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활동의 '보이지 않는 손' 맞서 폭로·반성·성찰 2년..다시 선 청년들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청년운동가로 산다는 것 - 언더조직 폭로한 두 가현이
알바 처우 개선 앞장서다
은밀히 가입한 언더조직
2014년 어느 날, 이가현씨(27)는 휴대전화를 꺼둔 채 자취를 하던 부천시 역곡동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서울 방향 열차에 탔다. 중간에 환승하고 방향을 틀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탄 뒤 다른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3가지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로였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3시간쯤 지나 도착한 곳은 자취집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부천시 송내동 인근이었다. 한 카페 앞에 선 그는 시사주간지를 손에 들었다. 얼굴을 모르는 접선자를 위한 표식. 언더조직의 학생운동 담당자와 처음 만난 날이었다.
또 다른 이가현씨(28)는 이보다 몇 달 전 언더조직에 들어섰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와 학교 뒷산에서 이야기를 나눈 게 시작이었다. 휴대전화도 꺼둔 채 2~3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의 자리에서 조직에 들어올 것을 제안받았고 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인천의 낯선 지하철역에서 언더조직 담당자와 만났다. 커튼으로 칸이 나뉜 카페였다.
두 사람의 ‘가현이들’은 알바노조(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만났고, 언더조직에서 함께 활동했다. (언더조직은 ‘지하조직’ 같은 비공개 조직이다.)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동청이나 아르바이트생 노동 현장에서 점거농성을 하기도 했다. 가현이들은 ‘운동판’의 떠오르는 참신한 신인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를 사회적인 의제로 정착시킨 알바노조는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이들이 열망을 펼치는 무대가 됐다.
비민주·남성적 방식에
조직의 존재 공개·비판
청년운동 새 길 모색 중
2018년 2월, 알바노조의 집행부로 일하던 가현이들은 감춰둔 이야기를 공개했다. 공개되지 않은 언더조직이 있고, 대중조직인 알바노조의 운영 방향에 언더조직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들어선 언더조직에 대해 폭로하자 “동지의 등에 어떻게 칼을 꽂을 수 있냐”는 비난이 날아들었고, 사실관계를 다투는 시비가 벌어졌다.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며 모두의 상처가 깊어졌다.
지난 7월25일 가현이들은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만든 ‘언더조직 조직문화 인터뷰집’을 내놓았다. 언더조직을 경험했거나 그 주변에서 활동했던 21명을 인터뷰했다.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조직에서 정한 남성운동가 상을 모두에게 몰아붙이는 문화” “오로지 운동의 도구로써 대상화하는 태도” 등 운동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털어놓은 이유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이 경험마저도 언젠간 성장의 토대로 삼기 위함”이라고 했다.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청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두 명의 가현이 모색하는 새로운 길에 대한 포부도 담았다.』
“알바 접고 집회에 사람 데려오라는 언더조직…희망이 안 보였다”
거리에서 ‘최저임금 1만원’ 구호 외쳤던 28세와 27세 이가현
어느 날 비밀스러운 제안 받고 ‘안가’에서 10일간 합숙교육
“인원 동원으로 평가…성과와 헌신 강조에 우울증 앓는 이도”
남성 위주 위계질서에 사생활 통제…결국 조직 활동 그만둬
1992년생. 현재 나이 28세. 이름은 이가현. ‘운동’과 처음 만난 건 2013년, 대학 2학년 때였다. 1학년 때는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면서 나름 ‘평범하게’ 보냈다. 의미 있고 착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동아리였다. 그가 다닌 대학의 청소노동자 식비는 한 달에 1만원이었다. 한 끼에 400원이 좀 넘을까. 청소노동자들의 식대 인상 운동을 한 게 첫 투쟁이었다. 학생들은 1인 시위를 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노래도 불렀다. 식비가 월 7만원으로 올랐다.
함께 활동하던 이들 중 알바연대 활동가들이 많았다. “처음 가면 <공산당 선언>을 읽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서 비슷한 책을 찾아 읽었다. 마침 액세서리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다. 알바연대에 참여했다. 새롭게 노동법을 배웠고, 법에 쓰인 대로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휴게시간·주휴수당 보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해고 통보 전화를 받았다. 현실은 법과 달랐다. 알바연대는 노조 설립 허가를 받아 알바노조(아르바이트 노동조합)를 만든다. 알바노조와 함께 단체교섭을 벌였다. 이후 매장에 휴식용 의자가 비치되고 주휴·야근 수당이 지급됐다.
