어,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발생한다. 베트남 외무성은 ARF 사전준비 회의인 고위관리회의(SOM) 당시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국가를 위해 외무성에 공용 시설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화상 외교가 보편화되면 막대한 출장비를 들이지 않고 국제무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3세계 국가들에는 기회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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