1993년생. 현재 나이 27세. 이름은 역시 이가현. 그도 같은 해(2013년) 운동과 처음 만났다.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하던 대학 2학년. 청년 단체 취재를 하다 알바노조를 알게 됐다. 이후 대형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으니 노동 문제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알바노조에서 활동한 계기가 됐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알바노조 활동가는 많지 않았다. 맥도날드의 노동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리에서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벌였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맥노예’라 불립니다. 임금은 낮은데 일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든 건 처음이었지만 곧잘 해냈다. 학교에선 알 수 없는 경험과 배움이 거리와 현장에 있었다.
같은 해 운동을 시작한 두 가현은 알바노조에서 만났다. 당시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이란 구호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청년들로 이뤄진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고,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발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노동 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목받았다. 알바노조에선 이름도 성도 같은 두 사람을 구별해 부르기 위해 출신 학교 이름을 따 28세 이가현을 서가현으로, 27세 이가현은 가가현으로 불렀다. 이들을 ‘가현이들’이라고 부르는 일이 늘었다.
■비밀스러운 제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하(언더) 조직이란 뜻처럼, 언더조직에 함께하자는 제안은 비밀스럽게 다가왔다. 서가현은 같은 학교의 활동가에게 제안받았다. 2013년 가을이었다. “정말 한 줌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 조직이 있어. 혁명가의 삶을 사는 거야.” 휴대전화를 끄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시작한 대화는 2~3시간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몇 달 뒤, 가가현도 언더조직 참여를 제안받았고 그도 고민 끝에 승낙했다.
언더조직은 존재 자체가 비밀이라 알바노조와 같은 대중조직에서 활동을 인정받은 이들만 참여를 제안받는다고 했다. 언더조직의 담당자와 접선한 뒤 합숙 교육이 이뤄진다. 합숙 전에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선집과 그 생애를 다룬 책을 읽어야 했다. 합숙은 9박10일 동안 이어진다. 성장배경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걸 10장의 자기소개서에 써서 낸다. ‘조직에 자신을 숨기지 말 것.’
합숙은 비공개 안가(안전가옥)에서 이뤄진다. 집합 장소에 모이면 담당자가 차로 태우러 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 도어록을 누르고 문을 열면 3개의 방과 거실·부엌이 보였다. 20평이 조금 안 돼 보이는 평범한 아파트. 휴대폰은 쓸 수 없다. ‘템플스테이에 간다’는 식으로 핑곗거리를 만들어두는 건 각자의 몫이다. 언더조직에선 서로 본명 대신 가명을 지어 불렀다. 12학번 또래들은 ‘천’자 돌림을 썼다. 언더조직 담당자는 ‘서민 선배’라고 불렀지만 본명은 지금도 모른다.
가현이들이 활동한 알바노조는 진보정당인 A당 관련 언더조직의 영향을 받았다. A당의 계파 사람들이 주축이 됐다. A당 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알바노조와 또 다른 대중조직 핵심 구성원들도 이 언더조직에 속해 있거나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걸로 나타났다. 언더조직의 총책임자가 사업체를 운영하며 자금을 대 조직을 지도했다. A당 진상조사위원회에 ‘A당의 민주적 운영 침해 및 강령 위배 등 해당 행위에 관한 진상조사위원회’란 이름이 붙었다.
언더조직은 대중운동을 하는 공개된 운동 단체의 배후에서 활동가들을 관리한다. 중요한 활동 방향에 대해선 조직원인 활동가에게 크고 작은 지시를 내린다. 교육도 한다. 학생운동 역사, 러시아와 프랑스의 혁명사, 조선공산당사나 노동법 등을 공부한다. 이미 오래된 학생운동의 교재를 읽는다.
언더조직은 역사가 오래됐다. 2000년대 초반 이 언더조직에서 활동했던 나동혁씨(전 A당 마포당협위원장)는 “1980년대 초반 학번의 비공개 서클이 이어져 온 것”이라며 “운동을 배후에서 지휘하던 당시 핵심 멤버가 지금도 남아 수직적인 위계로 구성된 조직이다. 지도부가 바뀐 적이 없다고 알려졌다”고 말했다. 언더조직은 공안 탄압을 피하고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보안을 매우 강조한다. 소수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돼 엄격한 위계질서가 특징.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극단적인 형태의 비공개 조직은 운동판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전통’을 유지해온 것이다.
■가현이들의 투쟁
2016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가현이들>은 알바노조의 초기 활동을 잘 보여준다. 가현이들이 아르바이트했던 업체 앞에서 집회를 하고, 거리에서 낯선 이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활동 내역이 담겼다. <가현이들>의 감독은 알바노조 활동가였던 윤가현씨(29)다. 그도 알바노조의 ‘가현이들’ 중 하나다. 윤씨는 언더조직이 아니었지만, 알바노조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처음 기획하게 됐다. 2014년 무렵 가현이들과 알게 됐고, 이들의 투쟁을 기록하면서 가까워졌다. 인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지난해 4월 세 가현이들은 베트남으로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윤씨가 본 가현이들은 성격이 정말 다르다. 여행 경험으로 보면, 가가현은 일정을 빠듯하게 짜 계획대로 돌아다니는 스타일, 윤씨는 무조건 느긋하게 쉬어가는 걸 선호하고, 서가현은 적당히 중재하며 둘 사이를 오간다. “운동하는 방식도 그런 것 같아요. 가가현은 다양한 상태를 언어화해 이야기하는 걸 잘하는 예리한 성격이에요. 서가현은 운동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여요. 운동을 하면 결핍을 느끼거나 힘들어 무너질 일도 있을 법한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둘 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들이에요.”
가현이들이 활동한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를 화두로 내걸어 이목을 끈 첫 단체였다.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강요되는 ‘꾸밈노동’이나 근로계약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퇴근시키는 ‘임금 꺾기’, 일상적인 폭언이나 성폭력 등 인권침해까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함을 제기하는 게 알바노조의 일이었다. 노동청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도하거나 맥도날드 매장에 집결해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 행동도 했다.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거나 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경우도 많았다.
가가현은 알바노조 활동은 이어갔지만, 언더조직 활동은 오래 안 했다. 그는 2015년 여름, 1년 남짓 이어온 언더조직 활동을 그만뒀다. 언더조직 담당자와 평행선을 그린 면담 끝에 결정했다. 운동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사생활까지 통제당하는 게 힘들었다. 후배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자 ‘권위를 가지고 알려줘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후배를 대하는 태도가 ‘물렁하다’는 것이다. “너는 왜 그렇게 권위가 없니.” “왜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하니.” 주로 받은 지적들이다.
언더조직을 나온 몇 달 뒤 가가현은 알바노조 활동을 재개했다. 새로 2기 집행부가 꾸려지면서 다시 호출된 것이다. 알바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해온 맥도날드에서 일했었고, 알바노조 활동 초기부터 기자회견이나 캠페인의 전면에 나섰던 상징성이 그에게 있었다.
■착취의 구조
알바노조 안에는 언더조직원이 아닌 활동가도 있었지만 이들은 주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일이 흔했다. 사실 집행부 대부분이 언더조직원이었기 때문에 알바노조와 언더조직의 방침은 상당 부분 겹쳤다. 언더조직의 지시는 알바노조 활동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A정당 행사 또는 캠페인, 선거에 동원되기도 했다. 알바노조 활동가였던 B씨는 “지역의 중요한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인근 언더조직 청년들이 1년 가까이 합숙하며 동원된 적도 있다”고 했다.
언더조직에서는 늘 조직의 일을 우선시하라고 주문했다. 주말에 집회가 있을 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데도 참여를 주문했다. 서가현도 당시 자취를 하던 중이라 생계를 위해선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조직에선 “알바 그만두고 집회에 사람들 조직해 데려오라”고 채근했다. 그저 사람을 동원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수시로 열리는 언더조직 회합에서는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와 계획에 대한 점검이 이뤄졌다. 언더조직원들은 성과 압박에 시달린다. 행사에 몇 명이나 동원할 수 있는지, 새롭게 활동가로 ‘조직’한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매체에 보도된 횟수는 얼마나 되는지 등이 거론됐다. 성과를 강조하고 헌신을 강조하는 언더조직원으로 있으면서 우울증 등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가가현은 본인과 마찬가지로 다른 활동가들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열심히 활동하다 그만두면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고 계속해서 ‘전인적 활동가’가 돼 헌신하길 요구하니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2016년 말, 2017년쯤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우후죽순 생겨나서 조직에서도 심각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몇명은 좀 쉬게 했던 적도 있었죠.”
“사람 소외시키지 않는 운동을 하겠다” 현장 속으로 한 걸음 더
낙태금지·혼전순결 등 교육 논란, 알고 있던 ‘여성주의’와 충돌
28세 이가현, 정당 활동 끝내고 페미니스트로 총선 무소속 출마
“비선 조직이 노조 활동 좌지우지” 세상에 알린 27세 이가현
“방침 따라 운동하는 방식 말고 정책 들여다보며 생각 넓히고파”
■여성, 그리고 운동
언더조직에선 운동가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낙태금지, 혼전순결을 교육했었다. ‘여성들이 낙태를 하면 몸에 안 좋고 활동을 쉬게 되니 그런 걸 피하는 게 좋다’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그 대상이 여성에 국한됐기에 계속 논란이 됐다. 여성운동가가 결혼 후 집에서 살림하면서 남편인 남성운동가를 보필하는 걸 ‘보위투쟁’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는 남성운동가에게는 엄한 아버지 역할을, 여성운동가에게는 자상한 엄마 역할을 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서가현은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이런 남성중심적 운동 방식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서가현이 여성주의를 처음 접한 건 대학 초년생 때였지만 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건 다른 활동가들과 여성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면서부터다. 자신을 비우고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운동과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라는 운동. 여성주의는 달랐다.
“언더조직이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길 부정하고 그런 모습을 틀렸다고 했다면 여성주의는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나 그대로도 괜찮다.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다’ 하는 생각.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그런 혁명이 성공했다 쳐도, 여전히 여자들은 집안일을 하고 기존의 성 역할에 묶여있다면 그게 해방이고 혁명일까’.”
2016년 5월 서울에서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이 서가현에겐 활동의 변곡점이 됐다.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노동운동보다 페미니즘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된 계기다. “강남역 사건 당시에 함께 여성주의를 공부하던 활동가들과 ‘특기’를 살려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벌였어요. 그러다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언더조직과 관련이 없는 곳이었는데, 페미니즘이 이슈였기 때문에 언더조직에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서가현의 왼팔엔 흰수염고래와 장미꽃을 새긴 타투가 있다. 흰수염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로 큰 뜻을 품겠다는 뜻이고 장미는 여성주의를 뜻한다. 언더조직에선 ‘문신은 멘탈이 약한 사람이 강해보이려 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하게 결정했다. “함께 페미니즘 소모임에서 활동했던 분의 갑작스러운 장례식에 다녀온 일이 있어요.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삶이 허망하다는 마음이었어요. ‘하고 싶은 건 미루지 말고 다 해야지’ 하고 다짐했습니다.”
서가현은 2017년 말 A당을 탈당해 페미니스트 활동에 집중했다. 2017년 여름 어느 날에는 언더조직과의 선도 끊겼다. 그저 “이제 없대” “이제 안 한대”하는 말만 들었다. 평생을 함께한다는 혁명조직이 너무 갑작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듯 사라졌다. 서가현과만 선이 끊긴 것인지, 정말 조직 자체가 사라진 것인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너무 많이 노출돼 사라졌다는 이야기만 돌았다.
서가현은 여성주의 단체에 참여해 활동하면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지난 총선에 무소속 출마하기도 했다. 외부에 나서다 보면 언더조직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들과 종종 마주치기도 한다. “언더조직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아직 힘들고 말하기 싫어질 때도 있어요. 최대한 안 마주치고 싶죠.”
■피해자이자 가해자임을 고백한 폭로
2017년 알바노조 내부 사정으로 3기 위원장을 맡았던 가가현도 힘든 날을 보냈다. 더 이상 언더조직원이 아니었기에 주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일이 많았다. 위원장이었는데도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집행부에서 논의된다거나 알바노조 SNS 계정을 통해서 활동을 접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자발적으로 탈퇴한 비조직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괴로웠다고 했다.
4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가가현은 언더조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알바노조 활동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언더조직의 선배들은 “너는 조직이 인정한 후보가 아니다”라고 했다. 오랜 시간 갈등과 어려움이 이어졌다. 가가현은 언더조직의 일원으로 가해자이기도 했고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가 모든 걸 밝히기로 마음먹은 건 언더조직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2018년 2월1일 가가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썼다. 알바노조 등 대중조직에 중요한 결정을 비밀리에 하는 언더조직이 있다는 내용이었다.가가현의 폭로는 각종 매체에 보도됐다. A당 게시판은 들끓었다. 민주적이어야 할 조직에 비민주적인 비선 조직이 있다는 폭로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언더조직원으로 지목된 선배들이 해명 글을 올리면서 진실공방으로 번졌고, 가현이들과 폭로에 참여한 이들을 ‘저격’하는 글도 올라왔다.
폭로가 쉬운 건 아니다. 언더조직의 존재를 알리는 건 자기 고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가현에 이어 서가현도 글을 올렸다. “언더조직에 대한 글을 올린다는 건 나도 그곳에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 (가가현의) 폭로가 있고 나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지의 등에 어떻게 칼을 꽂을 수 있냐’는 반응도 접했어요. 언급된 조직의 관계자들은 선을 그었어요. 이대로 가현이가 혼자 화살을 맞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폭로의) 글을 따로 올렸어요.”
가가현은 결국 4기 위원장에 당선됐지만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언더조직을 묵인해왔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갖은 공격과 비판, 다른 집행부를 괴롭혔다는 고발까지 따랐다. 2018년 6월 위원장이었던 가가현과 용윤신 사무국장이 동시에 사퇴했다. 그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달려온 시간이 떠올랐다. 사퇴하기 며칠 전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이동 중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사고 나서 며칠 쉬어도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먼저 들었다. 병원을 다니고 며칠을 쉬면서 사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 “너무 지쳤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왜 사퇴하는지 그 관계를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많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더 마음이 단단했다면, 비판을 견뎌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모두가 떠난 알바노조는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맥도날드 분회에서 활동하던 신정웅 현 알바노조 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맥도날드와의 단체교섭을 재개하는 등 지금도 알바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을 맡고 사무실에 왔더니 아무도 없었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알바노조와 조합원들입니다. 결국 지나고 나서 이야기하는 거라 섭섭할 수 있지만 노동자를 보고 운동한 게 아니라 ‘카메라만 보고 운동한 결과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단체교섭 성과도 없고, 알바노조가 활동하는 주요 사업장도 없고, 노동자도 없고….” 신 위원장은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가현이들에게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깨끗한 정치를 해보고 싶다
시간이 흘렀다. 가현이들뿐만 아니라 언더조직을 경험한 이들이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노조 1기 위원장을 지냈던 구교현씨(43)는 언더조직을 폭로했던 가현이들에겐 선배 운동가이자 대립한 상대였다. 구씨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폭로 당시에 대해 “지금 와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이었다”며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상처로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대와 문화, 삶의 방식이 바뀐 상황인데, 그런 변화에 운동 조직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 했던 것 같다.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소수의 리더들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이 변화된 시대에 맞지 않았던 방식인 것 같은데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잘 이뤄지지 못하면서 새롭게 운동에 참여한 분들과의 충돌과 갈등이 있었다.” 지금도 언더조직이 있을까. 그는 “그런 형태의 운동 문화와 구조는 큰 비판을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를 고수하면서 할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라고 답했다.
가가현은 한동안 쉬다가 현장으로 돌아왔다. 현재 서울 관악구노동복지센터 조직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관악구의 노동조합을 돕거나 교육이 필요할 때 강사를 섭외하고 비용 지출을 지원한다. 청년 운동가로 노동문제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알지 못했던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동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알바노조에 있었을 때 알던 분들을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비언더조직이었던 알바노조원들이 더 어려워요. 그래서 먼저 연락해주는 분들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아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지금은 이런 고민을 이해해주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과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습니다.”
가가현은 앞으로 노동 정책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정책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진득하게 글을 쓰는 일들 말이다. “알바노조에서는 정해진 방침을 따라서 답이 정해진 방식의 운동을 했어요. 비판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알바노조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정책을 만드는 건 정부·정당에서 할 일이고 우리는 ‘이슈파이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정책의 긍정적·부정적인 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을 넓히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2018년 서가현은 알바노조를 떠난 뒤 태어나 처음 해외여행을 갔다. 가까운 일본 도쿄를 찾았는데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계획을 세운 뒤 낯설고 새로운 공간에 가는 일이 설레고 신이 났다. “인생을 활기 있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래야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지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게 되고, 사람을 소외시키는 운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역시 청년 운동가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되겠다는 어릴 적 막연한 꿈도 실현해갈 생각이다. 여성주의 정당을 만들고, 정책 활동을 하기 위해 동지를 모으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하며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중 어떤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선택하는 건 더 나이가 들고 난 이후가 아닐까요. 조금 더 방황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운동하겠다는 목표는 살아 있어요. 내 양심을 지키면서 깨끗한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어릴 적 멋졌던 마음도 아직 가지고 있고요.”
가현이들은 언더조직을 경험하면서 배우고 깨달은 게 많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선을 넘어야만 지킬 수 있는 동료가 있더라는 것을 알았다. 활동가의 인권에 대해, 우리의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젊고 창창한 활동가들이 대가 없이 자신을 ‘갈아 넣는’ 활동을 멋있다고 여겼지만, 이제 그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안다. 특정 방식으로 사람을 개조하려는 것이 폭력적인 일이라는 것도. 그리고 운동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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